4·16재단 청년 기자단 5기 박찬재님과 박지은님의 글을 동시 기재하였음을 알립니다.
– 세월호참사 11주기 선상추모식에 부쳐
4.16재단 청년기자단 활동의 일환으로 세월호참사 11주기 선상추모식에 다녀왔습니다.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새벽 2시 30분에 출발한 버스는 7시가 넘어서야 목포 바다에 도착했습니다. 해경 경비함이 준비되어 있었고, 추모식에 참여하기 위한 추모객과 취재를 위해 방문한 기자들은 모두 구명조끼를 입고 배에 올랐습니다.
해경 경비함을 타고 세 시간을 더 이동하고서야 도착한 세월호참사 해역. 선상 추모식은 10시 30분에 맞춰 시작되었습니다. 10시 30분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완전히 침몰했던 시각과 같은 시각입니다. 참사 당일 희생자들의 궤적을 최대한 그대로 따라가며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그 시간에 맞춰 추모식이 진행되었습니다. 추모식 시각에 대한 사회자의 설명을 들으며 저는 다시 한번 세월호참사와 이어진 투쟁, 애도의 과정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세월호참사 11주기 선상추모식
선상 추모식 현수막 양쪽 아래에는 분홍색 꽃이 핀 나무 두 그루가 자리했습니다. 봄을 떠올리게 하는 화사한 나무였습니다. 경비함의 장성이 세 발 발사되며 시작된 추모식의 첫 순서로 유가족들이 그 나무에 리본을 묶는 시간이 마련되었습니다. 희생자들에게 보내는 마음과 바람이 적힌 노란 리본을 하나씩 나무에 묶였습니다. 평소 제가 당연하게만 달고 다니던 노란 리본, 그 위에 꾹꾹 눌러 쓰인 글들을 읽자 ‘잊지 않겠다’는 짧은 다짐에 얼마나 많은 슬픔과 아픔, 시간이 담겨 있는지 다시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화사한 나무 위에서 밝게 빛나면서도 무겁고 슬퍼 보이던 노란 리본들은 여전히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세월호참사의 진실, 요원한 책임자 처벌과 같은 어려운 포기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메시지를 담은 노란 리본이 벚나무에 달리는 모습
세월호참사 희생자들을 기리는 묵념 이후 0416단원고가족협의회 김정화 위원장님의 인사말이 있었습니다. 인사말 일부를 옮겨봅니다.
지난 토요일 비가 많이 왔습니다. 16일 선상 추모식을 준비하면서 비가 많이 오니까 우리 아이들의 눈물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비가 온 뒤의 날씨는 또 왜 이렇게 추운지요. 4월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힘든 달인데 춥기까지 하니까 더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생각했죠. 4월 달력을 찢어버리고,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10년 전에는 교복 입은 학생들을 보면 이 세상에 없는 걸 알면서도 혹시 내 아이가 아닐까 하고, 마음을 두근거리며 따라다녔습니다. 지금은 장성한 청년들을 보면 어떤 모습으로 성장했을까, 또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살아 있다면 친구들과 함께 가장 멋지고 예쁜 모습으로 꿈을 향해 살아갈 우리 아이들. 11년째도 너무너무 보고 싶습니다. 얘들아, 너무너무 미안하다. 그리고 사랑한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사건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대한민국이 더 안전한 나라, 더 행복한 나라가 되어주기를 바라봅니다.
세월호참사 11주기 선상추모식 중 0416단원고가족협의회 김정화 위원장님 인사말
이제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아니라 다 큰 젊은 청년들을 볼 때 떠나보낸 아이를 생각한다는 말. 안산에서 같은 버스에 올라타, 위원장님 바로 뒷좌석에 앉아 이동해 눈을 마주치며 아침 식사도 같이했던 저는 그 말을 여러 번 곱씹었습니다. 제가 그 버스를 타고 함께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죄송해지다가도, 함께 할 수 있게 된 추모식 행사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기자단 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해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여전히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마음, 더 안전하고 행복한 나라를 바라는 그 마음을 생각합니다. 그 마음을 어떻게 감히 가늠할 수 있을까요. 당연하게도 그 마음을 전부 공감하는 건 불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많은 사람들이 11년째 이어지는 그 사과와 바람을 붙잡고 기억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일을 할 수 있길 다짐하고 바라봅니다.
이어지던 추도사가 끝이 나고 단원고 학생들 250명의 이름을 모두 부르는 순서가 진행되었습니다. 사회자는 1반부터 시작해 순서대로 천천히 아이들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 아이들이 모두 자신의 이름을 가진 고유한 존재였다는 것, 그들과 살을 부대끼며 함께 살던 이들에게 그 부재가 얼마나 크고 무거운 것인지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1반, 2반, 3반, 4반……
이어지는 많은 이름. 250명이라는 숫자로는 느낄 수 없었던 한 사람, 한 사람의 무게. 그 무게를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시간이 지나 자꾸만 잊어지려하던 그 생명과 삶의 무게를 어떻게 기억해 나갈 수 있을까요. 하나의 우주라고 표현되곤 하는 한 사람의 삶, 소중한 이들을 잃은 이들의 마음을 겨우 떠올려봅니다.


