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재단 청년기자단 활동의 일환으로 세월호 유류품 합동정기점검 및 선별 분류 작업에 다녀왔습니다. 작업은 목포신항만 세월호 거치소 앞에서 이뤄졌습니다. 아침 일찍 용산역에서 KTX를 타고 목포역으로 향했습니다. 작업 시작 시각인 오후 1시에 맞춰 도착한 목포신항만엔 평일이라서인지 인적이 드물었고 초여름의 햇볕을 머금은 미지근한 바닷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출입 서류를 작성한 후 신분증을 맡기고 들어간 거치소 입구엔 컨테이너 세 동이 자리했습니다. 그 컨테이너가 오늘 점검하고 선별할 세월호 유류품들이 보관된 장소였습니다.


컨테이너 전경 / 컨테이너 문에 붙은 유류품 표시
컨테이너 입구마다 유류품이라고 적힌 표지와 분류에 맞춘 번호가 적혀있었습니다. 컨테이너 앞에 모인 유가족분들과 관련 단체 분들이 함께 논의하여 폐기할 유류품의 기준과 작업 방식 등을 결정했습니다. 이후 한동안 오늘 일정과 방식에 대한 설명이 진행된 후 순차적으로 여러 단계를 거쳐 작업이 이뤄졌는데요. 취재를 위해 방문한 것이지만 자연스레 저도 작업에 함께 참여했습니다. 오늘 작업엔 4.16재단,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0416단원고가족협의회, 세월호일반인희생자추모관, 세월호잊지않기목포지역공동실천회의 등 여러 관련 단체에서 힘을 모아주셨습니다.
가장 먼저 플라스틱 바구니와 상자에 들어있는 유류품들을 컨테이너 앞 공터로 꺼내는 작업이 이뤄졌습니다. 보관과 관리를 위해 바구니와 유류품엔 모두 번호가 붙어있었고, 그 번호를 고려해 유류품들이 섞이지 않도록 바구니를 순서에 맞춰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컨테이너 입구부터 바구니를 내려놓는 곳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지만 하나씩 꺼내 옮기기엔 시간이 많이 걸려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서서 손에서 손으로 차근차근 바구니를 옮겨야 했습니다.

컨테이너 안에서 줄지어 선 작업자들
진공 처리가 된 비닐 속에는 습기를 측정하는 키트가 들어있었습니다. 부식과 훼손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습기가 차는 것을 감지해 색으로 알려주는 것이었는데요. 바구니를 줄지어 내려놓은 후에는 그 키트의 색이 변하는지, 진공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유류품 내부가 온도 변화와 햇빛에 영향을 받아 달라지는지 등을 확인하는 작업이 이어졌습니다.

습기 점검 키트
진공 처리가 제대로 되었는지를 확인하는 작업과 동시에 앞서 결정한 기준에 맞춰 유류품 중 폐기할 것들을 골라내는 작업도 연달아 진행되었습니다. 여러 번 교차 확인해 걸러낸 유류품들은 별도의 과정을 통해 폐기 처리가 된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작업을 위해 모인 사람들이 수백 개의 바구니를 옮겨 다니며 유류품을 하나씩 확인하고 점검했는데요. 저도 참사 당시 사용했거나 사용될 예정이었을 유류품들을 살피며 신중하게 작업에 임했습니다.

폐기 유류품을 선별 중인 작업자들
작업 중간중간 바구니를 돌아다니며 유류품들을 자세히 살피고 사진으로 남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신발, 학생증, 벨트, 뜯지 않은 새 옷, 모자, 가방, 시계, 동전 등 세월호에 탑승했을 이들이 그 당시 가지고 있던 물건은 제 상상보다 훨씬 다양했습니다. 이 중 대부분은 여전히 주인을 찾지 못한 물건들이었고 당연하게도 주인에게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것들도 있었습니다. 그 물건들을 하나씩 살피며 한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다채롭고 복잡한 것인지를, 그 인생이 사라진다는 건 또 얼마나 큰 슬픔과 흔적을 남기는 것인지 생각했습니다. 주인을 잃은 물건들 앞에서 기억과 추모라는 단어 이상의 크고 어려운 감정을 다시 곱씹어 보기도 했습니다.
오늘 작업에는 목포 생명기억관(가칭) 전시콘텐츠 용역을 담당하는 관련자분들도 참여했는데요. 작업을 함께 도우면서도 유류품 사진을 촬영하거나 아이디어를 스케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후 취재를 통해 몇 년 전부터 4.16재단에서도 유류품을 여러 예술작품으로 창작하는 작업을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참사가 남긴 흔적, 그 상처와 해결이 요원한 진상 규명 등이 예술의 차원에서는 어떻게 다뤄질 수 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조심스럽긴 하지만 유류품이 예술 작업에 훌륭하게 쓰일 때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고,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거름이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품어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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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작업이 완료된 후에는 유가족분들과 커피, 물을 나눠 마시며 그늘막에 앉아 컨테이너 앞 풍경을 바라봤습니다. 구름이 많이 꼈는데도 햇볕은 여전히 강했습니다. 어느새 등은 땀으로 완전히 젖어 축축해져 있었고 입도 바짝바짝 말랐습니다. 반나절에 불과하지만 유류품 점검 및 선별, 재포장 작업을 직접 경험하고 기록하면서 세월호 참사 이후 이뤄진 여러 작업 중 수많은 사람들이 직접 자신의 몸을 써 감당해야 했던 일들에 대해 떠올려볼 수 있었습니다.
줄을 지어 바구니를 하나씩 건네주고 건네받는 작업처럼 제가 상상하지 못하는 일들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이뤄졌을 겁니다. 머리를 맞대고, 땀을 흘리고, 허리를 숙이고 펴며 통과했을 사람들을 다시 생각하며 그 노고에 존경과 감사를 느꼈습니다. 그들이 자신의 시간과 몸, 체력을 선뜻 내어놓았기에 한국 사회가 이렇게나마 변해올 수 있었단 사실에 문득 부끄러워지기도 했습니다.

작업 후 컨테이너로 돌아간 유류품 바구니
유류품 점검과 재포장은 일 년에 한 번 이뤄진다고 합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유류품이란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 여전히 세월호 앞 컨테이너에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 그걸 꾸준히 관리하고 보존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할 듯합니다. 이번 취재 전에는 저도 그러했으니까요. 그렇다면 이 글을 읽게 될 사람들이 참사 이후 보관되고 보존되고 있는 유류품에 대해, 그걸 보존하는 일의 필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기억한다는 말, 추모라는 단어가 텅 빈 외침으로만 남지 않기 위해서 각자의 영역에서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한 번쯤 고민해 보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