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도봉따봉!” <노란 빛 사람들> 에피소드의 주역을 찾다 | 찾아가는 4.16연극

2014년 4월 16일, 대한민국은 바다로 가라앉는 배를 무력하게 바라보았다. "전원 구조"라는 오보에 안도했던 가슴은 이내 304명의 희생이라는 슬픈 진실 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그로부터 12년이 흐른 지금까지 세월호는 많은 이들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딸과 아들을 잃은 유가족들은 여전히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갈 수밖에 없었고, 떠나간 친구를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가야 하는 생존 학생들과 친구들, 그리고 함께 울며 안산으로 달려갔던 시민들까지. 남겨진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그날의 기억을 품고 살아간다. 2014년의 세월호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초여름의 은은한 풀냄새로 물든 5월 22일 저녁, 서울 도봉구 창동극장에서는 세월호를 둘러싼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의 연극 <노란빛 사람들>이 무대에 올랐다. 19살에 세월호를 겪으며 기자를 꿈꾸게 된 '혜림', 집회 현장에 나갈 주먹밥을 만드는 '도봉구 엄마 모임', 그리고 진정한 연대를 이해하게 되는 대구의 할아버지 '만섭'까지. 세 개의 단막극은 참사 이후의 방황과 연대, 희망을 때론 유쾌하고 때론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첫 번째 단막극 <광장에서>는 2024년 12월 14일 국회 앞 탄핵 집회 현장에서 시작된다. 카메라를 든 경기신문 수습기자 '혜림'은 시민들을 기록한다. 혜림의 시선은 국회 앞 잔디광장을 넘어 먼 과거를 향하고 있다.

"그냥 너희 같은 친구들이 우리 얘기해주면 좋을 것 같아서…"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혜림은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보며 언론과 어른들에 대한 실망감을 느낀다. 이후 광화문 광장과 팽목항을 오가며 서명 운동과 시민 활동에 참여했고, 유가족들을 만나며 진실을 기록하는 사람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우리 얘기를 해주면 좋을 것 같아서"라는 세월호 유가족이 건넨 이 한마디는 훗날 혜림의 삶에 이정표로 남는다.

 

 

 

"내가 한 살만 어렸다면, 내가 안산에 살았다면, 내가 그 배를 탔다면…"

 

 

광고회사에 취직하여 방황하던 혜림은 2022년 이태원 참사를 마주하며 다시 세월호의 기억을 떠올린다. 세월호는 끝난 사건이 아니라 반복되고 있는 현재의 비극이었다. 혜림은 잊고 있던 "너희 같은 친구들이 우리 얘기해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다시 떠올린다. 혜림은 안산과 팽목항, 이태원을 오가며 진실을 기록하는 기자가 된다.

세월호 유가족들과 다시 마주 앉은 혜림. 기자가 되기까지의 방황, 유가족들에게 상처가 될까 조심스럽게 써 내려갔던 기사들…. 혜림과 유가족들이 함께 진실을 향해 걸어온 시간은 결국 세상을 조금씩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희망을 전한다.

이어지는 2막 <주먹밥 예쁘게 만드는 방법>은 탄핵 집회 현장에 나눠줄 주먹밥을 만들며 오가는 유쾌하고도 뭉클한 대화로 지난 10여년의 세월을 이야기한다.

 

윤민 어머니께서는 실제 도봉구 모임 사람들이 세월호 활동을 즐겁게 이어가는 모습을 보고 만든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햄', '단무지', '우엉', '비건' 같은 별명으로 서로를 부르는 엄마들은 웃고 떠들며 주먹밥 1500개를 만든다.

이들은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때 처음 만나 세월호 참사 이후 광화문과 팽목항을 오가며 유가족들과 함께해 온 사람들이다. 연탄 봉사와 김장, 기억 순례, 물망초 심기 같은 활동을 이어오며 서로에게 또 다른 가족이 되어갔다. 처음에는 유가족들에게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오랜 시간 곁을 지키며 신뢰를 쌓아왔다는 이야기도 담겨 있다.

