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눈으로 본 세상은 잘못되어 보였고, 아빠는 위태로워 보였다."
우리 가족은 각자의 '광장'에서 노력하는 '애국가족'입니다. '민주화 세대'라고도 불리는 386세대인 부모님은 쌍둥이 자매에게 '아름'과 '다운'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제 생일인 12월 18일은 대통령 선거날이었고, 생일선물로 주어진 것이 민주주의라 생각했습니다.
대학시절 기자가 꿈이었던 아빠는 제게 기록하는 법을 알려준 첫 카메라 선생님이었습니다. 또 저는 어렸을 때부터 엄마를 따라 집회에 나갔습니다.
ⓒ 출처 : 영화 <애국소녀> 스틸컷
ⓒ 출처 : 영화 <애국소녀> 스틸컷
아빠와 엄마는 애국 방식이 달랐습니다. 아빠는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고, 엄마는 "의식이 있는 사람들이 돌을 던지러 뛰어가지 않으면 비겁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사이에서 방식을 고민하던 저는 세월호참사 직후 어떤 구호도 외치지 못했다는 사실에 괴로워했습니다.
이 고민은 30년차 모범 공무원 아버지와 25년차 여성인권운동가 어머니의 딸이자, 스스로를 '세월호 세대'라 규정하는, 영화 <애국소녀> 주인공 남아름 감독님의 실제 이야기입니다.
지난 7월 18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4.16의 봄> 7월 안전문화스쿨 프로그램으로 영화 <애국소녀> 상영회가 열렸습니다. 상영회에는 4‧16재단이 진행하는 청소년청년 안전문화활동 지원사업 <4.16의 봄> 안전문화스쿨에 참여하는 '꿈쟁이' 60여 명의 청년과 청소년들이 참석했습니다. 배리어프리 영화를 창작하거나, 주기적으로 독거노인 봉사활동을 하는 등 각자의 자리에서 사회를 향해 일하고 있는 청소년과 청년이었습니다.
<애국소녀>는 남아름 감독님의 석사 졸업작품입니다. 석사 과정이 2년인데, 영화를 못 끝내서 대학원을 4년 다닌 만큼 90분의 러닝타임에는 많은 고민이 담겨 있었습니다. 눈과 꽃 등 계절이 바뀌는 순간을 보여주는 인서트는 1년을 잡고 찍었다고 합니다. 개봉 연도인 2023년에 <애국소녀>는 제15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한국경쟁 장편 부문 대상, 2024년 대만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아시아 경쟁 부문 심사위원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 4‧16재단 강세현 과장은 "기억을 넘어 어떤 사회를 만들어가야 할지 '꿈쟁이' 여러분도 고민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로 안전문화스쿨의 문을 열었습니다.
아름의 삶에서 '세월호 참사'는 정말 중요한 변곡점이 된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름이 세상에 세월호 이야기를 꺼내기까지는 시간과 용기가 많이 필요했습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소속 부처가 쉽게 사라지고 또 신설되는 체계 속에서, 아빠는 특임장관실, 공보처, 청소년보호위원회를 거쳐 2014년에 해양수산부에서 일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사고수습팀으로 발령된 아빠는 안산 화랑유원지 정부 합동분향소로 출근했습니다.
"국가의 하수인이 아닌, 믿음을 받을 수 있는 공무원이 되십시오" 20살 아름은 재수학원에서 어버이날에 아빠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안산시 학생들이 많았던 학원에서는, 학생들이 동요할까 침묵하는 분위기 속 숨죽여 우는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름은 가만히 앉아만 있어야 하는 상황이 아프고 답답했습니다.
이듬해 아름의 아빠는 청와대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와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태에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박근혜와 부역자의 퇴진'을 외칠 때, 아빠도 책임자이자 부역자가 된 것만 같았습니다. 집회가 일어나는 광화문에서 한 번도 내리지 못하고, 어떤 구호도 외치지 못했다는 게 아름을 괴롭혔습니다.
시간이 흘러 2018년 미투운동이 일었을 때 엄마는 "생각은 있는데 실천하지 않는 게 가장 큰 폭력"이라고 했습니다. 아름은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으로서 학과 교수의 성폭력 사태가 터지자 최전선에서 목소리를 냅니다.
미투 사태에 '무임승차'하지 않고 나서야, 아름은 아빠와 2014년 당시의 편지 이야기를 할 용기가 생겼습니다. 아름의 편지가 '국민이 보낸 편지' 같았다고 말한 아빠는 카메라 앞에서는 어떤 발언도 하지 못했지만, 매년 4월이면 세월호 참사 기억식에 갔습니다. 이어서, 책임이 클수록 끝까지 아픔을 안고 갈 수밖에 없다는 답변도 들었습니다.
