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18일 토요일
고잔동 일대는 하나의 거대한 연극 무대가 되었다.
그 곳에서는 맑은 햇살이 내리쬐는 봄날 아침,
등교하는 고등학생들이 자신의 고민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안산 고잔동 마을 일대에서는 조금 특별한 연극이 펼쳐졌다.
극단 동네풍경이 선보인 학교 가는 길은 무대 위 박제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숨 쉬고 걷는 골목을 무대 삼아 시민들의 삶 속으로 직접 찾아갔다.
극 중 잠시 앉을 수 있도록 의자가 놓여진 장소도 아파트 앞 정자, 어느 작은 언덕, 놀이터 앞 계단 등
우리가 평소에 당연하듯이 존재하던 공간에 우리가 있었다.
그 곳은 우리 학생들이 뛰어놀던 곳이었다.
연극 학교 가는 길의 가장 큰 특징은 관객들이 배우와 함께 고잔동 골목과 단원고 인근 언덕길을 직접 걷는다는 점이다.
관객들은 아이들이 매일 아침 등교하며 재잘거렸을 그 길 위에서 배우들의 연기를 목격하며,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현장 지향적 연출은 관객으로 하여금 단순히 관찰자의 입장에 머물게 하지 않는다.
발끝에 닿는 보도블록과 눈앞에 보이는 익숙한 상점들이 극의 배경이 되면서,
단원고 학생들의 부재는 더욱 실존적인 아픔으로 다가온다.
이는 연극적 장치를 최소화하는 대신 실제 장소가 가진 역사성과 장소성을 극대화하여 우리 삶 속에 깊숙이 들어온 기억을 공유하게 만든다.
이번 작품은 고등학생 연우가 같은 반 친구 윤수를 짝사랑하며 벌어지는 풋풋한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윤수가 이사를 간다는 소식에 용기를 내어 고백하러 가는 연우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예상치 못한 방해꾼인 절친 혜진과의 조우 등 흥미진진한 전개가 이어진다.
하지만 이 작품이 관객에게 주는 울림은 단순한 하이틴 로맨스에 그치지 않는다.
연우가 걷는 길은 소생길이자 소중한 생명의 길이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단원고 아이들의 등굣길이기도 하다.
극단은 연우의 시선을 통해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우며, 실제 고잔동 거리를 배경으로 하여 관객들이 극 중 인물의 감정에 더욱 깊이 몰입하게 만든다.
안산 고잔동의 굽이진 골목과 기다란 계단을 지나 다다른 마지막 목적지인 놀이터.
그곳에서 관객들은 연극 학교 가는 길이 숨겨두었던 가장 뜨겁고 담백한 진심과 마주하게 된다.
극단 동네풍경은 이번 작품의 대미를 장식하는 놀이터 장면을 통해
고등학생의 시선으로 바라본 이별의 예의와 남겨진 우리를 향한 아이들의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서툰 짝사랑의 끝에서 마주한 '잘 헤어지는 법'
연우와 혜진, 그리고 윤수의 엇갈린 마음이 교차하던 놀이터는 극의 종반부에 이르러 성숙한 이별의 장소로 변모한다.
고등학생 특유의 풋풋한 감성으로 그려진 이 장면은 서운함이나 원망 대신 잘 헤어지는 방법과 잘 이별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품은 억지로 슬픔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누군가를 마음에서 보내줄 때 필요한 온기와 담백한 인사를 건네며
고등학생다운 순수한 시선으로 이별을 정의한다.
이는 갑작스러운 참사로 소중한 이를 떠나보내야 했던 안산의 시민들에게, 그리고 우리 사회에 꼭 필요했던 위로의 방식이기도 하다.
아이들의 실제 목소리, 독백이 된 기억의 기록
공연의 정점은 놀이터에서 펼쳐지는 마지막 독백이다. 이 대사는 단원고 학생들의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구성되었다.
아이들이 일상에서 나누었던 사소하고도 소중한 말들이 배우의 입을 통해 다시금 세상 밖으로 흘러나올 때, 고잔동 마을 전체는 거대한 기억의 공간으로 바뀐다.
