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재단은 세월호참사의 아픔을 기억하며, 생명과 안전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걸음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 풀어가야 할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에 4·16재단은 재난참사를 겪은 청소년·청년들이 자신의 삶을 이어가며 회복과 성장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응원하는 ‘기억의 수호자‘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기억의 수호자‘를 통해 조성된 기금은 9월부터 청년들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하는 ‘꿈 응원 사업‘과 ‘일 경험 과정‘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세월호참사를 품은 안산에서 오랜 시간 문화예술인으로 활동하며 피해자들과 함께해온 김태현 경기민예총 이사장을 만났습니다. 특히 세월호참사 이후 피해 가족들과 함께 연극을 만들고, 11년 째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을 이끌며 무대에서 기억의 목소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세월호참사를 마주한 뒤 문화예술을 통해 피해자들과 어떻게 함께해왔는지, 그리고 ‘기억의 수호자‘ 캠페인에 함께하게 된 이유와 그 의미에 관해 이야기 나눴습니다.

“법과 제도만으로는 바꿀 수 없는 것, 문화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현재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도 함께 소개해 주세요.
저는 오래도록 안산에서 연극을 해온 사람입니다. 세월호참사를 계기로 연극인에서 문화 기획자로 활동 영역을 조금 넓혀왔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연극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놓지 않고 이어갈 수 있도록 신께서 기회를 주신 것인지(웃음), 세월호 어머님들과 11년째 연극을 함께하고 있어요. 또 다른 한편으로는 안산이라는 도시가 품고 있는 다양한 정체성과 여러 면모를 문화 기획 활동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안산을 생명안전 도시로 만들어가는 데 기여하고, 동시에 문화다양성 도시로 나아가는 데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문화라는 매개를 통해 지역 주민들이 안산이 품고 있는 다양한 가치와 이야기를 만나고,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씀드립니다.
※ 김태현 이사장은 안산을 기반으로 오랜 기간 극단 걸판, 안산민예총, 컬쳐75 등 문화예술 조직에서 대표로 활동해 왔습니다. 세월호참사 이후에는 2015년 피해 가족들이 참여하는 극단 ‘노란리본’을 만들고, 지금까지 연출가로서 함께 하고 있습니다.
2014년 4월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14년 당시, 세월호참사를 처음 접하셨던 순간을 어떻게 기억하시나요?
그날 아침 대학 동기에게 연락 받아 처음 들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안산 지역 학생들의 이야기라 뉴스를 찾아봤고, 너무 놀랐죠. 당시 저에게는 무엇보다 제가 알고 있는 아이의 생존 여부가 큰 뉴스였습니다. 선배의 딸이 단원고 2학년이었거든요. 선배와 통화를 했는데, 진도로 내려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잠시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사실 그날은 제가 함께하고 있던 극단 ‘동네풍경’의 정기 공연을 한참 준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극장에서 공연을 위한 무대와 조명을 준비하다 소식을 들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오늘 공연을 못 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곧 ‘전원 구조’라는 뉴스가 나온 거죠.
그래서 ‘공연하자‘라고 생각하고 다시 무대 준비를 계속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보도가 오보였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도 그날은 모두 구해질 거라고 당연히 생각했던 것 같아요. 공연을 보러 오기로 한 분들과의 약속도 있었기 때문에 결국 공연은 진행했습니다.
충격적인 일이었죠. 공연을 준비하면서도 계속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그러면서도 처음 일주일 정도까지는 ‘못 구해낼 이유가 없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뉴스 화면을 통해 배가 가라앉는 모습만 보게 된 거죠. 그때 가장 크게 느꼈던 감정은 무력함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컸던 것 같아요.
문화예술인으로서 세월호참사와 피해 가족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함께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을까요?
당시(2014년) 저는 안산민예총 대표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지역에서 펼쳐졌던 촛불문화제에 적극적으로 함께 했습니다. 사무국 활동가들과 문화예술인들이 함께 매일 촛불문화제를 준비했던 기억이 나네요.
아마 그해 7월쯤이었던 것 같아요. 성공회대 문화대학원 강준혁 교수님을 모시고 특강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다시는 이와 같은 참사가 일어나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말씀이었어요. 법과 제도가 사람들의 행동을 강제할 수는 있지만, 사람들의 마음에 자발성을 불어넣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거죠. 결국 이윤이나 효율보다 생명이 소중하다는 당연한 가치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자발적으로 생겨나게 하려면, 사람들의 마음을 살피고 보살피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세월호참사 이후에는 문화가 해야 할 일이 많고, 문화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야기가 제게는 굉장히 깊이 남았어요. 그리고 돌이켜보면 그때 들었던 말씀이 세월호참사 이후 제가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생각하게 된 중요한 방향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사진> 세월호참사 12주기 4월 연극제 ‘노란 빛 사람들’ 개막식 사회를 보고 있는 김태현 이사장
“어머님들이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도 관객들은 큰 감동을 받더라고요”
그렇게 활동을 이어오다 세월호 어머님들과 만나 극단 ‘노란리본’을 만들고, 어느덧 11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걸어오셨습니다.
