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클리핑] 304명 앗아간 참사에도 국가재난대응 없었다 [세월호 10주기]<상>

언론 속 4.16
작성자
4・16재단
작성일
2024-01-03 14:50
조회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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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기사 내용

 

세월호 참사가 2024년 새해로 10주기를 맞는다. 가족 곁에 돌아오지 못한 5명을 비롯한 304명의 소중한 생명이 세상을 떠났다. '진실'과 함께 침몰한 세월호를 인양하고 육상에 거치하는 데에만 4년 넘게 걸렸다.

침몰 원인과 구조 실패 경위 등에 대한 수사와 정부 공식 조사만 9년간 총 9차례. 그럼에도 여전히 구할 수 있었던 생명이 왜 돌아오지 못했는지 명쾌하게 답하기 어렵다. 그 사이 구조 실패의 직접 책임으로 형사 처벌된 해양경찰은 단 1명에 그치며 사법 절차가 일단락됐다.

흐르는 세월 속에 안전사회 건설 다짐도 점차 희미해져만 간다. 세월호 이후에도 미리 막을 수 있었던 대형 참사는 어김 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얼마나 더 안전해졌을까. 세월호가 남긴 가슴 아픈 교훈을 다시 짚어볼 때다. <편집자주>

(중략) 주무 부처였던 해양수산부·안전행정부는 '컨트롤타워'인 청와대에 보고하지 않았고, 언론 보도로 안 청와대가 첫 공식 보고하고 대통령의 첫 지시가 내려질 무렵 세월호는 이미 급격히 가라앉고 있었다. 사실상 국가 재난대응 체계는 작동하지 않았다.

침몰 당일 스스로 빠져나오거나 구조된 선원·승객은 172명. 같은 해 11월 11일까지 210일 가량 실종자 수색이 펼쳐졌지만 유해만 수습했을 뿐, 추가 생존자는 없었다.

사고 해역과 가까운 진도 팽목항은 수색 기간 내내 유족들이 통곡과 절규 속에 수습된 희생자 유해를 맞으면서 비극을 상징하는 장소 중 하나로 남았다.

세월호에 탄 총 476명(승객 443명, 선원·승무원 33명) 중 304명이 소중한 생명을 잃었다. 이 중 250명은 수학여행에 나섰던 경기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다. 희생자 중 5명은 끝내 유해조차 수습하지 못했다.

진실과 함께 바다 깊숙이 누워있던 세월호는 우여곡절 끝에 인양, 참사 1486일 만인 2018년 5월 10일에야 목포신항만에 바로 세워졌다.

이로써 참사 4년여 만에 침몰 원인 규명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선체 조사가 시작될 수 있었다. 그러나 선체 곳곳이 잘려 나간 채 녹이 슨 세월호에서 복잡한 진실 퍼즐 조각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이후에도 진상 규명은 난관에 직면할 수 밖에 없었다.

김종기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1일 "참사 이후 여러 차례 수사와 정부 조사가 있었다. 그러나 한계는 분명했다. 우리는 아직도 세월호가 어떻게 침몰했는지, 왜 (적극) 구조하지 않았는지를 정확히 모른다"라고 밝혔다.

 

뉴시스 / 박주성, 변재훈, 류형근, 이영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