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우리 손으로 만드는 생명안전도시 304개의 노란테이블, 안산 기억문화제

1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어떤 분들께는 오래된 이야기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희에게 그날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여전히 '그날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돌아오지 못 했지만, 아이들이 남긴 질문은 우리 곁에 있습니다.

 

단원고 2학년 8반 상준 어머니 강지은 씨의 말이다. 오는 4월 16일은 세월호 참사 12주기다. 아이들은 왜 구조되지 못했을까, 아직도 온전한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 물음을 품은 채 그날 이후를 살아온 이들이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무겁게 듣고 함께 변화한 도시가 있다. 4월 11일, 안산문화광장에서 토론회와 기억문화제가 열렸다.

우리 손으로 만드는 생명안전도시

 

오후 2시, 시민 대토론회 '304개의 노란테이블'이 시작됐다. 이번 행사는 안산 시민단체 130곳이 모인 'AN전도시에 SAN다 시민추진위원회(추진위원회)'가 주관했다. 추진위원회는 세월호 참사의 경험을 토대로, 안산을 생명안전도시로 만들고자 그간 연구·설문·워크숍 등을 진행했다.

이중 여성·다문화·장애인 등 분야별 워크숍에서 10대 정책 과제로 ▲생명안전 가치 담은 비전·행정계획 수립 ▲정책 추진 시 취약계층 안전영향평가 의무화 ▲생명안전 전담부서 확대·인력 확충 ▲시민안전센터 설치 ▲생명안전 예산·기금 확대 ▲시민 참여 협의기구 운영 ▲숙의 공론장 정기 개최 ▲생명안전교육 활성화 ▲안전점검 평가단 운영 ▲안전시설 정비·확충을 선정했다.

행사 참가자들은 조별 논의에서 각 정책의 시급성과 효과성, 현실 가능성을 따지고 투표로 중점과제를 정했다. ▲안전시설 정비·확충 ▲생명안전교육 활성화 ▲정책 추진 시 취약계층 안전영향평가 의무화가 1~3위로 뽑혔다. 추진위원회는 이를 지방선거 후보자들에게 제안할 예정이다.

마지막 순서는 생명안전도시 시민선언이었다. 참가자들은 논의 내용이 일회성 제안에 머물지 않도록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며 ▲토론 결과가 정책과 제도로 이어져 변화를 일굴 때까지 행동하며 ▲행정과 정치를 감시해 생명안전이 도시 운영 원칙이 되도록 하며 ▲취약한 시민을 비롯해 모두의 일상이 안전한 도시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시민이 꾸리는 추모문화제

 

이어 오후 4시, 안산 기억문화제가 열렸다. 가장 먼저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회원조직사업부장 강지은 씨(상준 어머니)가 마이크를 잡았다. 지은 씨는 "기억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는 가장 강한 힘"이라며 말문을 뗐다.

 

우리가 이 자리에 선 이유는 이 사회가 조금 더 안전한 곳이 되길 바라는 마음, 누군가의 평범한 하루가 지켜지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서입니다. 기억을 넘어 함께 질문해 주십시오. 진실을 밝히는 일도, 안전 사회를 만드는 일도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참사 이후 12년이 흘렀지만 침몰 원인도, 청와대의 행적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지은 씨는 진상규명과 안전 사회로 가는 길에 함께해 달라는 말로 발언을 끝맺었다.

 

다음으로 안산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김윤정 씨가 발언에 나섰다. 윤정 씨는 참사 이후 시간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2014416일 이후 검은 양말을 신고 친구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선생님은 제게 매섭게 소리쳤습니다. 정신 차리고 할 거 해라. 대학 안 갈 거니? 저는 교무실 한가운데서 아무 말도 못 한 채 얼어붙었습니다. 친구를 애도하는 것보다 공부가 중요한 사회, 그때 이 사회의 어떤 기준에 균열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교복을 입은 윤정 씨는 친구들과 이곳, 안산문화광장에서 열린 시위에 참석했다. 하지만 머지않아 "버튼을 눌러 기계를 끄듯 친구의 죽음에 대한 생각을 멈췄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안산을 떠났다. "세월호 이후 시간을 정면으로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던 윤정 씨는 매년 4월 16일이면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추모할 자격이 있는 사람일까?

 

서른 살이 된 윤정 씨는 "더는 외면하지 않고자" 안산으로 돌아왔다. 안전한 도시를 만들고 싶었다. 시민이 위험을 감지하고 목소리 냈을 때 곧장 정책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필요했다. 이제 한 명의 시민으로, 안산이 안전도시로 거듭나는 과정에 함께하겠다는 윤정 씨의 말에 박수가 쏟아졌다.

 

이후 추모 공연이 이어졌다. 안산 시민들은 매 기억문화제에 손수 공연을 준비한다. 이번에는 100명의 합창단과 50명의 댄스단이 무대를 채웠다. 볼이 붉게 달아오른 어린이, 동그란 안경을 쓰고 노란 후드를 입은 청소년, 별 모양 팔찌를 차고 매끄럽게 휠체어 바퀴를 굴리며 등장한 장애인이 입을 모아 god의 '촛불 하나'를 불렀다.

마지막 무대는 밴드 '극동아시아타이거즈'가 꾸몄다. 하늘을 찌르는 굉음에 자리를 박차고 나온 참가자들이 리듬에 맞춰 어깨를 들썩였다. 행인들도 흥겨운 노랫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고등학교 시절 가까이서 세월호 참사를 지켜본 윤정 씨는 "내가 26살이 됐을 때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고, 28살이 됐을 때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일어났다"고 말했다. 윤정 씨는 삶의 한 토막을 기억하는 방식이, 더는 또 다른 참사의 이름을 떠올리는 일이 아니기를 바란다.

 

윤정 씨의 소망은 몇 사람의 노력으로 이뤄질 수 없다. 돈보다 생명을, 이윤보다 안전을 우선하는 세상에서 비로소 가능하다. 이러한 가치가 정책과 제도에 실질적으로 반영돼야 한다. 그렇기에 생명안전을 기본 원칙으로 내세운 안산의 다음 발걸음을 기대해 본다.

아이들이 마음껏 꿈꾸는, 일상이 안전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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