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청소년부터 어르신까지, 단원고 학생들의 기억을 함께 걷는 5월 | 안산 기억순례길

지난 8일, 생명안전기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바로 다음 날, 올해 5월의 첫 번째 안산 기억순례길이 있었습니다. 이번 기억순례는 31명의 인천시민과 함께했습니다.

 

이번 순례길의 특별한 점은 중학생부터 어르신까지 다양한 나이대의 시민이 참여했다는 점이었는데요. 짱뚱이어린이도서관을 주축으로 지역아동센터의 학생들과 선생님, 연수구 경로당 어르신, 인천평화복지연대 활동가가 모였습니다.

 

기억순례길 프로그램 이전, 인천 서구에서는 세월호 10주기 장편 영화 <목화솜 피는 날> 상영회가 열렸습니다. 참여자 다수는 영화를 보고 세월호참사에 대해 느낀 슬픔과 책임감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피해 당사자가 움직이지 않으면 바뀌지 않아요" – 단원고 기억교실의 고운 어머니 (2학년 1반 한고운 어머니)

 

오늘의 4.16기억교실 도슨트는 단원고 2학년 1반 한고운 학생 어머니였습니다. 12년 후 단원고 2학년 교실은 위치만 달라졌을 뿐, 교실에 있던 책상, 천장, 칠판, 에어컨 등의 물건들은 모두 그대로였습니다.

고운 어머니는 4.16기억교실이 존치될 수 있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로 단원고 부모님의 노력을 떠올리며, 세월호참사 이후에도 참사가 반복되는 상황에 대해 "피해 당사자가 움직이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는 고질적인 문제를 짚었습니다.

 

또 고운 어머니는 대본 없이도 학생들의 장래희망. 2014년 당시 단원고 2학년 학급 각각의 특징 등 세세한 디테일까지도 모두 생생히 해설했습니다.

"혜원이는 수의사가 꿈이었는데, 겨울에도 팥빙수를 먹을 정도로 팥빙수를 좋아했어요"

 

"시계는 수명이 다해서 멈춘 거라 시간이 반마다 다른데, 시계가 416분인 세 반이 있어요. 부모님들이 일부러 맞춰둔 거예요"

 

"담임 선생님 중에는 20대 선생님이 많았고, 두 분은 초임이었어요"

고운 어머니의 해설을 듣고 기억교실과 교무실을 둘러보니, 물건 하나하나, 교실 하나하나가 기억에 선명히 남았습니다.

생일 달력을 두고 반 전체 학생의 생일을 챙겼던 반, 여학생 이과반이지만 사물함은 남학생 이름인 반, 생존자가 19명으로 가장 많은 1반, 생존자가 1명으로 가장 적은 7반.

"시간 좀 더 주시면 안 돼요?"

"저 스탬프 다 모았어요"

 

12시경에, 기억교실을 자유롭게 둘러보던 참여자들은 일정상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했습니다. 학생들은 기억교실을 더 구경하고 싶다는 마음에 아쉬움을 내비쳤습니다. 벌써 기억교실 내 여러 공간을 들르며 스탬프를 다 모았다며 여권을 자랑하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기억전시관으로 가는 동안, 단원고 학생들이 많이 오갔을 고잔공원 주변을 걸었습니다.

 

"애들도 딱 저렇게 등교했을 거예요"

해맑게 뛰어오는 아이들을 보며 고운 어머니가 말을 이어갔습니다. "고운이도 유치원 때부터 오늘은 뭐했다, 누구랑 놀았다, 하루종일 일어났던 이야기를 하나하나 다 말해줬어요"

 

"아이를 만났을 때 내가 떳떳하게 말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 4.16기억전시관의 재강 어머니 (2학년 7반 허재강 어머니)

 

"진상규명이 돼야 돼. 내가 그래도 니한테 너를 못 지켜줘서 미안한데, 정말 미안한데, 그래도 이렇게 움직여서 진상규명이라도 해줘야 걔를 내가 만나더라도 조금, 쪼금은 걔를 만났을 때 음 덜 미안할 것 같애요. 그래서 그 아이를 만났을 때 내가 "엄마 이렇게 했어" 하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어야 될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그래서 진상규명이 될 때까지 내가 아프지 않는 이상 그냥 될 때까지는 해야 한다고…"

기억전시관에서는 작품 속 구술 발언의 주인공인 2학년 7반 허재강 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참여자들은 세월호 12주기 협력 전시인 <세월의 생명들>의 작품을 둘러봤습니다. 재강 어머니가 설명하신 이번 전시의 의미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순환이 완성되는 것"이었습니다.

