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재난피해자의 권리, 보호를 넘어 권리로 | 국립재난안전연구원 × 재난피해자권리센터 공동 컨퍼런스

지난 6월 5일, 코엑스 컨퍼런스룸 403호에서 열린 ‘국립재난안전연구원 X 재난피해자권리센터 공동컨퍼런스’는 우리 사회가 재난을 어떻게 대우해야 하는지에 대한 무거운 질문을 던지는 자리였습니다.

이번 컨퍼런스의 핵심은 재난을 ‘사건’으로만 규정하지 않고, 피해자를 ‘권리의 주체’로 재정립하여, 그 권리가 사고 발생 시점부터 수습, 복구까지 단절 없이 이어지도록 만드는 사회적 책무를 확인하는 데 있었습니다.

 

 

“재난은 사건이 아니라, 그 이후의 삶 그 자체다.”

행사장에 들어서기 전까지 저는 재난을 뉴스에서 마주하는 하나의 커다란 ‘사건’으로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컨퍼런스에서 다룬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아리셀 중대재해참사,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참사의 사례들을 마주하며 그 생각이 완전히 깨졌습니다. 컨퍼런스의 주제였던 ‘시선(點), 이어짐(線), 동행(面)’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감성적인 제목이 아니었습니다.

첫 번째 세션인 ‘시선(點)’에서는 피해자들이 겪는 정보의 부재와 행정적 배제가 얼마나 그들을 고립시키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특히 유해 수습 과정이 단순한 행정 절차로 치부될 때 유가족이 느끼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수습이 지연되거나 정보가 차단될 때, 가족들은 고인을 떠나보내기도 전에 이미 차가운 시스템에 의해 두 번 상처받고 있었습니다. 공공의 영역에서 행해지는 무심한 절차들이 피해자에게는 얼마나 거대한 폭력이 될 수 있는지, 그날 현장의 발표를 들으며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두 번째 세션 ‘이어짐(線)’과 종합토론 ‘동행(面)’은 이러한 문제 의식을 해결하기 위한 실무적인 고민을 담고 있었습니다. 흥미로웠던 점은, 단순히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피해자의 권리는 사건 발생 시점(점)에서 멈추지 않고, 회복의 과정(선)을 거쳐 사회라는 울타리(면) 안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였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민간 자원과 공공 시스템의 유기적 결합에 대한 논의였습니다. 정부와 지자체 등 공공 시스템은 법적 책임과 권한, 행정적 절차를 갖추고 있지만 피해자의 심리적 고통을 다독이고 필요를 확인하여 실질적인 현장 생활을 지원하는 데에는 한계가 명확합니다.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 재난피해자권리센터와 같은 민간의 역할이 중요하며, 이들에게 실질적인 제도적 권한이 부여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매우 설득력 있게 다가왔습니다.

 

현장에서 지켜본 관계자들의 눈빛에는 ‘책임감’이라는 단어가 깊게 배어 있었습니다. 컨퍼런스라고 하면 흔히 딱딱한 통계와 수치만이 오가는 것을 상상하기 쉽지만, 이곳에서는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결국 우리 공동체의 인간성을 지키는 일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이번 컨퍼런스는 제게 ‘재난 이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시스템은 언제나 효율을 우선시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은 효율이 아닌 ‘존엄’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사고 수습 과정에서 가족들에게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하고, 그들의 애도를 방해하지 않으며, 함께 걷는다는 느낌을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재난 대응의 방향일 것입니다.

행사가 끝난 뒤, 코엑스의 분주한 일상을 다시 마주했을 때 묘한 이질감이 느껴졌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일상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지옥 같은 시간의 연속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재난피해자들의 권리를 위한 ‘시선’이 모이고, 그들의 아픔이 ‘이어지며’, 우리 사회 전체가 ‘동행’하는 구조가 하루빨리 정착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학술적인 깊이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가장 아픈 곳을 어루만지려는 진정성 있는 노력이 돋보였던, 잊지 못할 오후였습니다.

1세션. 시선() | 재난피해자 권리 보장 실태와 쟁점

인권적 관점에서의 유해 수습의 역사적 맥락과 현재적 과제

(유해정 재난피해자권리센터장)

 

한국 사회의 유해 수습 역사를 돌아보며

재난피해자 권리의 관점에서 현재의 과제를 제시하였다.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과

민간인 학살 희생자 유해 수습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며,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와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세월호 참사 등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 유해 수습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특히 유해 수습은 단순히 시신을 찾는 절차가 아니라,

희생자의 존엄을 회복하고 유가족의 애도권을 보장하기 위한

인권의 문제라는 점이 강조되었다.

