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십육일-황예지] 암기

월간 십육일​

x

황 예 지


2월의 《월간 십육일》에서는 황예지 작가님의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암기>

 

 

숫자를 세고 기억하는 일에 둔해지고 있다. 어린 날에는 가까운 사람들의 핸드폰 번호, 생일과 기념일을 기억하고자 애를 썼는데 나는 이제 그런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다. 공과금 납부일, 전세 자금 대출 이자가 오히려 내게 친숙한 숫자가 되었다. 포털 사이트에서 오늘이 어떤 특별한 날인지 매일매일 알려준다. 메신저에서 생일인 사람들을 놓치지 않게 케이크 이모티콘을 덧대고 생일자를 상단에 위치하게끔 한다. 그 사람의 프로필을 누르면 폭죽이 펑펑 터진다. 나는 약간의 가책을 느끼며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기프티콘을 고르고 축하를 건넨다. 세상은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축하할 일로 빼곡하다. 스크린을 몇 번 터치하면 나의 기억력이 복원된 것처럼 내게 빠져나간 정보들을 찾을 수 있다. 수많은 데이터가 내 주변을 맴돌고 나를 챙겨주는데 정작 내 기억은 힘을 잃어간다. 어쩐지 이상한 일이다.

 

나는 나의 기억을 관장하는 것, 활성화시키는 것에 욕심이 있다. 나는 우울감으로 인해 10대 초중반에 겪은 전반적인 일을 세세히 기억하지 못한다. 그게 내가 의도 하에 삭제한 것이란 걸 우울과 거리두기를 하게 되면서 알게 됐다. 침체된 시절이라고 결론내고 생각하기를 중단했는데, 그때 만난 인연들이 현재에 침입해서 나를 설명할 때가 있다. 잘 웃고 명랑했다고. 기억이 힘을 잃는 것은 눈먼 시야를 갖게 되는 것과 같다. 그 시야는 내가 삶에 보인 긍정성을 가장 먼저 흐릿하게 만들었다. 흐릿함 때문에 내게 가장 밀접한 행위로써 사진을 택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진은 거대한 향수이다. 가끔 오독을 부추기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명징하다. 나는 사진의 특질과 동행하면서 조금씩 기억을 회복했고 모든 것을 처연하게 바라보는 일에서 걸어 나와 시간을 만지기 시작했다.

 

전시를 본다고, 촬영한다고 광화문 근처를 서성이는 일이 많았다. 그곳이 누군가에게는 치열한 삶의 자리라는 것을 미처 모르고 야경이 예쁜 곳이라고 생각하며 거닐었다. 4.16 기억 저장소 앞에 세월호 미수습자 현수막이 너풀거렸다. 그 속에 내가 잊고 지낸 얼굴과 눈이 마주쳤다. 세월호 참사 당일을 더듬어본다. 나는 학교에 가고 있었다. 버스, 지하철, 음식점… 모든 곳의 텔레비전에서 기울어진 그 배를 비추고 있었다. 다들 숨죽이고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전원 구조했다는 뉴스에서 사망자, 구조자 합계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뉴스로 바뀌었다. 날씨가 흐리다는 뉴스로, 노란색의 점퍼를 입은 정치인이 나와 효용성 없는 말을 하는 뉴스로 바뀌었다.

 

안산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친구들은 장례식장 봉사를 갔다. 사진과 동기는 매주 진도 팽목항에 가서 사진을 찍고 쪽잠을 잤다. 팽목항에 같이 가자는 제안을 받았지만 나는 매번 엄두를 못 내고 거절했다. 그들의 애도에 비해 나의 애도가 무척 하찮게 느껴졌다. 커다랗게 세워진 안산 합동 분향소에 갔다. 줄이 길었는데 사람 말소리가 하나 나지 않았다. 영정사진은 켜켜이 쌓이고 쌓여 사람의 키를 훌쩍 넘은 채 있었다. 한 아저씨가 욕지거리를 하면서 오열했다. 그 마음이 다분히 이해가 되었으나 나는 입을 벙끗하지도 못했다. 국가의 무능함, 나의 무력함에 집어삼켜져 분노도, 슬픔도 다 안쪽으로 밀어넣고 있었다. 마음에 검은 섬이 들어찼다.

 

6년이 지나고 나는 세월호 6주기 추념전의 작가로 발탁되었다. 세월호 형제자매의 나이대의 작가들로 구성이 되어있었고, 각자 세월호를 감각하는 것에 차이가 있었다. 6년이 지난 지금에서 세월호를 얘기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이야기가 필요한지에 대해 치열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군가는 시스템에 대한 반문을, 누군가는 나아지지 않는 세상, 그 연속성에 대한 열거를 했다. 나는 작업하는 내내 사무치는 마음에 자꾸만 졌다. 작업보다 늦게라도 제대로 된 애도를 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진도 팽목항, 목포 신항, 4.16 기억교실, 4.16 기억저장소, 단원고등학교, 화랑유원지… 내가 그때 향하지 못했던 곳들을 찾아갔다. 그곳을 사진으로 담으며 고개 숙이고 기도했다.

 

세월호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녹슬었고 곳곳에 묶인 노란 리본들은 색이 바래져있었다. 뒤늦은 애도의 자리가 내 작업이 되었다. 부끄럽다. 그곳을 걸으며 애도의 너비에 대해 생각했다. 개인적인 차원의 애도를 넘어서, 사회적인 차원에서의 애도란 무엇일까. 세월호라는 단어는 이제 온전히 참사만을 뜻하지 않는다. 감정, 정치, 경제와 묶여 사회에서 작동된다. 우리 사회의 너무 큰 치부이기에 날카롭고 찔리기 쉽다. 그 점을 이용해서 자신과 다른 권력 세력을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되고 있다. 아파트가 붕괴되고 노동자가 죽고 자살률이 치솟고 있다. 아이들의 설문지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돈이 선택됐다. 가성비, 값싼 노동과 효율을 찾다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죽음을 숨기느라 바쁘다. 사회적 트라우마가 치유되지 않은 채, 이 사회는 비극이 주는 가르침을 뒤로 하고 개인의 성장과 발전만을 도모하며 나아간다.

 

세월호 참사에서 만 7년 하고 9개월이란 시간이 지났다. 시간은 계속해서 우리를 스치고 지날 것이다. 편리한 세상 속에서 기억은 힘을 점점 잃을 것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편안함과 편리함이 섬뜩하게 느껴진다. 밤에 배송 시킨 책과 음식이 다음 날에 오고 수많은 정보를 정제 없이 찾아볼 수 있다. 인간성과 이타심을 유지하는 것은 이 사회에서 효율적이지 않은 일로 판정되고 미끄러진다. 수많은 광고, 신체 이미지, 축하할 일들 사이에서 알게 모르게 폭력, 비극의 바운더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가까이 오고 있다. 이것을 늦추려면 모두가 조금씩 불편해야 하지 않을까. 4. 16이라는 숫자를 외워본다. 지킨다는 건 본래 효율적이지 않고 불편한 일이다.


《월간 십육일》은 매월 16일 4.16세월호참사와 관련한 에세이를 연재합니다. 다양한 작가의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주제의 에세이를 통해, 공함하고 계속 이야기해 나가자고 합니다.

​*연재되는 모든 작품들은 4·16재단 홈페이지, 블로그, 뉴스레터 등에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