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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안전기본법 제정 이후 남은 과제는 | 생명안전기본법 실현을 위한 연속 토론회

지난 5월 7일 국민의 안전권 보장과 안전사회 건설을 목표로 하는 생명안전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2019년 법 제정 운동이 시작된 지 7년 만이다. 생명안전기본법에 따르면 '안전'이란 안전사고로부터 사람의 생명과 신체, 재산에 위험이 없는 상태를 뜻한다. 국가는 모든 국민의 안전권을 보장하고, 피해자의 회복을 위해 조치하며, 기억과 추모를 이어갈 책무가 있다.

 

안전, 애도와 추모, 그리고 진상규명. 이것들이 하나의 법안에 묶이기까지 수없이 많은 재난참사 피해자들과 시민단체의 노력이 있었다. 이들은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이 끝이 아닌 시작이라 말한다. 법을 현실에 실현 가능케 하는 시행령 마련이라는 과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8월 2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시행령의 세부 내용을 그리기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생명안전기본법 제18조는 사고의 발생 원인과 수습 과정의 적정성을 규명하기 위해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조사를 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에 따라 국가는 조사 업무의 독립적 수행을 위한 국가안전사고조사위원회(조사위원회)를 국무총리 소속으로 둔다. 조사위원회는 사고를 조사하고, 조사보고서를 작성하며, 필요한 연구를 수행한다.

 

이날 토론회는 조사위원회를 포함한 상설 조사기구의 역할과 실행 방안을 검토하는 자리였다. 생명안전동행, 국회 생명안전포럼,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가 주최했으며, 국회의원과 행정안전부 관계자를 비롯해 사회적 참사 유가족들이 참석했다.

 

우리함께 유해정 센터장은 "왜 이 문제가 발생했는지 알아야 어떻게 대응할지 파악할 수 있기에 '왜요'라는 질문은 공동체의 안전에 중요한 가치"라며 "오늘 토론이 누구에게 무엇을 물을지 잘 이야기하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며 행사를 열었다.

첫 번째 발제는 동아대 재난관리학과 대학원 이동규 교수가 맡았다. 이 교수는 행정안전부의 예비조사와 본조사, 정부합동조사, 국정조사,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를 사례로 제시하며 한국 재난 원인 조사의 문제점을 차례로 짚었다. 이 교수는 "대표적 문제는 조사 기술에 대한 경험이 축적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조사기구가 한시적으로 운영되다 보니 업무의 연속성 확보가 어려울 뿐 아니라, 순환 보직으로 인수인계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는 설명이다.

 

이뿐 아니라 원활한 조사를 위해선 높은 전문성과 분석틀(framework)이 필요하다. 분석틀은 조사 데이터를 표준화할 때 필요한 핵심 요소 중 하나로, 각 사고의 개별 요소를 추출해 다른 사고와 비교할 때 용이하다. 또 체계적인 데이터 축적은 반복되는 사고 유형을 분석하고 징후를 탐색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이동규 교수는 현재 한국의 고유한 분석틀 자체가 부족하며, 이를 활용할 전문가를 양성하기도 어려운 환경이라고 말했다.

 