 

또한 국제사회의 사례를 소개하며

피해자와 유가족의 정보 접근권과 참여권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의 필요성을 제안하였다.

끝나지 않은 수습과 애도권 침해

(김유진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이후

유가족들이 겪고 있는 현실을 생생하게 전하였다.

 

참사 이후 수습 종료가 선언되었지만,

이후 추가 유해가 발견되면서

유가족들이 다시 장례를 치러야 했던 경험을 공유하였다.

 

정부의 부실한 초기 수습과 정보 제공 부족이

유가족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남겼으며,

이는 단순한 행정적 실수가 아닌 제도적 2차 가해라고 지적하였다.

 

특히 애도는 개인의 감정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보장해야 할 기본적인 권리라는 점이 강조되었다.

나는 오늘도 아리셀로 간다

(이순희 아리셀 산재 피해가족협의회 대표)

 

아리셀 화재 참사로 딸을 잃은 어머니의 입장에서

참사 이후의 삶을 이야기하였다.

 

사고 발생 이후 상당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유해 수습과 진상규명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유가족들은 계속해서 기다림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재난피해자와 유가족들이 단순히 보상을 받는 대상으로 머물러서는 안 되며,

국가와 사회가 피해자의 존엄한 삶과 회복을 위해

지속적인 관심과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스텔라데이지호 미수습자 가족들의 애도할 수 없는 시간

(전남병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참사 대책위원회 위원)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참사 이후

9년이 넘도록 유해를 확인하지 못한 상황에서, 미수습자 가족들이 겪어온 현실을 이야기하였다.

 

가족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확인하지도 못한 채 살아가고 있으며,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또한 정부가 피해자의 알 권리와 참여권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했으며,

추가 수색과 진상규명에 대한 국가의 책임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주장하였다.

 

발표를 통해 애도할 권리 역시

인간의 존엄과 직결된 기본권임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2세션. 이어짐() | 실효적 재난피해자 권리 보장 체계로의 이행을 위한 과제

재난수습과정에서 재난피해자 알 권리와 참여할 권리 보장을 위한 제도 개선방안

소통협의체를 중심으로

(김현성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연구사 · 조영진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선임연구원)

 

재난피해자의 알 권리와 참여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 개선 방향을 발표하였다.

 

발표에 따르면 재난피해자는 권리의 주체이며,

알 권리와 참여권은 모든 권리의 출발점이 된다.

 

피해자는 재난 수습과 진상조사, 정책 수립 과정에서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고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특히 정부와 피해자가 함께 참여하는 '소통협의체'를 제도화하여 정보 비대칭을 줄이고,

피해자의 의견을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는 점이 제안되었다.

재난피해 지원체계의 변화와 미래 과제

재난피해자의 일상회복을 위한 지원받을 권리를 중심으로

(박상현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재난회복연구센터장)

 

재난 지원 체계가

단순한 복구 중심에서

일상 회복 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설명하였다.

 

과거의 재난 지원은 생계비나 임시 주거 제공 등 물질적 지원에 집중되어 있었다면, 최근에는 심리 회복과 공동체 복원, 사회적 관계 회복 등 보다

포괄적인 지원이 요구되고 있다.

 

회복의 주체가 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지원하는 조력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특히 재난 이후의 지원이 단기적인 보상에 머무르지 않고 피해자의 삶 전반을 고려한 장기적인 회복 체계로 발전해야 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동행() | 라운드테이블

재난피해자 권리 보장을 위한 제도 개선과 사회적 연대

 

종합토론에서는 법률가, 연구자, 피해자 단체 관계자,

재난 지원 기관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재난피해자 권리 보장을 위한 제도 개선 방향을 논의하였다.

 

토론자들은 공통적으로 피해자의 알 권리와 참여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정보 공개 확대와 법률 지원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또한 현재의 재난 관련 법체계가 행정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

피해자의 권리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점도 지적하였다.

 

아울러 재난 이후의 회복 과정은 정부만의 책임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시민단체, 전문가가 함께 참여하는 협력 체계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되었다.

(사진7-2)

피해자의 회복을 위한 진정한 동행은

일회성 지원이 아닌 지속적인 관심과 연대를 통해 가능하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마치며

 

이번 컨퍼런스는 재난피해자를 단순한 보호의 대상이 아닌

권리의 주체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 자리였다.

 

특히 유가족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재난 이후에도

피해자들이 오랜 시간 고통을 겪고 있으며,

유해 수습과 애도권, 알 권리와 참여권이 왜 중요한지를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재난은 예고 없이 찾아오지만,

피해자의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는 사회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이다.

 

앞으로는 재난피해자의 목소리가 제도와 정책에 더욱 충실히 반영되어,

피해자의 존엄과 권리가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사회로 나아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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