<세월의 생명들>이라는 전시 제목에 맞게, 작품 속 틈새를 비집고 피어난 식물들에서 강한 생명력이 느껴졌습니다. 재강 어머니는 "기억은 잊을래도 잊히지 않는다"는 것, 또 "환경이 허락하지 않는 곳에서도 생명의 뿌리가 내린다"는 의미라며 작품을 만든 작가님의 의도를 전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스스로가 느끼는 대로 해석하면 된다"고도 덧붙였습니다.

"눈에서 멀어지면 기억에서 사라지고, 기억에서 사라지면 참사는 반복됩니다"- 단원고&4.16생명안전공원의 주현 어머니 (2학년 8반 안주현 어머니), 순범 어머니 (2학년 6반 권순범 어머니)

 

이어서 기억전시관에서 단원고까지, 또 단원고에서 4.16생명안전공원까지 가는 길은 2학년 8반 안주현 어머니와 6반 권순범 어머니와 함께 걸었습니다.

 

멀리서도 순범 어머니의 노랑머리는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꾸준히 노랑머리를 유지하시는 순범 어머니는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으로도 활동하고 계십니다.

"우리 손 잡읍시다"

기억순례길을 걷던 학생들이 먼저 순범 어머니의 손을 잡았습니다. 순범 어머니와 학생들은 416기억전시관에서 단원고까지, 단원고에서 생명안전공원까지 걷는 동안 꼭 잡은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을 수면 위로 올리고, '(아이들이) 이제 안전한 곳에 있다'는 의미예요"

단원고 건물 뒤편 고래 조형물 <노란 고래의 꿈>을 바라보며, 주현 어머니는 노란 고래의 의미를 설명했습니다.

"눈에서 멀어지면 기억에서 사라지고, 기억에서 사라지면 참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어요. 저는 허무하게 아이를 보냈지만, 여러분은 같은 아픔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가치를 발휘할 수 있도록 함께 발맞춰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주현 어머니는 "참사가 국민 모두에게 마음의 상처를 남겼다"며, 순례길을 걷는 내내 '우리 모두의 안전'을 강조했습니다.

4.16생명안전공원은 참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산속이 아닌 도심에 지어지는 최초의 봉안시설이자, 시민 모두를 위한 공원입니다. 내년 여름쯤 완공될 것으로 예상되는 생명안전공원에 대해서는 "우리 단원고 아이들도 생각할 수 있고, 미래세대 아이들이 자라서 꿈을 키울 수 있는, 생명과 안전의 발판이 될 수 있는 공원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전했습니다.

 

순례길 전날 생명안전기본법이 통과된 만큼, 주현 어머니는 참여자들과 함께 생명안전기본법의 의미를 되새겼습니다.

 

"법안을 발의한 지 6년 만에 통과된 거예요. 이날 생명안전기본법 표결 순서가 47번째였는데, 개헌 안건도 있어서 생명안전기본법 표결 결과를 알기까지 오래 걸렸어요. 그동안은 참사 현장에 부모가 먼저 갔습니다. 다시는 그런 참사가 없어야겠지만, 참사가 일어난다면 국가가 더 먼저 가서 빨리 수습할 수 있도록 하는 걸 골자로 하는 거예요."

 

"기본법 제정은 시작이고, 시행령을 잘 만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은'이 주어가 되어야 해요" –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간담회의 윤희 어머니 (2학년 9반 진윤희 어머니)

 

오늘 간담회는 김순길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이하 가협) 사무처장이자 단원고 2학년 9반 진윤희 학생 어머니가 진행하셨습니다.