이 독백은 관객들에게 강렬한 현실감과 함께 형언할 수 없는 울림을 선사한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아이들의 꿈과 웃음, 그리고 평범한 대화를 통해 관객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남겨진 우리에게 건네는 따뜻한 온기
극단 동네풍경은 연극을 통해 걸었던 소생길 즉, 소중한 생명의 길을 거쳐온 여정을 단원고에 등교하는 모습으로 마무리하며, 남겨진 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실마리를 던진다.
아이들의 목소리를 끝으로 극이 마쳐지는 순간 관객들은 슬픔에 침잠하기보다
그들이 남긴 온기를 품고 다시금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갈 용기를 얻는다.
삶 속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무대를 통해 온기를 전하고자 하는 극단 동네풍경의 정체성이 가장 잘 드러난 이번 작품은,
우리가 매일 걷는 이 길이 누군가에게는 끝내 닿지 못한 학교 가는 길이었음을,
그러나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기억임을 증명해 보였다.
슬픔을 넘어 고잔동 골목에서 찾은 희망의 등굣길
[현장] 극단 동네풍경 학교 가는 길 관객과의 대화 추모와 슬픔 넘어 '잘 이별하는 법' 제시… 주민과 아이들이 함께 만든 기적의 무대
연극 학교 가는 길의 공연 직후, 제작진과 관객들이 작품의 의미를 나누는 특별한 대화의 시간이 마련되었다.
이번 공연은 기존의 세월호 추모 예술이 가졌던 전형적인 틀을 깨고, 슬픔을 극복하려는 시도로 주목받았다.
작·연출을 맡은 김규남을 필두로 한 극단 동네풍경은 지난 10여 년간 세월호 참사, 장애인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동시대적 시선으로 바라봐 왔다. 이번 학교 가는 길 역시 세월호 참사의 아픔이 서린 고잔동 일대를 무대로 삼아, 슬픔을 넘어선 따뜻한 온기와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슬픔을 이겨내는 새로운 문법
이날 관객과의 대화에서 제작진은 이번 작품이 이전의 추모작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을 명확히 했다.
그간의 작품들이 주로 참사의 비극과 슬픔을 직접적으로 다루어왔다면
학교 가는 길은 슬픔을 잘 이겨내려는 의지를 담아내며
작 연출을 맡은 김규남은 "아이들과 어떻게 잘 작별해야 하는지, 그 헤어짐의 정서를 고등학생의 시선에서 보여주고 싶었다"며,
"단순히 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 이 아픔을 건강하게 극복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관객과 함께 고민하려 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이에 한 관객은 "연극을 보는 내내 부모로서 아이에게 등굣길마다 건넸던 '잘 인사하고 와야지', '학교 잘 다녀와'라는 평범한 말들이 문뜩 떠올라 가슴이 뭉클했다"며 소회를 전했다.
마을 전체가 객석으로…
야외 공연, 특히 주민들의 실제 거주지를 무대로 삼는 특성상 발생하는 다양한 에피소드들도 소개되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힌 것은 마지막 놀이터 장면의 리허설이었다.
제작진은 "리허설 당시 놀이터에 아이들이 너무 많아 소리를 지르고 뛰어노는 통에 공연 진행이 가능할지 걱정될 정도로 곤란한 상황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막상 본 공연이 시작되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소란스럽던 아이들이 하나둘 배우 곁으로 다가와 자리에 앉더니
누구보다 진지한 태도로 연극을 함께 감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배우들이 길을 거닐며 연기하는 도중에 산책하던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행렬에 합류하여 함께 이동하는 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극단 측은 "2017년부터 이 프로젝트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불편함을 감수하고 길을 내어준 주민분들의 허가와 지지 덕분"이라며 고잔동 주민들을 향한 깊은 감사를 표했다.
일상 속의 기억, 내일을 향한 동행
극단 동네풍경의 학교 가는 길은 박제된 추모가 아닌, 삶 속에서 살아 숨 쉬는 기억의 방식을 보여주었다.
이번 작품은 우리 사회가 참사의 아픔을 딛고 어떻게 성숙한 작별과 새로운 내일을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따뜻한 답안지를 제시했다.
이동형 연극 〈학교 가는 길〉 – 고잔동 마을 일대
2026년 4월 18일(토) 오전 11시,
안산 고잔동 마을 일대에서 진행된
이동형 연극 〈학교 가는 길〉을 직접 관람했다.
