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4일 안산 기억순례가 진행됐다.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가족협의회)가 주관하는 기억순례는 유가족의 설명을 들으며 4.16 생명안전공원, 단원고, 4.16 기억전시관, 단원고 4.16기억교실 등을 방문하는 도보 탐방 프로그램이다. 이날 기억순례에는 건국대, 서울여대, 이화여대, 한양대 학생들이 참석했다.
첫 순서인 '세월호 참사 피해자와 함께하는 간담회'가 진행될 가족협의회에 일찍 도착해 곳곳을 기웃거리던 기자 앞에 한 회색 고양이가 나타났다. 덩치가 작고, 아주 부드러워 보이는 연회색 털을 가진 고양이였다. 고양이는 반갑게 손을 흔드는 기자를 지그시 보다가 이내 제 갈 길을 갔다.
"사월이하고 오월이가 있어요. 둘 다 여기 와서 만난 애들. (저 고양이는) 아마 사월이랑 오월이가 낳았을 거야." 친근하게 말을 걸어온 건 생존학생 장애진 씨의 아버지 장동원 씨였다. 애진 아버지를 따라 들어간 가족대기실에는 행사 진행을 맡은 1반 수진 어머니 남영미 씨와 2학년 6반 태민 어머니 문연옥 씨, 동영 어머니 이선자 씨, 호성 어머니 정부자 씨가 있었다.
고양이를 만났다고 하자 모두가 반가운 기색을 내비쳤다. "자꾸 밥을 주니까 소문 듣고 오나 봐." "이 밑에 구멍 보면 고양이가 살고 있어." "가끔 이 건물이 자기 거라면서 한 번씩 싸워." 함께 가족협의회 건물이 고양이들에게 인기인 이유를 추측하다 보니 시작 시간이 됐다.
그 힘으로 12년 버텼다
오후 1시 40분경, 가족협의회 총괄팀장 애진 아버지와 70여 명의 참가자가 자리한 가운데 간담회가 시작됐다. 애진 아버지는 '어떻게 12년을 버텼냐'는 질문에 "오직 진상규명 하나만 보고 왔다"고 말문을 뗐다.
참사 이후 12년, 아직도 세월호가 침몰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침몰 원인을 마지막으로 조사한 건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이다. 사참위는 침몰을 둘러싼 여러 의혹에 대해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2022년 6월 활동을 종료했다. 애진 아버지는 사참위가 "국가가 구조하지 않았다"고 권고했을 뿐 당시 청와대의 행적에 관한 기록도, 진술도 확보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또 "국가가 책임을 인정하고 '다시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국민의 안전을 지키겠다'고 한마디만 해도 억울함이 조금은 풀릴 것 같은 거죠"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유독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냐는 질문에 애진 아버지는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됐을 때"라고 답했다. 침몰 원인 규명과 특별조사위원회 구성을 골자로 하는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은 2014년 11월 7일 국회를 통과했다. 참사 205일 만이었다. 약 600만 명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서명했다. 유가족과 시민의 힘으로 만들어낸 결과였기에 더욱 의미가 컸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한국사회에는 몇 번의 참사가 반복됐다. 세월호 가족들은 연대자로, 조력자로 비슷한 아픔을 겪은 이들의 곁을 지켰다. 애진 아버지는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2022년 10월 29일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응급구조사로 일하는 딸에게 소식을 들었다. '놀러갔으면 본인 안전은 알아서 해라'거나 '보상은 얼마나 받을 거냐' 등 무분별한 2차 가해가 쏟아졌다. 세월호 참사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그때 부모님들 다 완전 혼란이었어요. 집에서 나오지도 않았어요."
국가는 이태원 가족들과 세월호 가족들의 접촉을 막았다. 세월호 가족들이 '정치적'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참사 후 석 달이 지나고 처음으로 만난 자리에서, 세월호 가족들은 "우리가 더 열심히 싸웠으면 이태원 참사 같은 참사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후 이태원 가족들과 세월호 가족들은 생명안전기본법 제정 등을 위해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애진 아버지는 이를 '아픈 연대'라고 표현하며, "잊는 순간 참사는 되풀이되니" 관심을 기울여 달라는 말로 간담회를 끝맺었다.