당시 부모님들은 오랫동안 분노와 슬픔, 그리고 무력감 속에 계셨을 텐데요. 그런 분들에게 ‘연극을 함께 해보자’라고 제안하는 일이 절대 쉽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처음 어머님들을 어떻게 만나게 되셨는지, 그리고 어떤 계기로 연극을 제안하고 극단을 꾸리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세월호 어머님들과 연극을 하기 전부터 안산 곳곳에서 시민극단을 만드는 일을 해왔어요. 그래서 세월호참사를 겪으면서도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가족들과 연극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다만 그때는 최소 5년 정도는 지나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만큼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제가 먼저 제안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지역에서 커피 공방을 운영하시던 한 선배가 연락을 주셨어요. “어머니들이 연극을 하고 싶어 한다”라는 이야기였어요. 너무 놀랍고 반가워서 바로 대본을 들고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막상 만나보니 어머님들은 연극을 하고 싶은 상태가 아니었어요. 아직은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셨던 거죠.
그래도 그 자리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간단한 연극 놀이를 함께 해봤습니다. 처음에는 유가족분들과 이런 유쾌한 연극 놀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 땀을 뻘뻘 흘리기도 했어요. 몸으로 무언가를 표현하는 놀이였는데, 어느 순간 어머님들이 빵 웃음을 터뜨리셨어요. 그 웃음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분들이 참사 이후 일상에서 마음 놓고 웃을 수 있는 순간이 얼마나 될까.’
그때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이라도 이분들이 마음 놓고 웃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유가족이라는 이유로 세상의 시선을 의식하며 지내오셨을 텐데, 적어도 연극을 하는 시간만큼은 ‘연극을 배우고 경험한다‘라고 충분히 웃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비록 다음 주에 다시 찾아갔을 때는 절반 이상이 오지 않았지만, 그날 어머님들이 보여주신 웃음이 저에게는 오래 남았습니다. 그 웃음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함께 계속해 봐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됐던 것 같아요.
어머니들과 함께 연극을 준비하고 무대에 서는 과정을 만들어 가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었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처음엔 연습만 하다가 ‘공연‘을 해보자고 했더니 엄마들이 “무슨 말씀이세요?” 하며 놀라더라고요. 그래서 15분 정도 되는 짧은 단막극을 한번 올려보자고 했어요. 어머님들이 가장 좋아했던 극단 걸판의 <그와 그녀의 옷장> 중 한 장면을 15분짜리 단막극으로 만들어 첫 무대에 올렸습니다.
어머님들에게는 연극도, 무대에 서는 것도 처음이었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어요. 공연을 앞두고 분장을 해드리는데, 한 어머님이 “내 얼굴에 화장하는 게 정말 오랜만이네요.”라고 말씀하셨어요. 아이를 떠나보낸 뒤에는 화장도 하지 않고 지내셨던 거죠.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일이 그분에게는 오랜만에 일상을 마주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첫 공연을 마친 뒤 어머님들이 무척 좋아하셨어요. 이후 서울 공연을 비롯해 여러 무대에 서면서 조금씩 연극의 즐거움도 알아가셨죠. 무엇보다 제가 좋았던 건 어머님들이 연극을 하면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다시 느끼는 것 같았다는 점이에요.
사실 초기에 세월호 가족들 사이에서는 ‘이 와중에 무슨 연극이냐’라는 이야기도 있었어요.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가야 하는데 연극을 한다고 하니, 도대체 무엇을 하는 건지 잘 모르셨던 거죠.
그러다 가족협의회에서 마련한 워크숍에서 저희가 <기억여행>이라는 작품을 가족들 앞에서 처음 공연하게 됐습니다. 공연이 끝나자, 배우들도 관객들도 서로 얼싸안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때 가족들이 비로소 알게 된 것 같아요. “아, 노란리본 극단이 그냥 연극을 하고 있었던 게 아니구나. 우리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고, 연극으로도 세월호참사의 진실을 위해 싸우고 있었구나.“
그동안 연극을 한다는 것에 대해 가졌던 오해가 한순간에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 순간이 참 좋았어요. 어머님들이 무대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그 모습을 본 가족들이 그 마음을 알아준 순간이었으니까요.
사회적 참사를 겪은 피해 가족들이 직접 무대에 서는 모습을 보면서, 연극인으로서 어떤 마음이 드시는지 궁금합니다.
세월호 어머님들과 10년 넘게 연극을 해오면서 ‘연출자‘로서는 만족스러운 공연이 사실 그렇게 많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공연마다 확인하게 되는 게 있습니다. 배우들이 실수를 하거나 제 디렉팅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관객들은 어머님들의 이야기와 무대에 서 있는 그 존재 자체에 큰 감동을 받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이게 당사자 연극의 힘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전문 배우들이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만들어낼 수 없는 감동이 있어요. 당사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무대에서 말하고, 자신의 존재로 그 이야기를 전하는 힘은 다른 어떤 연극에서도 쉽게 만들어낼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세월호 어머님들과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 이 연극을 ‘당사자 연극‘이라고 명명하고, 하나의 의미 있는 연극 작업으로 바라보게 됐어요.