헌화 / 참사해역을 표시한 부표
추모식의 마지막 순서는 헌화였습니다. 이번 추모식에서 헌화할 꽃은 벚꽃이었습니다. 재단 직원들과 유가족들이 직접 단원고등학교와 안산 일대를 돌며 준비했다는 꽃. 11년 전 아이들이 등하굣길에서 직접 보고 만졌을 그 꽃이 유가족들의 손에 들렸습니다. 밝고 아름다운 벚꽃 아래에서 울고 웃었을 아이들을 떠올리며 각자의 방식으로 인사를 전하고, 대화를 나눈 유가족들은 노란 부표가 보이는 참사 해역에 꽃을 던지고 뿌렸습니다.
참사 해역을 선회해 다시 목포로 출발한 경비함. 바다는 푸르지 않았습니다. 평소보다 바람이 거세게 불고, 파도가 심하다던 바다는 탁한 빛깔로 넘실댔습니다. 취재를 위해 경비함 선상에 서 있던 한 시간 남짓의 시간. 겨우 한 시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파도에 날린 바닷물이 안경에 튀어 시야가 뿌옇게 변했습니다. 차가운 바람에 머리가 얼어 두통이 찾아왔습니다. 멀리서 볼 땐 아름답고 고요하게만 느껴지던 것과 달리 모든 걸 집어삼킬 듯 무섭고 차갑게 흐르는 바다. 누군가가 흘린 눈물로 가득 채워진 바다. 배 위에서 본 바다는 그런 바다였습니다.
‘이제 사월은 옛날의 사월이 아니고, 이제 바다는 옛날 바다가 아니라던’ 노래. 아마 많은 이들이 세월호참사 이후 열한 번째 돌아온 4월 16일을 맞으며 그런 노랫말을 떠올렸을 겁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슬퍼하고, 후회하고, 애도하며 보냈을 시간이 금방 잊히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기사가 잠시라도 이제까지와는 다른 바다를 상상하고, 다른 사월을 떠올리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1년이 지나고도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누군가의 마음을 한 번 더 떠올리며 참사를 기억하길 바랍니다.

