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곁을 내준다는 것”을 배운 시간, 노란빛학교 낭독 원데이 클래스

따뜻한 봄바람이 기분 좋게 뺨을 스치던 5월 2일 토요일 오후, 종로구 대학로 45에 위치한 임호빌딩 4층으로 발걸음을 향했습니다. 오늘 제가 참여하기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간 행사는 바로 4.16재단에서 진행하는 "2026년 4.16세월호참사 기억순례 (희망마중 지원사업)" 에서 피해자 간담회 사업으로 선정되어 진행하고 있는 ‘노란빛학교 – 낭독 원데이 클래스’입니다.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이 직접 주관하는 이번 낭독 클래스는 참석 전부터 제 마음 한구석에 묵직하면서도 따뜻한 기대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효율성과 결과물만을 쫓던 일상에서 벗어나, 온전히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내 목소리를 내어보는 시간은 흔치 않기 때문입니다.

행사는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총 2시간 동안 4.16연대 4층 강당에서 밀도 있게 진행되었습니다.

세월호참사 피해 학생 어머님들이 메인 강사가 되어 부드럽고 친근한 지도 아래, 참가자들이 다 함께 모여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고 극단의 창작 대본을 직접 낭독해 보는 것이 이번 원데이 클래스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리고 직접 낭독을 하면서 세월호참사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강당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천장에 총총히 매달려 공간을 장식하고 있는 노란 나비 모빌들이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마치 참가자들을 환영하듯 나풀거리는 노란 나비들 아래로, 오늘 2시간의 특별한 여정을 함께할 분들이 둥글게 모여 앉아 서로 눈인사를 나누며 조용히 행사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본격적인 창작 대본 낭독에 들어가기에 앞서, 처음 만나 어색한 참가자들 사이의 공기를 깨고 굳게 닫힌 입술과 긴장된 근육을 풀어줄 유쾌한 아이스브레이킹 시간이 마련되었습니다.

전면의 대형 스크린에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발음 연습 문장들이 띄워졌습니다. “경찰청 창살은 철창살, 중앙청 창살은 쌍창살”, “스위스에서 온 스미스 씨는 숲 속에서 숫사슴을 보살핀다”, “촉촉한 초코칩과 안 촉촉한 초코칩” 등 눈으로 볼 때는 너무나 쉬워 보이지만 막상 입 밖으로 빠르게 내뱉으려면 여지없이 혀가 꼬여버리는 마의 문장들이었죠.

선생님의 유쾌한 리듬에 맞춰 강당 안의 모든 사람이 다 함께 이 문장들을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저기서 발음이 꼬여 “푸흡” 하는 웃음이 터져 나왔고, 입술에 힘을 꽉 주고 완벽하게 발음하려고 미간을 찌푸리며 집중하는 서로의 모습에 참았던 폭소가 터지기도 했습니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다소 경직되어 있던 현장 분위기는 이 짧고 재미있는 낭독 연습 한 번에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긴장이 완전히 풀린 참가자들은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들어 현장 사진을 찍거나, 옆 사람과 방금 전의 실수에 대해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다음 순서를 맞이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2. "읽는다"는 것 이상의 경험

 

이후 본격적인 대본 리딩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단순히 글을 읽는 활동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해보니 한 문장 한 문장을 또박또박 읽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대사는 길었고, 감정은 더 깊었다.

 

특히 이번 대본은 대구 사투리로 구성되어 있어

억양과 리듬을 살리는 것이 더 어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만큼 인물의 감정과 현실감이 더 생생하게 전달됐고,

참여자들 역시 점점 이야기에 몰입해 갔다.

3. 낭독극이 끝난 뒤, 우리가 남긴 이야기

 

대본을 읽는 시간으로 시작했지만,

마지막에는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자리로 이어졌다.

 

이날 가장 깊게 남은 것은 낭독 그 자체보다,

그 이후에 이어진 '소감 나눔'의 순간이었다.

 

1) "곁을 내주는 것"

참여자들이 한 명씩 기억에 남는 단어를 나눴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은 이것이었다.

 

"곁을 내주고

같이 있고 같이 울고 같이 웃고…

그래야 곁에 있는 거지."

이 문장은 단순한 대사를 넘어,

이날 우리가 함께 느낀 감정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

그리고 함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전해지는 순간이었다.

 

2) "찰칵"

또 다른 참여자는 마지막 장면을 떠올렸다.

 

사람들 사이에서 활짝 웃고 있는 아이,

그리고 "찰칵" 소리와 함께 찍히는 사진.

 

이 장면이 특별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슬픔 속에서도 이어지는 '함께 있음'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지만 함께하는 존재들,

그리고 그 기억을 이어가는 사람들.

그 모든 것이 그 짧은 장면에 담겨 있었다.

4. "우리가 해도 될까"에서 "함께해서 감사하다"

 

소감의 마지막은

진행을 맡은 어머님들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이걸 우리가 앞에서 해도 될까 걱정했어요."

"그래도 이렇게 함께 해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처음에는 망설임과 걱정이 있었지만,

참여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집중 속에서

그 감정은 점점 감사로 바뀌었다.

 

"함께해줘서 고맙다"는 말은,

이미 우리가 하나의 마음이 되었다는 의미처럼 느껴졌다.

5. 아픔을 말하고, 서로를 보듬는 시간

 

이날 소감 나눔이 더 깊게 다가왔던 이유는

누군가의 '아픔'이 자연스럽게 이야기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한 참여자는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쉽게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를 나눴고,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함께 그 감정을 나누고 있었다.

그 자리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

서로를 보듬고 있다는 느낌이 전해졌다.

 

6. 서로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순간

소감이 이어질수록,

이 낭독극은 하나의 프로그램을 넘어

서로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공간이 되어갔다.

 

누군가는 자신의 기억을 떠올렸고,

누군가는 그 감정에 공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남은 감정은 하나였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지막에 남은 감정은 분명했다.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이야기를 듣고,

같은 장면에서 마음이 움직였던 경험.

 

그 자체가 이미

우리가 서로에게

'곁을 내주고 있었다'는

증거였을지도 모른다.

 

이날 낭독극은 끝났지만,

마지막에 나눴던 이야기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누군가의 아픔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 곁에 머물 수는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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