극 중 스무 살 자원봉사자는 세월호를 공부하면서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집회 현장에서 받은 주먹밥을 계기로 직접 연대 활동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한다. 그는 주먹밥과 연대의 의미가 닮아 있다고 이야기한다. 흩어진 쌀알들이 서로 뭉쳐 하나의 주먹밥이 되듯, 시민들도 식지 않는 마음으로 함께 모여 연대를 이룬다는 것이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동수 어머니는 극 중 "대표님 너무 늙었어", "우리 너무 늙었어" 같은 대사를 코믹하게 표현했지만, 사실은 "마음 아픈 대사"라고 말했다. 10년, 20년이 지나도록 연대가 계속된다는 것은 그만큼 참사에 대한 제대로 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p03. [수상한 동행] 대구 4.16연대, 정치색을 떠난 연대의 연결고리

  • "남은 사람들은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눈물이 나는기라."

 

"대구 동성로 한복판에서, 대구 사람이 서명을 받던데?"

 

할아버지는 손녀에게 '보수의 성지인 대구에서, 세월호특별법 서명을 받는 대구 사람들이 있다'는 소식을 접합니다. 이들이 세월호 단식농성을 함께하고, 국회와 광화문으로 향한다는 말에 활동가들의 뒤를 쫓기 시작합니다.

 

조사 시작한 지 4년째, 78개 단체가 대구 4.16연대에 참여했고, 2014년에는 30번 넘게 대구에서 활동해준 시민들이 있었습니다.

웃다가 울고, 울다가 웃고, 또 다시 우는 사람들을 보며 손녀 희나가 묻자,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합니다.

"남은 사람들은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눈물이 나는기라."

 

"20년도 더 지난 일을 기억하고 있었어."

장면에서 장면으로 넘어갈 때, 23년 전 그날을 연상시키는 소리가 반복됩니다.

2003년 2월 18일과 2014년 4월 16일에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희나 할아버지의 마음이 변하는 과정, 그리고 희나의 정체에 주목하게 되는 에피소드가 <수상한 동행>이었습니다.

 

"피가 섞여야 가족입니까? 내주면 됩니다. 곁을요."

"앞으로도 노란 빛이 되어주세요"

관객과의 대화 , 단무지 역 김명임님(단원고 2학년 7반 곽수인 어머님)

연극이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 시간이 있었습니다. 임혜림 기자 역을 맡은 박유신님(애진엄마)은 "연극에 탄핵소추안 가결 당시 직접 찍은 영상을 담았다"고 후일담을 풀어주셨습니다.

햄 역의 박혜영님(윤민엄마)은 "세월호 활동을 도봉구민분들이 재밌게 하는 것 같다"는 말을, 4.16가족극단의 단장인 최지영님(순범엄마)은 극중 맡았던 스무살 청년의 대사 "도봉따봉"이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4.16약속지킴이 도봉모임 김현석 대표 역을 맡았던 박유신님(예진엄마)은 "민망해서 대표님을 째려봤다"며 농담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우엉 역의 김도현님(동수엄마)은 "극중 너무 늙어서 슬프다는 대사는 실제로 10년이 넘는 세월을 겪으며 많이 들었던 생각"이라고 말했습니다. 단무지 역의 김명임님(수인엄마)은 "단무지는 노란빛사람들의 상징적 색깔"이라는 점도 짚었습니다. 또한 "극중에 "엄마들 혼자서는 못 버텼을 텐데 함께해 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버텼다"는 말이 진심"이라며, "이거보다 몇십 배 더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했습니다.

 

김현석 대표님은 "도봉모임 결성 전, 2008년 광우병 사태에서 시작된 도걱사(도봉구에 사는 걱정 많은 사람들의 모임)의 역사부터 훑어주신 점에서 놀랐다"는 소감을 남겼습니다.

공연이 이어지는 동안 객석에서 계속 울었다는 도봉모임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습니다. 오늘의 연극은 객석에 있는 햄, 단무지, 우엉, 비건이를, 그리고 또 다른 '노란빛 사람들'을 뜨거운 주먹밥처럼 뭉치게 했다는 것을요.

 

오늘의 연극 <노란빛 사람들>은 막을 내렸지만, 노란빛 사람들의 또 다른 에피소드는 현실에서 계속되기를 바라는 금요일 저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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