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공기 속에 여전히 살아있는 이름들
2026년 4월 16일 저녁, 세종시 박연문화관 지하 누리락으로 향하는 발걸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습니다. 어느덧 1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4월의 공기는 여전히 그날의 기억을 품고 있는 듯 차분했습니다. 세월호참사 12주기를 맞아 열린 이번 추모문화제 ‘진실과 생명안전을 향한 노란빛 동행’은 화려한 미사여구보다는 ‘기억’이라는 본질을 묵직하게 전달하며 참여한 시민들의 마음을 조용히 두드렸습니다.
전시를 통해 마주한 기억의 기록들
행사장 입구에 마련된 ‘그날을 쓰다’ 기획전시는 본격적인 행사에 앞서 우리의 마음을 가다듬게 했습니다. 빛바랜 기록들 속에 담긴 문장 하나하나에는 12년이 지나도 가시지 않은 그리움과 여전히 남아있는 미안함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습니다. 전시를 둘러보던 시민들은 한참 동안 걸음을 멈추고 글귀를 곱씹었습니다. 단순히 과거의 불행한 사건을 회상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왜 여전히 ‘생명’과 ‘안전’이라는 가치를 포기하지 않고 이야기해야 하는지 다시금 일깨워주는 침묵의 시간이었습니다.
예술로 피어난 애도와 연대의 울림
본 공연은 각계각층의 시민들이 준비한 진심 어린 무대들로 채워졌습니다. 서예가 김성장의 퍼포먼스는 압권이었습니다. 커다란 종이 위에 한 자 한 자 눌러 쓴 애도 편지는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관객들의 가슴에 박혔습니다. 이어 무대에 오른 세종리틀싱어즈 어린이들의 맑은 목소리는 슬픔을 위로하는 따뜻한 손길 같았습니다. 아이들의 노래는 참사의 아픔을 딛고 우리가 지켜내야 할 미래가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밴드 프리버드의 공연은 ‘진실’을 향한 우리의 걸음이 결코 지치지 않았음을 역동적인 리듬으로 증명해 보였습니다. 음악을 통해 슬픔은 연대로 변했고, 그 연대는 다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확신으로 이어졌습니다.
행사는 1부와 2부로 나누어 진행되었는데, 1부 프로그램으로는 어린이 합창단 세종리틀싱어즈의 합창과 학생들의 편지 낭독, 4.16세종청소년모임의 기억과 약속의 달 선언문 낭독, 플래시몹 '바위처럼' 등이 진행되었고, 2부 프로그램으로는 시낭송, 붓글씨 퍼포먼스와 밴드 프리버드의 기억콘서트 등이 진행되었다.
세종리틀싱어즈의 합창은 우리의 마음을 울렸다. 30명 남짓 되는 아이들이 한 목소리로 합을 맞추어 노래를 부르자, 마음 속 한켠에 응어리진 것들이 사르르 풀리는 듯 했다. 노래를 듣는 내내 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생명안전이 최우선시 되고, 사회적 참사가 없는 세상이길 간절하게 바랬다.
다음으로는 4.16세종시민모임의 추연이 대표와 최교진 교육부 장관의 추도사가 이어졌다.
이번 대회를 주관한 4.16세종시민모임은 세종에서 세월호를 추모하고, 계속해서 기억을 이어가고자 하는 시민들의 모임이다. 매년 세종에서는 4월의 봄이 오면 그날을 기억하는 시민들이 모여 추모 행사를 가지곤 했는데, 그렇게 자발적인 시민들의 행동들이 모여, 지속 가능 하고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기 위하여 4.16세종시민모임이 결성되었다.
이렇듯 지역에서도 꾸준히 세월호 참사를 함께 기억하고 애도하는 공동체가 있다는 것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세월호를 비롯한 사회적 참사에 대한 애도는 곧 생명에 대한 이야기이자 안전에 대한 이야기일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연결고리를 통해 새 정부의 문제에 대해, 국민 주권에 대해, 내 일상이 안전할 권리에 대해서도 함께 외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세종 지역의 사회 문제에도 계속 목소리를 내게 되는 것이다.