 

간담회를 듣던 참여자에게서, 안타까운 마음에 "왜 비행기가 아닌 배를 탄 것이냐"는 질문이 들어왔습니다. 윤희 어머니는 "수학여행 전 설문지를 돌렸다"며, "당시 매체에서 여행상품으로 배로 가면 1박 2일 묵으며 불꽃놀이도 할 수 있다는 것을 홍보했는데, 비행기로 가는 것보다 추억 쌓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고 답했습니다.

"원래는 '모든 국민'이 일상에서 안전사고의 위험으로부터 생명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고 명시했는데, '모든 사람'이 주어가 되어야 해요"

 

안전권 보장에 대한 논의가 '국민'으로 제한될 때는, 이태원 참사처럼 이주민과 외국인이 보호받기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세월호참사에도 몇 년이 흘러서야 피해자가 더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수학여행 불참자."

 

몸이 아프거나, 대회에 출전해서 수학여행에 가지 못한 학생도 소중한 친구를 잃은 피해자인데, '생존자'라고 해야 할지, '피해자'라고 해야 할지 정체성에 혼란을 겪은 시기가 있었습니다.

 

재난안전법에는 피해자의 권리와 시민의 안전권이 명문화되어 있지 않았지만, 생명안전기본법 발의안에는 피해자 범위를 확대하고, 국가의 구조 의무를 명시하려는 노력이 담겨있다고 말했습니다.

가협은 미공개된 세월호 자료 공개를 요구하고, 8개 참사의 구심점으로 참사 피해자들과 연대하고, 다시는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가협으로 활동하며 좋았던 순간에 대해 윤희 어머니는 '12년 동안 당사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함께 해주는 사람들'을 떠올렸습니다.

 

또 가장 보람 있던 순간으로 정기적으로 기금을 모아 4.16재단에 위탁하여 진행하고 있는 학교밖청소년과 소외계층 청소년 장학금을 지급하는 4.16청소년지원기금을 꼽았습니다. 지원을 받은 청소년 중에는 치과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해 어금니가 없는 학생이 있었는데, 기금으로 임플란트를 지원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의 아픔을 기억하는 인천평화복지연대 선생님은 참사 피해자 인정 범위 확대를 위한 세월호 유가족의 노력에 감사를 표했습니다. "시민사회의 관심이 모이지 않아 외롭게 싸우고 있을 때, 세월호 유족분들이 다시 살려주었다"는 소감을 나눴습니다.

 

눈물이 날 것 같다며 쉽게 입을 떼지 못하던 다른 선생님은 "신안산대 다니는 동생이 있는데, 이렇게 (기억교실이) 가까운 곳에 있는 데도 몰랐다", "교실을 들어가는 순간부터 눈물이 났다"며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이어갔습니다.

 

연수2동 경로당 어르신은 "남인 나도 서럽고 눈물이 나는데 부모님은 12년 동안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라며 '분노, 통곡, 대단, 용기'라는 말로 단원고 부모님에 대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세월호는 남 일이 아니고 내 일이구나를 또 한 번 느꼈다" "피눈물 흘리며 정부와 싸워서 이렇게까지 이뤄냈다는 게 대단하다"고 말하며 끝내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짱뚱이마을도서관 관장님은 기억순례길에 참여한 소감으로 "1년에 한 번이라도 오면 좋겠다"는 마음을 전하며, 세월호 12주기를 맞아 준비한 12개의 책갈피를 윤희 어머니께 전달했습니다.

"한 번이라도 (기억순례길에) 왔다 간 사람의 마음에 어떤 게 새겨지는지 오늘 알았어요." – 짱뚱이마을도서관 관장님

생명안전기본법 제정 이후 인천시민과 함께한 오늘의 기억순례길은, 참여자들이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보는 안전이 아니라, 슬픔을 가까이 들여다보고, 추억을 건너서, 각자의 위치에서 모두의 안전을 다짐하게 되는 약속의 자리였습니다.

 

"기억교실은 슬픔이 아니라 추억을 만나는 곳"이라는 나레이션이 떠오릅니다. 기억교실에서 나아가 사회 전체가 기억의 공간이 되는 날을 기다리고, 일상이 안전한 사회를 꿈꿉니다.

 

아이들이 마음껏 꿈꾸는, 일상이 안전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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