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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이 주도하고 이웃이 돌보는 안전사회 | 지역사회에서 안전사회운동 밑그림 그리기 워크숍

  1. 재난 참사에서 시민의 역할

 

마지막 순서로는 다산인권센터 랄라 활동가가 ‘재난 참사에서 시민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다채로운 팀별 활동과 강연을 끌어갔다.

그 시작은 ‘이어 쓰는 시 만들기’ 아이스브레이킹이었다. 각자 시의 제목과 첫 문장을 적은 후 조원들이 순서대로 돌아가며 문장을 이어 써 하나의 시를 완성하는 방식이었다. 참가자 저마다의 개성이 겹겹이 더해지다보니, 각 조원이 의도했던 방향과는 전혀 다르고 엉뚱한 결말로 흘러가기 일쑤였다. 이에 참가자들은 완성된 시를 함께 읽어 내려가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특히 이날은 김순길 님이 첫 문장을 뗀 시의 완성작이 가장 큰 호응과 인기를 얻었다.

이어서 참가자 각자의 재난 경험을 나누는 팀별 활동이 진행됐다. 기억 속에 중요하게 자리 잡은 재난과 그때 느꼈던 감각, 그리고 당시 자신이 어떠한 활동을 했는지 공유해보는 시간이었다. 현장에 참석한 참가자들은 세월호참사, 이태원참사, 오송지하차도 참사,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등 우리 사회를 흔들었던 수많은 참사에 대한 저마다의 기억을 꺼내 놓았다.

랑희 님은 이태원참사의 기억을 나눴다. 그는 “당시 새벽까지 뉴스를 끄지 못 했다”며, “거리에 쓰러져 있고 푸른색 노포로 사망한 사람이 덮여져 있는 모습을 보며 현실을 믿을 수 없었다. 이때의 감정을 표현하기 참 어렵다”고 전했다. 이어 “참사 이후 사람들이 기억을 딛고 ‘함께 기억하기 위한 핼러윈 축제’를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후 ‘이태원을 기억하는 호박랜턴’과 함께 현장에서 보라색 리본을 나눠주는 연대 활동에 나섰고, 앞으로도 이를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공유했다.

랄라 님은 “서로 나눈 참사가 같은 사건이든 아니든 저마다의 기억과 대응 방식이 각기 다르다”며, “그 과정에서 우리가 각자의 방식으로 어떻게든 해보려고 노력했다는 사실 자체가 재난 참사에 있어 중요한 ‘시민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다음으로 랄라 님은 재난 대응의 새로운 방향성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그는 재난 직후 국가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정부와 전문가가 중심이 되어 시민을 보호하는 ‘일방향적 대응 방식’은 더 이상 오늘날의 사회에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대신 다양한 시민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참여형 대응 체계’를 통해 개인의 회복을 넘어 공동체의 회복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피해자 역시 단순한 수혜자나 통제의 대상이 아닌, 재난 이후의 회복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며 스스로 살아갈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랄라 님은 초기 재난 대응에 있어 ‘이웃’의 결정적 역할에 주목했다. 생사와 직결되는 골든타임의 순간에는 아무리 완벽한 국가 시스템이라 할지라도 손길이 즉각 닿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 한계의 지점에서 결국 중요한 역할을 다하는 것은 ‘이웃’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경북 의성 산불 당시 마을 이장들이 노인 가구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대피를 도운 사례나, 경주 지진 당시 이웃의 사정을 잘 아는 시민들이 서로의 두려움을 보듬으며 안전의 주체로 버텨낸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당시 경주 지진 현장에서는 아이쿱 생협이 자체 물류 시스템을 활용해 긴급 지원을 펼치기도 했다.

 

강의 후반부에는 재난 이후의 회복과 또 다른 재난을 예방하는 데 있어 필요한 시민의 역할이 설명됐다. 랄라 님은 자신이 직접 제정 과정에 참여했던 ‘경기도 재난 피해자 인권 보장 조례’를 소개했다. 이 조례는 피해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 금지, 재난 취약계층에 대한 특별 보호 조치, 재난 당사자를 대응하는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인권 교육 의무화 등 재난 피해자의 권리를 포괄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그는 경기도를 시작으로 전국 지자체에서 유가족과 시민사회의 노력으로 유사한 조례들이 제정되고 있음을 전하며, 이것이 안전한 사회로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러한 조례가 단지 선언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감독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처럼 초기 대응부터 기억, 예방과 제도 개선에 이르기까지 재난의 전 과정에서 이미 수많은 시민들이 활동하고 있다. 랄라 님은 “기억 공동체의 시민으로서 우리 개개인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서로의 목소리에 깊이 귀 기울이는 역량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끝으로 그는 김애란 작가의 『안녕이라 그랬어』 중 ‘좋은 이웃’ 챕터에 나오는 한 구절을 읽으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젊은 시절 나는 사람을 지키고 싶었는데, 요즘은 자꾸 재산을 지키고 싶어집니다.

그래야 나도 내 가족도 지킬 수 있을 것 같은 불안이 들어서요.

그런데 얄궂게도 남의 욕망은 탐욕 같고 내 것만 욕구처럼 느껴집니다.

기본 욕구. 생존할 때 그런 작은 것으로요.

 

하지만 그곳에 ‘생존’이란 말을 붙여도 될까? 그런 건 좀 염치없나 자책하다가,

또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두에게 떳떳한 선이란 과연 어디까지일까 반문합니다.

얼마 전 남편이 내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잘살게 되면 남을 돕고 살자.’

그런데 여보, 우리가 잘살게 되면 우리가 더 잘살고 싶어지지 않을까? 그때도 이웃이 생각날까?”

랄라 님이 마지막에 참가자들을 향해 던진 질문, “과연 우리는 좋은 이웃일까? 나는 재난 앞에서 어떤 이웃이 되어야 할까?”라는 화두는 우리 모두가 스스로에게 던져보아야 할 고민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재난에 대응하는 일이 오직 국가의 몫이라며 선을 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민 주도의 재난 대응을 말하는 책임을 면해주자거나 그 역할을 부정하자는 뜻은 결코 아니다. 한편에서는 ‘재난에 대응하는 공동체’를 두고 지나치게 낭만적이라 비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강연에서 소개되었듯, 현장에서 이미 증명된 많은 사례들이 공동체의 강력한 힘을 입증하고 있다. 아울러 불가능성만을 핑계 삼는다면 더 안전하고 진보된 사회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촘촘한 시스템이 존재하더라도 국가의 손길이 즉각 닿지 않는 순간과 장소는 반드시 존재하며, 재난 대응은 단숨에 끝나지 않고 그 과정이 매우 복잡다난하다. 그렇기에 그 사각지대를 가장 먼저 채우는 것은 결국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따뜻한 연대일 것이다. 여기에 이러한 민간의 자발적인 움직임을 국가가 든든하게 뒷받침해 주는 구조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재난 대응 모델이라 할 수 있겠다.

 

재난에 강한 공동체의 힘을 믿고, 그 안에서 스스로의 역할을 끊임없이 고민하는 개개인의 연대가 더욱 확산되기를 바란다. 이 강연이 지역사회 구석구석으로 스며들어 우리 모두가 서로를 지켜내는 단단한 이웃이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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