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십육일 – 최영희] 우회하다

월간 십육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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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희


2023년 6월의 《월간 십육일》에서는 최영희 작가님의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 우회하다 >

 

  그때 나는 친구들과 함께 어느 출판사에서 주최한 SF세미나에 참석하고 있었다.
  이제 막 동화와 청소년소설에 발을 디딘 신인이었고, 당분간 ‘오늘의 여기’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우주 배경이거나 외계인이 등장하는 이야기만 쓰겠다고 떠들고 다니던 SF소설가 지망생이었다. 처음으로 참석한 SF세미나가 얼마나 설렜는지 그날 나와 친구들의 자리 배치, 강연장에서 받았던 강의록의 질감과 내용, 심지어 내 앞에 앉았던 여성분의 땋은 머리까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내가 써낼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없던 시절이었고, 초보적인 형태의 SF시놉시스들을 수십 장 쟁여놓고 그게 모두 책이 되리라 믿던 시절이었다. 지구 멸망 후 먼 항성계로 이주한 생존자들의 이야기, 어느 날 지구를 뒤덮어 버린 식인식물 이야기 등 이제 SF세미나까지 들었으니 뭐든 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중간에 서해에서 대형 사고가 났다는 속보가 전해졌지만 전원 구조 소식이 이어졌던 터라, 세미나와 뒤풀이로 즐겁기만 한 날이었다. 하지만 친구들과 이른 저녁을 먹으러 갔던 식당에서… 들뜨고 떠들썩했던 하루가 끝이 났다.
  ‘전원구조’는 오보였다.
  그날 이후,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라는 확신들이 흔들렸다. 내가 진짜 어른이 맞긴 한지 의심하게 되었고 오늘을 떠나 미련없이 미래와 우주로 가겠다던 패기도 꺾였다. 기세 좋게 뻗어가던 샛강이 세월호라는 커다란 물굽이를 만나 느리게 우회하며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2014년 봄, 나는 SF장편소설을 쓰고 있었다. 첫 장편소설이었고 스타트랙과 스타워즈를 보고 자란 세대로서 성간우주에 대한 상상과 기대감을 욱여넣고 있었다. 하지만 4월의 그날 이후 나는 ‘현실’에 기반한 새 장편소설을 쓰게 되었다. ‘진아’라는 이름의 열여덟 살 아이가 자기 인생의 불편한 진실들을 추적하고 끝내 마주하는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는 이듬해 <꽃 달고 살아남기>라는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2014년의 간절함이 아니고선 쓸 수 없는 작품이었다. 시놉시스와 주제도 없이 들어섰고, 주인공 ‘진아’ 말고는 등장인물들의 이름도 정해두지 않았다. 작품을 끌어가는 동력은 세월호의 진실에 관한 질문들이었다.
  투박한 글이었고 ‘중간 중간 세월호 이야기가 몰입을 방해했다’는 내용의 리뷰도 더러 받았다. 변명을 하자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2014년 4월의 일은 내 삶에 부자연스러운 단절을 가져왔고, 어떻게 해도 그날의 기억 없이는 그해와 그해의 글들을 설명할 길이 없다.
  ‘참된 나’라는 뜻을 가진 ‘진아’라는 주인공 이름 또한 그해의 산물이다. 2014년에 쓴 글들을 모두 ‘진아’가 주인공이었다. 출간 기회를 잡은 <꽃 달고 살아남기>와 <안녕, 베타>의 진아도 있지만 끝내 세상에 소개되지 못한 진아들도 여럿이다.
  장편소설 <꽃 달고 살아남기>의 진아는 생모를 찾아 나선 청소년이었고, SF단편소설 <안녕, 베타>의 진아는 로봇 친구를 본래 용도대로 쓰다가 폐기할지, 여러 가지 불이익을 감수하고서 떠나보낼지 고민하는 청소년이었다. 현실 배경 소설에도 인공지능 로봇이 등장하는 SF소설에도 주인공은 언제나 ‘진아’였다. 나의 진아들은 하나같이 삶의 참과 진실을 찾아 나선 아이들이었고, 2014년의 고민들이 녹아 있는 캐릭터였다.
  그해의 ‘진아’ 이야기는 <꽃 달고 살아남기> 작가의 말 일부를 인용하는 것으로 갈무리하고자 한다.