또 지금껏 한국의 조사위원회들은 원인 규명과 책임 규명, 피해 회복을 전부 도맡아 왔다. 그러나 이동규 교수의 말에 따르면 사고의 원인을 밝히고 진상을 규명하는 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일, 피해자의 회복을 돕는 일은 분리돼야 한다. 이 교수는 그간 세 역할이 뒤섞이며 조사 과정에 일부 공백이 생겼다며, 조사기구의 역할을 원인 규명으로 좁히고 나머지는 다른 조직에 분산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새로 구성될 조사위원회는 이처럼 과거 사례를 참고해 보완점을 궁리하는 데서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오민애 변호사는 이러한 조사위원회가 실제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시행령을 통해 구체적인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떤 사고를 조사할 것인지, 위원은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부터 조사 과정에서 피해자의 참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까지 세부적인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피해자를 조사 결과를 전달받는 대상에 머무르게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사고를 직접 경험하고 오랜 시간 진상을 추적해 온 피해자의 경험 역시 재난을 이해하는 중요한 지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발제 이후 이어진 토론에서는 이러한 원칙이 실제 참사의 현장에서 왜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경험들이 더해졌다. 김종기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세월호 참사 이후 여러 조사기구를 경험하며, 조사기구의 독립성과 함께 조사 초기부터 충분한 권한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참사가 발생한 뒤 조사기구를 구성하기 시작한다면 중요한 자료를 확보할 시기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 이용관 공동대표는 또 다른 문제를 제기했다. 관리·감독을 담당하는 기관이 사고 조사까지 맡게 될 경우 조사 과정에서 이해관계가 충돌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산업재해처럼 비슷한 사고가 여러 사업장에서 반복되는 경우에는 개별 사고 하나하나만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반복되는 사고를 하나의 구조적 위험으로 바라보고 조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전 세월호특조위 조사관이었던 박상은 플랫폼C 활동가는 실제 조사 경험을 바탕으로 '조사를 잘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참사가 발생한 뒤 조사관을 모집하고 조사 방법을 익히기 시작해서는 늦을 수 있다는 것이다. 평소 전문 조사관을 양성하고 조사 방법과 매뉴얼을 축적해 두어야 사고가 발생했을 때 곧바로 조사에 착수할 수 있다. 더불어 재난 당시의 의사결정과 의사소통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의 중요성 또한 강조했다.

 

 10.29이태원참사특별조사위원회 박진 사무처장은 재난을 하나의 원인으로 설명하는 데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여러 위험 요소가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면서 사고가 발생하는 만큼, 사고가 발생하기까지 어떤 위험을 막을 기회가 있었는지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시적인 조사기구가 활동 기간과 조직 구성에 쫓겨 충분한 조사를 하지 못했던 경험을 돌아보며, 상설적인 조직과 전문성을 갖추는 것의 중요성도 다시 강조했다.

 

  행정안전부에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재난 원인조사의 절차 및 생명안전기본법 시행령 마련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민간 전문가를 활용한 조사단을 구성하고 원인을 분석한 뒤 개선과제를 도출하고 이행 여부를 점검하는 기존 체계를 소개하며, 국가안전사고조사위원회 역시 필요할 때 분야별 전문가를 신속하게 투입할 수 있는 방식이 적절할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다만 국가안전사고조사위원회는 기존 특별법상의 조사와 달리 처벌이나 피해자 지원보다는 사고 원인 조사와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초점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어진 질의응답에서는 피해자의 참여 범위를 두고 질문이 나왔다. 피해자가 단순히 정보를 제공하거나 의견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조사위원회와 조사단의 구성, 실제 조사 과정에도 참여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였다. 피해자의 경험이 조사 초기의 질문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데에는 토론자들도 공감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참사가 발생한 뒤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참사가 발생했을 때 제대로 조사할 수 있도록 무엇을 미리 준비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핵심적으로 이루어졌다. 사고 직후 바로 현장에 투입될 수 있는 조사관, 기존 기관의 이해관계에 흔들리지 않는 독립적인 조사체계, 피해자의 경험을 조사에 담아낼 수 있는 참여 절차가 필요하다. 여기에 개별 사고를 넘어 반복되는 위험을 살피고, 조사 결과와 기록을 축적해 다음의 재난을 예방하는 일까지 이어져야 한다.

 

  생명안전기본법의 제정은 그러한 체계를 만들어가기 위한 출발점이다. 중요한 것은 상시적인 조사위원회가 출범한다는 사실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참사가 발생했을 때 그 기구가 제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지금부터 무엇을 갖춰놓을 것인가에 있다.

 

  재난은 발생한 순간에만 대비하는 것이 아니다. 참사가 발생했을 때 무엇을 조사하고, 누구의 목소리를 듣고, 무엇을 기록할 것인지, 그리고 그 결과를 어떻게 다음의 안전으로 이어갈 것인지까지 준비해야 한다. 결국 제대로 된 재난조사는 과거의 참사를 밝히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기억을 사회의 변화로 이어가는 과정일 것이다. 생명안전기본법을 통해 마련된 조사체계가 각자의 참사를 고립된 사건으로 남겨두지 않고, 다음의 재난을 막기 위한 사회의 배움으로 이어갈 수 있을지 앞으로의 시행령과 제도 마련에 관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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