결국 4.16세종시민모임은 세종이라는 지역 공동체의 돌봄망을 잇고 엮으며, 훼손되는 곳을 찾아 다시 꿰매는 손길이자, 서로가 서로의 단단한 돌봄망이 되어가는 현장으로서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다음 순서로는 세종 청소년 모임에 소속된 청소년들이 4월 16일의 편지와 <기억과 약속의 달> 선언문을 낭독하였다. 이들이 낭독한 편지와 선언문은 모두 세종 청소년 모임의 청소년들이 함께 뜻을 모아 작성한 것이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기억과 생명안전 사회를 향한 바람이 전 세대를 걸쳐 공유되고 있음을, 청소년들의 결의에 찬 낭독을 통해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다음으로는 참가자들 모두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피켓팅 퍼포먼스와 '바위처럼' 노래에 맞춘 플래시몹이 이어졌다. 피켓팅 퍼포먼스는 무대 위의 분들이 구호를 외치면 관객석의 참가자들이 피켓을 높이 들고 구호를 따라 외치면 되는 방식이었고, '바위처럼' 플래시몹은 무대 위의 분들이 추는 '바위처럼' 춤의 손짓을 참가자들이 따라서 추면 되었다. 참가자들이 역동적으로 행동하는 이 순간 만큼은 모두가 박연문화관 실내가 아니라 광장 한복판에서 구호를 외치고 함께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바위처럼' 플래시몹을 마지막으로 세월호참사12주기 세종시민대회의 1부가 마무리 되었다.
2부 기억콘서트에서는 '콘서트'라는 이름에 걸맞게 문화 공연을 중심으로 행사가 진행되었다. 가장 먼저 밴드 프리버드가 나와 <잊지 않을게>, <부치지 않은 편지>, <꽃아 꽃아>를 불렀다. 전체적으로 잔잔하지만 강단있는 분위기의 노래들이어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애도와 잊지 않겠다는 결의를 느낄 수 있었다.
다음으로는 소담초등학교 교사 정우숙님의 시낭송이 이어졌다. 차분히 시를 읽어나가는 목소리의 깊은 호소력에 시 속의 상황이 생생히 그려지면서 '과연 나였다면 선뜻 구명조끼를 벗어줄 수 있었을까', '누군가를 먼저 차가운 선박 밖으로 보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많은 참가자들이 함께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다음으로는 김성장 서예가의 붓글씨 퍼포먼스가 이어졌다. 차분한 배경음악 가운데, 김성장 서예가의 신중한 몸짓 끝에 "아직 진실의 봄은 오지 않았다"라는 문장이 완성되었다. 신중한 필체로 공들여 완성된 작품에서 진상규명에 대한 바람과, 진실의 무게감이 전해지는 듯 했다.
2부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시간은 공연이 끝나고 공연자들이 한 곳에 모여 대담을 진행한 이야기 톡톡! 시간이었다. 각자 이날의 공연 무대에 오르기까지 지난 시간 동안 세월호 참사에 대해 어떻게 연대해왔는지 이야기하고, 시민들과 정부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남겼는데, 밴드 프리버드의 보컬 임도훈님의 이야기가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잊지 않겠다는 말은 너무 소극적인 것 같습니다. 진상규명하고 책임자 처벌하라 함께 외쳐주십시오. 유가족분들께서 공격받을 때 함께 싸워주십시오." 라는 말이었다.
세월호 참사 발생 후 12년이 지난 지금, 많은 이들이 세월호를 이미 지나간 슬픈 일으로만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미 먼 과거의 일이라고 치부하기에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아직까지도 현재 진행형이다. 잊지 않는 것을 넘어 끝까지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생명안전사회 건설을 위해 함께 행동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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