영화 직후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는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남아름 감독님은 영화 제작 계기에 대해 "신내림을 받은 무당이 그 길을 가지 않으면 몸이 아픈 것처럼, 다큐멘터리전공으로서 이 이야기를 하지 못하면 다른 대의를 말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고 답했습니다. '다음 대의를 생각하는 동력'이 무엇인지 묻는 관객의 질문에, 감독님은 4‧16재단 강연이라서 특히 꼭 하고 싶었던 말이라며 운을 띄웠습니다.
제작 초기에 '아빠가 세월호 해수부 공무원'이라는 사실은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감독님은 세월호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작품이 완성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고, 그 고민을 담은 편지 형식으로 4.16재단 문화콘텐츠 공모전 기획안을 작성했습니다. 참사 당사자에게 이 언급이 상처이자 기만이 될까 우려했는데, 세월호 참사 피해 유가족과 4‧16재단 활동가를 만나서 '자격이 충분하다', '세상에 이 이야기가 나왔으면 좋겠다',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말에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습니다.
제목이 <애국소녀>인 이유로는 "관념적 '애국'의 이미지를 전복시키고 싶었다"며 "이웃과 공동체를 위하는 진짜 시민의 역할과, 기성세대의 입장을 떠난 나만의 '애국'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라고 말했습니다. "투표는 민주주의의 꽃이자 축제"라는 대목에서 작금의 선관위 사태가 떠올랐다는 고등학생 관객에게, 감독님은 "이분법적 진영으로만 구분되지 않는 사안에 딜레마와 모순점이 항상 있지만, 영화에서 그렇듯 다양한 정치색을 띤 집단의 대화 가능성을 좋아한다"고 답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저 역시 한 명의 청년으로서 깊은 상념에 빠졌습니다. ‘국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개인의 평범한 일상이 거대한 사회적 비극 앞에서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연대해야 하는가?’ 영화는 관객들에게 정답을 쥐여주는 대신, 각자의 가슴 속에 날카롭지만 반드시 필요한 질문들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영화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인 오후 2시 30분, 남아름 감독이 직접 무대 앞으로 나와 ‘관객과의 대화(GV)’를 진행했습니다. 영화를 연출한 창작자와 그것을 온몸으로 흡수한 60여 명의 청년들이 마주한 이 50분은, 오늘 행사의 가장 역동적인 순간이었습니다.
관객들의 질문은 거침없으면서도 예리했습니다. 남 감독은 단어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고르며 진솔한 답변을 이어갔습니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하나의 큰 담론 안에서 세대와 경험을 공유하는 이 현장은 단순한 질의응답을 넘어선 일종의 ‘연대의 확인’이었습니다. 취재진으로서 이들의 빛나는 눈빛과 오가는 대화들을 빠짐없이 기록하며, 저 역시 가슴 한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마지막 순서는 약 40분간 진행된 ‘참여자 그룹 활동 및 소감 나눔’ 시간이었습니다. 앞서 영화와 GV를 통해 머릿속에 채워진 생각들을 이제는 각자의 언어로 꺼내어 놓는 순서였습니다. 조별로 둥글게 모여 앉은 청년들은 영화 주제에 대해 전혀 어색함 없이 깊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안전은 누군가가 대신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끊임없이 묻고 요구할 때 비로소 쟁취할 수 있는 권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기억한다는 것이 때로는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것에서부터 진정한 변화가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청년들의 목소리에는 단단한 결의가 서려 있었습니다. <4.16의 봄>이라는 이름처럼, 이들이 모여 나누는 온기 어린 대화들이 결국 우리 사회의 얼어붙은 안전불감증을 녹이는 따뜻한 봄바람이 될 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오후 4시, 꽉 찬 3시간 30분의 일정이 모두 마무리되었습니다. 다시 정동길로 걸어 나오는 길, 하늘은 여전히 흐렸지만 마음속에는 작은 촛불 하나가 켜진 듯 환해졌습니다.
이번 4·16재단 ‘7월 안전문화스쿨’ 현장 취재는 청년의 한 사람으로서 제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뼈저리게 되돌아보게 한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안전한 사회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기억하고, 연대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청소년과 청년들의 반짝이는 눈빛 속에서 저는 그 희망의 씨앗을 보았습니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더 이상 ‘기적’이 되지 않는 사회. 아이들이 마음껏 꿈꾸고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사회. 그 당연하고도 절실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4.16의 봄>의 다음 여정을, 청년기자단 역시 가장 가까운 곳에서 끝까지 지켜보고 함께 목소리를 내겠습니다.
안전사회를 만드는 첫 걸음, 4·16재단 후원으로 시작하세요.
국민 226401-04-346585
(예금주: 재단법인 416재단)
#25404160
(한 건당 3,000원)
060-700-0416
(한 통화 4,16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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