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추모관 벽에 침 뱉은 사람도... 그가 10년 동안 화난 이유

언론 속 4·16재단
작성자
4・16재단
작성일
2024-01-24 10:04
조회
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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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기사 내용

 

세월호 희생자 304명 가운데는 단원고등학교 학생과 교사를 제외한 일반인이 45명 있다. 여행과 이사, 출장을 위해 세월호에 탄 일반 승객과 승무원 그리고 사고 이후 구조를 하다 희생된 민간 잠수사다.

45명이라는 숫자는 한 학년 대다수에 이르는 희생자가 나온 단원고에 비하면 적은 수일지 몰라도 이들을 숫자가 아닌 한 명의 생명으로 본다면 결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수다. 참사가 일어난 지 10년이 됐지만, 아직도 45명의 세월호참사 일반인 희생자와 그 유가족들의 이야기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누군가의 부모이자 자녀이고 연인이자 친구이며, 우리나라 안전 시스템에 큰 경종을 울린 45명의 희생은 누가 기억하고 있을까? 지난해 10월, 세월호일반인유가족협의회(이하 유가족협의회) 전태호 위원장(47)을 만나 그동안 일반인 유가족으로 살아온 시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현재 그는 참사와 관련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외치는 단체 대표이지만, 자전거를 타고 전국 일주를 떠나 다시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기억하고자 애쓰는 아들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언제든 다시 전화할 것 같은데..."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미국에 자주 나가셨어요. 누님이 그쪽에 있어 일 년에 몇 개월은 미국에 몇 개월은 한국에 계셨어요. 한국에 계실 땐 아버지 집을 일주일에 한 번씩 무조건 갔어요. 토요일이면 아버지랑 저녁 먹으며 얘기하다 자고, 다음 날 아침에 식구들과 다 같이 교회 갔다가 점심 먹고 헤어졌어요. 그래서 사실 추석, 구정 때 빼고 아버지 돌아가셨다는 걸 별로 못 느껴요. 한 번씩 전화해서 '아빤데 며칠 몇 시 몇 번 항공편으로 들어가니까 공항으로 나와라' 그러셨으니까 언제든 다시 전화하실 거 같은 느낌이죠."

함께 했던 주말 식사가 예고 없이 중단되어 버렸다. 아버지의 부재는 아들뿐 아니라 다른 가족, 특히 어머니에게 더 크게 나타났다. 세월호참사가 있기 전 그의 부모님은 한국에 있을 때나 미국에 있을 때나 모든 곳에서 늘 함께 있었다.

"아버지가 먼저 어머니께 전화하셨요. 구조 온다고. 큰 배는 그렇게까지 빨리 안 넘어가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하신 거죠. 이야기를 듣고 어머니가 저한테 아버지랑 통화해 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전화 연결이 안 돼요. 전 업무 때문에 그날 당진에 있었거든요. 바로 일정 취소하고 현장으로 내려갔어요. 오후에 동생, 고모 부부, 작은아버지 다 내려오시는데 어머니는 내려오지 마시라고 말씀드렸죠."

아버지는 사고 이틀 뒤인 지난 2014년 4월 18일 오전 11시, 진도 해역 사고 지점에서 900m 떨어져 있는 곳에서 발견됐다. 아버지의 말씀은 대체로 옳았지만, 그날 걱정하지 말라던 말은 틀렸다.

"어머니께 '한국에 있는 게 힘드니 미국에 가시는 게 어떻겠냐'고 여쭸어요. 그랬더니 '거기 가면 니 아빠 더 생각나서 싫다'고 단호하게 거절하시더라고요. 살고 있는 집을 나와 이사를 여러 번 했죠. 어머니 입장에서는 여기저기 다 아버지가 있는 것 같으니까 싫으신 거죠. 몇 년 힘들었어요.

지금은 좋아지셨어요. 다행이었던 게 주변분들이 챙겨주셨어요. 제가 유가족협의회 일로 바빠서 못 챙기는 상황이면 아는 형이 본인 부모님 놀러 가실 때 같이 모시고 갔다 오고 그랬어요. 또 교회 지인 중 한 분은 평일 저녁에 어머니가 혼자 계시니까 같이 저녁 먹고 주무시기도 하고요. 어머니 친구분들도 툭 하면 '야 바람 쐬러 가자'라면서 끌고 나가시더라고요. 어머니도 처음에 안 가신다고 그러시더니 요즘은 왔다 갔다 하세요.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도움을 받은 사람과 안 받은 사람은 확실히 차이가 많이 나죠. 어머니는 도움의 손길을 주시는 분들이 주변에 상당히 많아 회복이 빠른 편이었고, 그러지 못하신 분들은 아직 많이 힘들어 하십니다."

일반인 유가족 중에는 희생자가 혈혈단신 한국으로 건너와 이곳에 아는 이 하나 없는 해외동포도, 아직 죽음이 무엇인지도 모를 나이에 부모와 형제를 다 잃은 어린이도, 한 집안에 아들과 조카가 한 번에 사라져 주저앉아 버린 엄마와 그 자매도 있다. 개인마다 상황이 다르기에 주변의 도움보다 중요한 건 이들 모두가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사회 구조를 바꾸는 일일 것이다. 이는 우리가 모두 함께 손을 맞잡을 때 가능해진다. 그가 유가족협의회 대표를 맡은 이유도 비슷하지 않을까? (후략)

 

오마이뉴스 / 변정정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