오후 3시에는 세월호가 인양되어 있는 목포신항만에서 11주기 목포 기억식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날 기억식에는 0416단원고가족협의회, 416연대, 전남도교육청, 목포중고학생연합회 관계자 등 200명 가까이 참여했습니다. 행사는 개회사, 묵념, 기억사, 추모사, 기억 영상, 추모 공연, 연대사, 추모시 낭송, 선언문 낭독, 헌화, 세월호 기억과 치유의 춤 퍼포먼스, 폐회사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묵념 이후 이어진 세월호 잊지 않기 목포지역 공동실천회의 상임 공동대표이신 박윤숙 대표의 기억사로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다시 다짐합니다. 희생자를 잊지 않겠습니다. 책임 없는 사회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끝까지 행동하겠습니다. 기억은 멈추지 않는 힘입니다. 기억은 우리를 바꾸는 길입니다. 사회적 참사 희생자를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박윤숙 대표의 기억사 中
계속해서 0416단원고가족협의회에 이호진 학생의 어머니 김성하님의 기억사가 이어졌습니다.
많은 사진들 중에 벚꽃나무 곁에서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을 보고 어느 장소인지도 모르고 사진 한 장을 들고 집 근처 많은 벚꽃 나무들 중에 그 나무를 찾아서 해마다 사진을 찍어 남기기도 하고 둘러보기도 하며 한참을 서 있다 보냈지. 어제도 가서 놀다가 또 보다 왔거든. 엄마도 사람인지라 벚꽃이 예쁘기도 하지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고 슬프고 가슴이 저려. (중략) 엄마는 어느새 우리 아들을 유학 보낸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 그런 마음으로 지금까지 잘 견디고 버텨왔던 것 같아. 물론 자주 울컥울컥 올라와 눈물이 나지만.
이호진 학생의 어머니 김성하님의 기억사 中
목포 여자상업고등학교 학생회장인 이세령 학생의 추모사가 진행되었습니다.
그날로부터 11년이 흘렀습니다. 시간은 흘렀지만 그날의 아픔은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 있습니다. 노란 리본 하나 바람에 나부끼는 교복 자락 하나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날을 떠올립니다. (중략) 이날만큼은 모두가 한마음으로 고개를 숙입니다. 세월호에 잠든 아이들은 이제 더 이상 희생자가 아닌 영원한 별이 되었고 하늘에 빛나는 바람이 되어 언제나 우리 곁에 머물 것입니다. 우리는 약속합니다. 절대 잊지 않겠다고 그날의 아픔과 눈물 분노와 다짐은 시간이 흘러도 세월이 지나도 가슴 깊이 새기며 살아가겠다고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그리고 지켜내겠습니다.
목포 여자상업고등학교 학생회장인 이세령 학생의 추모사 中
이어서 김대중 전라남도교육감님의 추모사도 이어졌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서 진실이 더 이상 가리지 않게 하고 책임이 잊히지 않도록, 그리고 다시는 이와 같은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끝까지 노력하겠다고 모두의 마음을 모아 다시 한번 깊게 다짐합니다.
김대중 교육감님의 추모사 中
조성호 목포시 의회 의장님의 추모사로 끝이 났습니다.
오늘 기억식은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안전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우리 모두가 함께 하겠다는 약속의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는 아픔의 봄을 맞이하지 않기 위해 세월호의 기억은 국민을 지켜주는 사회적 양심으로 영원히 살아있기를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그날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조성호 목포시의회의장님 추모사 中


이후 소프라노 김주은 님의 공연과 전남 영재 드림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이어졌습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인 이해린씨의 아버지 이종민님도 연대사를 남겼습니다.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그날까지 흔들림 없이 나아가겠습니다. 사랑하는 아이들을 다시는 만날 수 없지만, 우리는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시민 여러분, 부디 우리 아이들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그리고 긴 여정에 저희들과 함께해 주십시오. 이 땅의 아이들이 안전한 일상을 누리며 각자의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모든 재난 참사 피해자들과 연대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겠습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인 이해린씨의 아버지 이종민님 연대사 中
이후 이어서 목포작가회의 정희정 시인님이 추모 시를 낭송해 주셨습니다.
위로의 말을 고르고 버리고 다시 골랐지만 차마 건네지 못했다.
그 봄을 기억하는 내내 벚꽃 아래 김밥을 나눠 먹고 따뜻한 위로를 더하는 평화로움이 때론 잔인한 일이었다.
살아남은 시간만큼 생긴 그리움 살지 않았고 내내 견디던 그 시간에도 그립지 않은 건 아니었다.
너의 이름을 부르는 이들이 점점 줄어들고 네가 거의 모르는 사람이 되어가다 나도 거의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요즘 가끔 탐험을 한다. 여전히 차고 속절없이 검은 바다 그곳에 손을 뻗으러 너를 만난다.
희망이라 부를까 꿈이라 부를까 다시 널 만났으면 좋겠다.
세월호 참사 11주기 목포 선언문을 낭독했습니다.
1. 세월호 참사의 국가폭력 인정하고 피해자와 국민 앞에 사과하라.
2. 세월호 참사의 성역 없는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
3. 국민의 안전권 보장 위해 생명안전기본법 제정하라
세월호 잊지 않기 목포지역공동실천회의 선언문 中

목포 기억식에 참가한 시민들과 관계자들은 헌화를 하며, 그날의 기억을 되짚습니다. 그들을 기억합니다.

세월호 기억과 치유의 춤을 마지막으로 행사는 마무리되었습니다.
#기억하는_우리가_세상을_바꾼다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사실을 뒤로, 두고 기억하는 추모식임에는 틀림없지만 언젠간 밝혀질 진실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기억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