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십육일-최지은] 다가서는 마음

월간 십육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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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지 은


6월의 《월간 십육일》에서는 최지은 작가님의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 다가서는 마음 >

 

 

어떤 슬픔은 너무 깊고 거대해서 좀처럼 입 밖에 낼 수 없을 때가 있다는 사실을 나는 2014년 봄에 알게 되었다. 많은 사람이 그 날 그 시각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잊을 수 없다고 한다. 나 역시 업무용 메신저 하단에 뜬 속보, ‘전원 구조’ 네 글자에 가슴을 쓸어내리던 순간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러나 그 후에 일어난, 아직도 믿고 싶지 않은 일들은 머릿속에서 엉망으로 뭉뚱그린 것처럼 흐릿하기만 하다.

성인이 된 이후 부모님과 가장 크게 싸웠던 게 TV에서 흘러나오던 뉴스 때문이었는지, 내 가방에 달린 노란 리본 때문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수년이 지난 지금도 그 날의 기억을 구체적으로 재구성할 용기가 없다. 당시 부모님은 유가족을 적대시하며 사안을 왜곡 보도하던 몇몇 언론의 논조를 굳게 믿었다. 자라는 내내 부모님과 부딪혀 내 생각을 말하느니 대개 입 다물고 방에 들어가는 쪽을 택해왔던 나는 이번에도 그냥 가만히 있으려 했다. 하지만 이내 견딜 수 없어졌다. 내게 그토록 아낌없는 사랑을 준 사람들이, 아이를 잃은 다른 부모를 향해 그렇게 냉담한 말을 던지는 사람들이기도 하다는 사실 앞에서 순식간에 마음이 무너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마구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그다음의 일들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해 봄으로부터 1년 뒤 결혼하고 아이 없이 살기로 마음을 굳히면서, 나는 양육자와 자식이라는 관계에 관해 전보다 더 자주 생각한다. 한 인간을 세상에 태어나게 하고 긴 시간 동안 돌보며 서로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치면서 살아가는 삶의 모습은 어떨지, 그 다채로운 기쁨과 복잡한 고뇌에 관해 이번 생의 나는 아마도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전부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거기에 존재하는 마음들을 모른 채 살고 싶지는 않다.

어떤 마음을 아는 데 필요한 것은 꼭 ‘같은’ 경험이 아니라 그 마음에 다가서고자 하는 마음임을 내게 알려준 사람이 있다. 한나는 몇 년 전 나와 같은 기혼 무자녀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쓰기 위해 만났던 인터뷰이다. 배우자와 두 마리 고양이를 키우며 사는 그는 경조사에 참석하느라 잠시 남에게 맡겼던 고양이들을 잃어버렸을 때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는지 회상하며 말했다.

“그때가 세월호 참사 이후였거든요. 하루는 고양이를 찾는다는 전단에 스카치테이프를 계속 붙이다가 허벅지를 칼로 확 그었는데도 아프질 않고 아무 느낌이 없었어요. 옆에 있던 사람이 놀라서 소리치고 그제야 다리를 보니 피가 흥건하더라고요. ‘이런 감정이구나. 부모가 자식을 잃는다는 게 정말…….’ 고양이를 잃어버리고도 이렇게 미치겠는데, 그분들은 찾으러 바다에 들어갈 수도 없잖아요. 그러니 아이를 잃은 마음이 얼마나 슬플까 싶더라고요.”

내게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받았던 상처가 처음 만난 타인인 한나에 의해 치유되는 것은 이상한 경험이었다. 타인의 슬픔을 외면하지 않고 자기 삶과 연결짓는 사람의 존재를 확인하며 나도 그 마음을 놓치지 않기로 했다.

내 책장 한편에는 세월호에서 희생된 단원고 전수영 선생님의 어머니 최숙란 님이 엮은 책 『4월이구나, 수영아』가 꽂혀 있다. 참사 이후 한동안, 수영을 잘하는 딸이 어쩌면 무인도까지 수영해가서 살아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는 대목을 떠올릴 때마다 나 역시 간절한 마음이 된다.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을 기다리고 그리워하고 슬퍼하고 분노하고 지쳤다가 다시 일상을 꾸리는 사람들을 생각할 때마다 그 곁에 조금 더 다가서고 싶어진다. 무관심과 망각이 우리 사회를 뒤덮지 않도록, 이 마음의 존재를 기억하고 계속 말하며 살아가겠다.

 

 


《월간 십육일》은 매월 16일 4.16세월호참사와 관련한 글을 연재합니다. 다양한 작가의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주제의 글을 통해 함께 공감하고 계속 이야기해 나가자고 합니다.

​*연재되는 모든 작품들은 4·16재단 홈페이지, 블로그, 뉴스레터 등에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