가까이서 너를 기억하고자
이어 참가자들은 2개 조로 나뉘어 공사 중인 4.16 생명안전공원으로 이동했다. 세월호 특별법에 따라 조성되는 생명안전공원에는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봉안시설과 추모공간이 마련된다. 단원고에서 멀지 않은 화랑유원지가 부지로 선정됐으며, 2027년 완공될 예정이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이 '혐오시설'이라고, '땅값이 떨어진다'고 반대했다. 일부 국회의원과 시의원은 '납골당 설치 반대'를 공약으로 걸었다. 반대하는 의원들과 지역 주민을 설득하는 데만 약 8년이 걸렸다.
유가족들이 화랑유원지를 고집한 이유는 무엇보다 아이들이 자라온 터였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뛰놀던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태민 어머니는 안산을 떠나고 싶었지만, "아이들의 기억이 있는 곳은 안산이니까, 안산을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주민들에게 접근할지 고심했다. 태민 어머니는 각종 자격증을 취득하고 체험 부스를 열어 사람들에게 다가간 기억을 떠올렸다.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든 뒤 세월호 유가족이라며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거의 8년간 주민들을 만나러 다녔어요. 왜 이런 활동을 하고 아직까지 움직이는지 설명하면 대부분 그렇구나 인정하세요. 그렇게 공감해 주는 게 너무 고마워요."
"일 년에 한 번 가는 추모 공원이 아니라 평상시에 무언가를 하거나 배울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태민 어머니의 바람처럼 생명안전공원은 애도를 일상에 자연스레 녹이려 한다. 태민 어머니는 "혐오 시설이 아닌 생명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라요"라며 말을 마무리했다.
노란 고래 날아오를 날까지
차창 밖 풍경에 시선을 빼앗긴 새 단원고에 도착했다. 운동장 건너편에 난 길로 올라가면 세월호 참사 추모 조형물 '노란 고래의 꿈'이 나온다. 단원고는 희생학생들이 참사 직전까지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던 곳이다. 그러나 추모공간을 마련해달라는 유가족의 요청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태민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아이들을 기억할 수 있는 공간 하나만 만들어달라고 싸운 끝"에 2018년 11월 설치됐다.
조형물은 옆에서 보면 고래, 위에서 보면 노란 리본 형태이다. 고래가 희생자들을 등에 태우고 밝고 안전한 곳으로 떠오른다는 의미가 담겼다. 조형물 앞에는 희생자들의 이름과 학번이 쓰인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추모비 주변에는 노란 개나리가 피었고 고개를 들면 교정을 채운 벚나무가 보인다. 그곳에서 태민 어머니는 "우리 아이들이 지금처럼 벚꽃이 예쁜 4월에 떠났잖아요"라며 묵혀둔 이야기를 꺼냈다.
"참사가 터졌을 때 벚꽃이 너무 싫었어요. 눈에 너무 많이 들어왔고, 아이들이 떠나기 전 학교 앞 벚나무에서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었어요. 그래서 안산에 있는 벚나무를 다 베고 싶을 정도로 그 예쁜 꽃이 너무 싫었어요. 당시엔 힘듦만 있었는데 지금은 예쁘다고 느껴요. 사실 느끼면 안 되죠. 왜냐면 자식을 떠나보낸 엄마니까."
여기까지 말하고 목이 멘 태민 어머니가 말을 멈추자 곳곳에서 옅은 탄식이 새어 나왔다. 그렇지 않다며, 고개를 젓는 이도 있었다. 태민 어머니는 "떠난 언니 오빠들이 하늘에서 뭘 요구할지 생각해 보면 '동생들이 안전한 데서 살았으면 좋겠다', '생명을 구할 수 있음에도 구하지 않는 나라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얘기할 것 같아요"라고 말을 이었다.