나는 내가 어른인 줄 알았다. 4월 16일의 서해 바다가 있기 전까지는…. 그 소식을 접하고서야 나는 내가 어른도 뭣도 아님을 알았다. 살아남는다는 게 이토록 저릿하고 뻐근한 일인 줄도 그때 알았다. 잠이 오지 않고 숨이 막히던 어느 밤, 진아를 만났다. 진아는 뜨겁게 제 우주를 더듬어 갔다. 사람들이 감춘 게 무엇인지 끝끝내 캐물었다. 부끄러운 어른이 되지 않을 아이 같아서, 나 또한 진아를 포기하지 않았다.

 

  두 번째 장편소설 <구달>도 2014년의 기억에서 시작된 작품이었다. 장르적으로는 SF의 변방쯤에 위치하는 작품이지만 그 기원은 ‘왜 사회가 아픈 이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는가?’라는 고민이었다. 2017년에 <구달>이 출간되자 아직도 세월호 이야기를 하느냐고 되묻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이 작품이 2015년, 세월호 사건 이듬해부터 쓰기 시작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1년은 상처가 아물기에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 아닌가. 두 번째 이유는 세월호 유가족의 아픔을 외면하거나 혹은 조롱하는 자들의 목소리가 예상보다 컸기 때문이다. 세월호 사건을 직접 등장시키지는 않았으나 작가로서 ‘경청’의 의미를 되짚어보고 싶었다.
  당시의 고민들이 담긴 <구달> 작가의 말을 짧게 인용하고자 한다.

듣는다는 건 무엇을 뜻하는가? […] 주인공 달이는 현실의 내가 가지 못하는 길을 갔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소리의 발원지로 눈길을 돌리고, 거기로 갔다. 결국 누군가의 사연과 기척을 듣는다는 건, 그 존재에 눈길을 주고 그 곁으로 가는 일이며 존재론적 응답임을 달이에게 배웠다.

 

  세월호가 담긴 세 번째 작품은 <광장에 서다>라는 앤솔로지에 수록된 단편 [점 하나]였다. 수능모의고사 성적그래프의 하위 등급 속 ‘점 하나’에 불과했던 주인공 오하나가 광화문 촛불시위에 참석하며 스스로를 반짝이고 뜨거운 ‘점 하나’로 인식하게 되는 내용이다. [점 하나]를 끝으로 나의 글은 세월호를 벗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세월호라는 물굽이를 우회하며 체득한 현실인식은 그 후로도 내 작품의 근간이 되었다.
  나는 장르와 상관없이 십대들이 세상과 맞서는 이야기를 주로 쓴다. ‘가만히 있으라’는 주문으로 많은 걸 잃었던 경험이 나를 이곳으로 데려왔다. 최근에 발표한 <이끼밭의 가이아>는 압도적 힘의 외계침입자가 초래한 디스토피아에 맞서는 열일곱 살 가이아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곧 발표를 앞두고 있는 작품은 엄마 아빠의 보편우주에서 끝끝내 자기만의 개별우주를 지켜내는 열다섯 살 여자아이가 주인공이다.
  누군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그 아픔에서 무언가를 배우는 세상에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뒤틀린 세상과 악몽에 맞서는 십대들과, 그들을 지키고 응원하는 어른들이 있는 한 세상에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그 믿음으로 원고지를 채워가고 있다.

 

……

 

최영희 (청소년소설가)
SF와 미스터리를 주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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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달고 살아남기>, <구달>, <너만 모르는 엔딩>, <칡>, <이끼밭의 가이아> 등


《월간 십육일》은 매월 16일 4.16세월호참사와 관련한 글을 연재합니다. 다양한 작가의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주제의 글을 통해 함께 공감하고 계속 이야기해 나가자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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