특히 사회적 참사를 겪은 당사자들이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반복되지 않는 세상을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연극을 계속한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투쟁의 방식이 예전만큼 힘을 발휘하기 어려운 시기에도 어머님들은 여전히 연극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연극을 통해 서로를 위로하는 동시에 ‘우리는 여전히 싸우고 있다‘라는 자부심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4·16재단이 이어오고 있는 ‘4월 연극제‘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세월호참사를 모티브로 하거나 여러 재난참사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데, 연극제가 새로운 창작의 계기를 만들어주고 있거든요. 매년 공모가 나오면 ‘이번에는 어떤 작품을 만들어볼까?’ 생각하며 새로운 창작에 나서는 연극인들도 생겨났습니다.
노란리본 극단의 활동과 전문 연극인들의 창작, 그리고 4·16재단의 연극제가 서로 맞물리면서 세월호참사를 잊지 않고 계속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하나의 순환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새로운 작품이 계속 만들어질 수 있도록 더 힘을 보태야겠지만, 이처럼 참사를 기억하고 이야기하는 창작의 흐름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위해서 시원하게 ‘가치 소비’ 한 번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기억의 수호자’ 캠페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4·16재단은 세월호참사를 포함한 사회적 참사를 겪은 청소년·청년들이 충분히 도전할 기회를 만들어주고자 기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이 캠페인 참여를 제안 받았을 때 어떤 의미에서 참여하게 됐는지, 또 재난참사를 겪은 청소년·청년을 응원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이야기해 주면 좋을 것 같아요.
처음 ‘기억의 수호자’ 캠페인 참여를 제안받았을 때는 4·16재단이 하는 일이니까, 또 박성현 처장님이 제게 함께하자고 제안한 일이니까 당연히 의미와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그래서 ‘기억의 수호자’가 되는 것도 충분히 의미 있겠다는 생각으로 참여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월호참사 이후 우리가 계속 함께해야 할 세대가 바로 청소년·청년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참사 당시 제가 가장 크게 느꼈던 감정 중 하나가 무력감이었는데 캠페인에 참여하면서 그때의 무력감을 조금이나마 넘어설 기회가 열린 것 같아요. 재난을 겪은 청소년·청년들에게 우리가 무언가를 해줄 수 있고, 곁에 있어 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의미가 큽니다.
그리고 ‘기억의 수호자’ 후원회원에게 굿즈를 보내주잖아요. 그것도 정말 정성이 느껴져서 좋았어요. ‘기억의 수호자’는 후원자에게도 마음을 잘 돌려주는 캠페인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것들을 받아보면서 ‘내가 기억의 수호자가 되기를 잘했다’ 하는 자부심도 생겼어요.
최근 ‘기억의 수호자’ 기금으로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됐습니다. 이태원참사 생존 청년들과 세월호참사 희생자의 형제자매, 생존 청년들이 함께하고 있는데요. ‘꿈 응원’ 사업에 25명의 청년이, ‘일 경험’ 과정에 3명의 청년이 참여하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새로운 걸음을 내딛고 있는 이 청년들에게, 응원의 이야기를 전해주신다면 어떤 말씀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저는 청년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사회적 참사가 발생한 것은 오롯이 사회가 책임져야 할 일이잖아요. 사회가 책임져야 할 일에 대해 책임을 다하는 과정에서 여러분에게 지원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참사 피해자로서 여러분이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물론 누군가에게 도움 받는다는 것이 마냥 편한 일은 아닐 수 있어요. 참사의 피해자가 된 것 자체도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고요. 하지만, 이 지원을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 받고 있다’라는 마음보다는, 사회가 져야 할 책임을 다하는 과정에서 내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에게 주어진 이 기회를 충분히 누리고, 새로운 것을 마음껏 시도해 봤으면 합니다. 이왕 누리는 거라면 조금 더 편안하고, 가능하면 즐겁고 유쾌하게 누렸으면 좋겠어요. 그것이 사회가 여러분에게 해야 할 책임을 제대로 받아들이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사실 적지 않은 금액을 선뜻 후원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기억의 수호자’ 캠페인 참여를 고민하고 계신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저는 자신을 위해 돈을 쓰는 일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힘들게 일하고 돈을 벌었다면, 그 돈으로 나를 위해 시원하게 한 번 쓰는 것도 일상을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이잖아요.
그런데 자신을 위해 돈을 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죠. 그중 하나가 ‘가치 있는 곳에 돈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억의 수호자’를 통해 한 달에 5만 원씩 후원하는 것도 어쩌면 청소년·청년을 위해서만 돈을 쓰는 일은 아닌 거죠. 결국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돈을 쓰는 것이고, 그 마음이 다시 나에게도 자부심으로 돌아오는 거니까요.
요즘 ‘가치 소비’라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단순히 필요한 것을 사는 데 그치지 않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소비를 통해 표현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기억의 수호자’ 후원은 꽤 트렌디한 가치 소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도 자신을 위해 한 번 시원하게 ‘가치 소비’를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기억이 힘이 될 수 있도록 기억의 수호자가 되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