단원고등학교가 위치한 이 지역을 무대로 펼쳐지는 이 공연은,
관객이 배우와 함께 실제 동네를 걸으며
이야기를 따라가는 '마을 투어형 연극'이라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연극은 단순히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골목길과 공원, 놀이터 등 실제 삶의 공간을 따라 이동하며 진행된다.
관객은 주인공 연우의 동선을 그대로 따라 걸으며,
아이들의 기억이 스며 있는 장소에서 이야기를 체험하게 된다.
이 작품은 세월호 참사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 갑작스럽게 떠나는 친구,
그리고 전하지 못한 마음이라는 감정을
십 대 소녀의 짝사랑 이야기로
이별과 기억의 감정을 통해 간접적으로 풀어낸다.
무겁게만 다루지 않고
따뜻하고 담담한 시선으로 그려낸다는 점에서
더 깊은 여운을 남긴다.
1. 연우의 집 – 고백을 결심하는 순간
이야기는 연우의 집에서 시작된다.
짝사랑하던 친구 윤수가 전학을 간다는 소식을 들은 연우는,
오늘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고백을 결심한다.
이 장면은 감정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출발점이다.
2. 골목길 – 노래로 드러나는 마음
연우는 집을 나서 동네 골목길을 따라 걸어간다.
이 장면에서는 길거리 벤치에서 듣는 노래를 통해
짝사랑의 감정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대사로 직접 표현하지 않아도,
음악과 분위기를 통해 연우의 마음이 전달되는 순간이다.
3. 윤수의 집 앞 – 엇갈리는 타이밍
윤수의 집 앞에서 연우는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한다.
절친 혜진이 먼저 와서 고백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같은 공간, 같은 대상,
그러나 서로 다른 마음이 교차하며 미묘한 긴장감이 형성된다.
연우는 결국 쉽게 나서지 못하고 한 발 물러선다.
4. 벤치 – 추억을 떠올리는 시간
벤치에 앉은 인물들은 윤수와 함께했던 시간을 떠올린다.
교실에서의 모습,
장난치던 기억들이 하나씩 이어지며,
이별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음을 체감하게 만든다.
이 장면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관계의 끝을 준비하는 시간'처럼 느껴진다.
5. 계단 – 관계와 기억에 대한 이야기
계단 장면에서는 연우의 내면 갈등이 더욱 깊어진다.
고백을 해야 할지 망설이는 연우에게,
미소 할아버지는 의미 있는 말을 건넨다.
"추억은 사라지지 않지만,
더 잘 기억하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 말은 단순한 조언을 넘어,
이별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한 메시지로 다가온다.
6. 놀이터 – 마지막 고백과 이별
놀이터에서 이야기는 절정에 이른다.
연우는 결국 자신의 방식으로
윤수에게 마음을 전하려 하지만,
상황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간다.
혜진 역시 고백을 준비해왔지만,
그 대상은 윤수가 아니라
'동네 오빠'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7. 학교 앞 – 다시 일상으로
모든 상황이 지나간 뒤,
연우는 다시 학교로 향한다.
뒤늦게 달려온 혜진과 손을 맞잡고,
두 사람은 여느 아침처럼 학교 정문을 향해 뛰어간다.
특별한 하루였지만,
일상은 다시 이어진다.
8. 관객과의 대화 – 잘 이별하는 방법에 대하여
이 연극은 단순한 첫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제대로 인사를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남긴다.
2026년 4월의 어느 봄날,
고잔동 골목을 걸으며 본 이 공연은
단순한 관람을 넘어 하나의 경험으로 남았다.
말하지 못한 감정, 늦어버린 타이밍,
그리고 그럼에도 남는 기억들.
〈학교 가는 길〉은 결국 지금 이 순간,
마음을 전하는 용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 공연은 그런 질문을 다시 던지게 만든다.
결국 〈학교 가는 길〉은
단순한 청소년 이야기나 첫사랑의 서사를 넘어,
세월호의 아픔을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담아낸 작품이라고 느꼈다.
크게 말하지 않아도 전달되는 이야기,
그리고 일상 속에서 계속 이어지는
기억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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