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9년, 그러니까 중학교 3학년 때다. 입이 댓 발 나온 채 교무실 문을 닫았다. 야심 차게 기획한 행사가 칭찬은커녕 꾸중만 잔뜩 들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5주기였다. 습관처럼 도서관 곳곳을 기웃거리다 구석에서 416 단원고 약전을 발견했다. 2학년 1반부터 10반, 선생님들과 못다 한 이야기까지 총 12권. 한명 한명의 삶을 내밀히 들여다보자 다가올 4월을 지나칠 수 없어졌다. 친구들과 계획을 세웠다. 리본을 나누고, 나비를 오리고, 추모 메시지를 받고…. 우리가 또 뭘 할 수 있지?
그렇게 준비했건만 교무실에 불려 가 이런 말을 들었다. 애도는 좋은데 꼭 세월호 참사에 집중해야겠니. 할 거면 안전 전반에 관한 행사로 바꿔라. 제목만이라도 달리할 수 있잖니. 교육청에서 공문이 내려왔다고 했던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하고 원래대로 진행했기 때문이다. 그때 내 곁엔 이해할 수 없는 요구를 그대로 따르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준 친구들과 선생님 몇 분이 있었다.
그로부터 3년 후인 2022년,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다. 조회에 들어온 선생님은 학교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우리끼리라도 애도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고 하셨다. 다 같이 몇 분간 고개를 숙였다. 이후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이태원 참사가 화제에 오르는 일은 없었다.
중고등학교에 다니며 사회적 참사가 무엇인지, 진상규명이 왜 필요한지, 애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고 느낀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 으레 딸려오는 분노와 슬픈 역시 학생인 내 몫은 아니었다. 그래서 어린이와 청소년을 주역으로 당당히 내세운 목포 기억문화제가 낯설었다.
4월 19일, 목포 평화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12주기 목포 기억문화제가 열렸다. 지역단체 26개가 모인 '세월호잊지않기 목포지역 공동실천회의'가 주관했다. 오후 4시 16분에 맞춰 목포 기억문화제가 시작됐다. 박현순 공동실천회의 상임대표가 발언에 나섰다. 박 대표는 "구조할 수 있었지만 구조하지 않았다"며 국가의 사실 왜곡과 은폐, 책임 회피를 비판했다. 그는 "국가는 세월호 참사로 인한 국민 희생, 이어진 민간인 사찰과 진상규명 방해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목포 시민들의 무대가 이어졌다. 김인순 시인은 시 '다시, 진실을 묻습니다'를 낭독했다. "오전 11시 전원구조라는 뉴스에 우와,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온통 물음표뿐입니다. (…) 민간 구조선은 왜 막아 세웠습니까? 해경은, 국가는 왜 그래야만 했습니까? 가만히 있으라, 가만히 있으라. 왜 아이들을 살리지 않았습니까? 책임져야 할 수뇌부는 왜 여전히 무죄입니까?" 시인은 참사 이후 12년이 지난 지금까지 답해지지 못한 질문을 차례로 나열했다. 시는 "진실이 규명되는 그날까지 우리는 멈추지 않고 묻고 또 물을 것이다"라는 다짐으로 마무리됐다.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 김세형 씨도 함께했다. 김 씨는 기타를 연주하며 여객기 참사 이후 지은 추모곡을 불렀다.
목포항도여중 3학년 전애주 씨는 희생 학생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준비했다. 편지를 쓰며 세월호 참사에 대해 찾아본 전 씨는 "관련 자료를 찾아보며 단순 사고가 아님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함께 기억을 나누는 게 유가족분들께 위로가 됐으면 한다"며, "언니 오빠들을 기억하겠다"고 낭독을 마무리했다. "이제 청소년들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앞장선다"는 주최 측에 응답하듯 목포 어린이 소리꾼들과 '전남 416 세월호 청소년 오케스트라'가 차례로 무대를 장식했다.
이어 박 터뜨리기와 강강술래가 진행됐다. 노란 박 아래 두 손 가득 모래주머니를 쥔 참가자들이 집합했다. 박 터뜨리기는 세월호 참사의 국가 책임 인정과 사과,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에 대한 소망을 담아 준비됐다. 시작을 알리자 머리가 희끗한 어르신도, 한껏 고개를 젖혀야 박을 볼 수 있는 어린아이도 사정없이 모래주머니를 던졌다. 이내 박이 터지며 '진상규명·책임자 처벌'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나왔다.
신난 이들 틈으로 놀이꾼들이 슬금슬금 끼어들었다. 손에 손을 잡는 참가자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졌다. 어느새 광장 중앙에 원이 생겨 크고 작아지길 반복했다. 놀이꾼의 시범을 보며 사람들은 앉았다 일어서고,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활짝 핀 얼굴들 위로 낭창낭창한 가락이 흘렀다.
이런 순간에는, 그러니까 춤추고 노래하며 허물없이 뛰노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보면 12년 전과 달라진 것들이 더욱 선명히 느껴진다. 기억문화제에 올릴 공연을 준비하고, 가슴에 노란 나비를 달고 무대를 활보하는 시간 이들에게 세월호는 어떤 의미였을까. 기억해야 하는 것? 떠올리면 마음 한구석이 아려오는 것? 혹은… 하늘을 수놓는 무수한 모래주머니?
무엇이 됐든 나와 친구들이 지나온 시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참사 이후 태어난 아이들이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기억을 옮겨 받는 과정을 본다. 두껍고 단단한 손에서 작고 여린 손으로, 하나의 바톤이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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