"많은 사람이 세월호 가족들한테 10년도 더 지났는데 왜 계속 움직이냐고 물어요. 가만히 있으라고, 뭘 그렇게 요구하냐고. 저는 우리 아이 만나러 갔을 때 '세상이 조금 안전한 곳이 됐어, 지금은 괜찮아'라고 얘기해 주고 싶어요. 그래서 우리 엄마 아빠들이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계속 움직일 거예요."
한 참가자가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태민 어머니에게 건넸다. 이야기를 들은 모두가 새겨진 이름을 전부 기억하겠다는 듯 추모비 앞을 오랫동안 떠나지 못했다.
다음 일정으로는 단원고등학교와 기억전시관을 방문했다. 세월호 가족분들께서 단원고에서 해설을 해주시면서, 세월호 참사 당시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이 사용하던 교실을 그대로 보존해달라고 교육청과 학교에 요구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세월호 가족분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당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교실은 리모델링을 거쳐 현재 일반 교실로 사용하고 있다.
단원고 체육관 맞은편에는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노란 고래의 꿈'이라는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고래 모양의 조형물을 위에서 바라보면 노란 리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4.16 기억전시관은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다양한 전시가 진행되는 곳이다. 매년 찾아올 때마다 전시가 바뀌는데 세월호 가족분의 해설에 따르면 1년에 2회, 매번 다른 전시가 진행된다고 한다. 현재는 세월호 참사 12주기를 맞아 기억의 지속과 희망의 이어짐을 돌아보는 「세월의 생명들 – 열두 해를 지나 희망을 보다」라는 이구영 작가의 아크릴 회화 전시를 진행하고 있었다. 대학생들은 유심히 전시된 작품을 바라보다 가끔 고개를 들어 천장의 조명을 바라보곤 했는데, 천장에 달려있는 조명 하나 하나에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분들을 그린 그림이 들어 있었다.
마지막 일정은 단원고 4.16 기억교실에서 진행되었다. 기억교실은 세월호 참사 당시 단원고등학교의 모습을 기록물의 형태로 온전하게 보존해놓은 공간이다. 천장의 타일 하나, 창가의 창문 하나 빠뜨리지 않고 그대로 옮겨 놓았다.
교실 벽면에는 학생들이 각종 일정을 표시해둔 달력, 수학여행 이튿날이 생신이셨던 선생님을 위해 작성한 편지들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다. 모든 흔적들이 4월 14일을 기점으로 끊겨있어,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하였다.
각 교실에는 학생들의 책상이 놓여있고, 각 책상마다 그 자리를 사용했던 학생에 대한 기록을 열람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고, 방명록도 남길 수 있었다. 그 방명록에 기억교실을 방문한 다른 시민들이 작성해놓은 글들을 볼 수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추모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심하기도 하고, 진심이 담겨있는 마음 아픈 편지에 눈물이 나기도 하였다.
세월호 참사의 기억과 추모에 관심이 있는 시민들이라면 단원고 4.16 기억교실만큼은 꼭 한 번씩 들러봤으면 한다.
기억교실까지 모두 둘러본 이후, 이 날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해주신 세월호 가족분들과 기행에 참여한 대학생들의 단체사진 촬영으로 기억순례길의 모든 일정이 마무리 되었다.
순례길의 첫 일정이었던 간담회의 마지막 순서로 사회자가 "대학생들에게 바라는 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전해주세요."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세월호 가족분께서 '지금처럼 계속해서 대학생들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에 관심을 가지고 찾아오는 것만으로 큰 힘이 된다'고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누군가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기억과 추모에 대해 말하기에 12년이라는 시간은 너무 오래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세월호 가족분들과 연대 시민들에게 12년이라는 시간은 진상규명과 생명안전사회 건설의 필요성에 대해 끊임없이 외치며 사회를 조금씩이나마 변화시켜 온 소중한 투쟁의 시간이자, 앞으로 또 한참 전진할 길이 남아있는 시점이기도 하다. 오늘의 기억순례길은 앞으로의 길에 대학생들도 함께하겠다는 다짐과 약속의 시간이지 않았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