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십육일-김연덕] 3/4 정도의 매화나무

월간 십육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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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연 덕


4월의 《월간 십육일》에서는 김연덕 작가님의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3/4 정도의 매화나무>

생일 축하해 연덕.
가느다란 초의 심지에서 타오르는 불빛을 본다. 어떤 소원을 빌지 고민하는 사이 초를 타고 내려오는 형형색색의 촛농도.
카메라로 아무리 담으려 해도 담기지 않는 것이 있다. 순간적으로 일고 순간적으로 사그라드는 촛불은 그 앞에 앉은 사람들끼리만 나눌 수 있는 것이라 내가 더욱 사랑하는 것인데, 이 짧고 생생한 어둠이 차가움과 뜨거움 정중앙에 맺혀있기 때문에도 그렇다. 방심하고 있던 차가운 케이크 표면에 뜨거운 기쁨의 속도로 흐르는, 그러다 이내 크림의 뼈처럼 딱딱하게 식어 굳어버리는 초. 차가움에 뜨거움이 겹쳐지고 뜨거움이 다시 차가워지는 찰나에만 가능해지는 이상한 반짝임, 축하의 순간.
1년 중 가장 좋아하는 순간을 길게 늘인다. 테이블 하나만큼의 크기로 환해진 저녁을 앞에 두고, 아까보다 느슨해진 얼굴의 친구들을, 케이크 상자가 가볍게 덮고 있는 테이블의 나뭇결을, 취향이 까다로운 친구들이 손수 구해온 초와 케이크를 내려다본다. 통통한 딸기가 나무들처럼 빽빽하게 모여 숲을 이루는, 순백의 생크림 케이크.

시끌벅적하고 다정한 친구들을 둔 탓인지, 4월생인 나는 늘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축하를 받았다. 4월이라는 달이 가진 어딘가 어수선한 기운 때문에도 그렇겠지만, 내 주위에는 늘 나보다 감정적이고 낭만적인 친구들이 있었다. 지난 주말에는 얼마 전 친구가 이사한 집에서 축하를 받았는데, 친구의 방 창문에서 3/4 정도 내다보이던 매화도 함께였다. (다른 집 지붕이나 철골 등에 가려져 나머지 1/4은 보이지 않았다.) 친구의 집까지 걸어오는 사이 정말 크고 아름다운 매화나무네 생각했었는데 이 방에서 내다보일 줄이야. 있지 훈아. 계절의 변화를 알아챌 무언가가 네 방에서 보여 참 좋다. 다음 계절에는 저 나무가 또 미묘하게 달라보일 거 아냐, 나는 말했다. 친구는 원래 매화나무를 좋아했다며, 매실이 매화나무의 열매인 건 아느냐고 자리에 모인 모두에게 물었다. 지금껏 매실나무가 따로 있는 줄 알았던 나를 포함해, 탐스러운 미래의 매실 곁에 모여있던 우리는 그 사실을 처음 알았다.
여름이 되면 향기로운 초록 매실이 열리겠지 가을이면 거뭇하고 짙은 잎의 색들이 돋아나다 떨어질 거고, 겨울엔 빈 가지만 남을거야. 그리고 다시 다음 계절이 오면 우리는 오늘을 기억하겠지, 친구는 말했다. 나도 이사온 지 이틀밖에 안 됐지만 말야, 이렇게 다같이 앉아 3/4짜리 매화나무 보면서 연덕이 생일 축하하던 날을 기억할거야. 다른 아쉬움은 없을 거야.
다시 창밖을 건너다봤다. 매화나무 묘목이 저 자리에 언제 심겨졌는지는 모르지만, 아니 처음 싹을 틔우고 작은 나무가 되어 고개를 젖혔을 때가 언제일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내 생일에 다같이 발견했기 때문에 저 매화의 1년은 4월을 기준으로 돌게 되는 것이다. 내년 이맘때 즈음 다시 앉아 복잡한 옛날 레이스처럼 흩날리는 매화꽃을 넋놓고 바라보게 될 것이었다.

나는 올해로 스물여덟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겨우 대학 신입생이던 그날, 생일 축하를 받고 2주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의 그날, 그러니까 이 매화나무를 알게 되기까지 8년이 남아있던 그날, 그곳에 탑승했던 모두의 생일과 모두의 4월이 한순간 멈춰버린 그날로부터는 이제 8년이 지났다. 얼핏 둥근 꽃잎이 겹쳐진 것처럼 보이는 8이라는 숫자가 써놓고보니 더 슬프고 잔인하게 느껴진다. 매년 조금씩 다른 색과 크기와 모양으로 꽃을 틔우는 봄나무들을 그들은 영영 보지 못하게 되었으니까.
수업 하나가 끝나고 다음 수업을 가기 위해 꽤 먼 강의실까지 달려가던 그 순간을 또렷이 기억한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기분 속에 숨차게 오르던 대학교의 나무 계단을 기억한다. 계단의 삐걱임과 그날따라 설명할 수 없는 역함이 섞여 풍겨오던 풀 냄새, 어수선함, 부드러운 바람을 타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던 불안한 소식들. 제발 아닐 거라 믿으며 밀었던 강의실의 문과 열어본 핸드폰에서 발견한 믿을 수 없는 사실들. 여전히 어떤 방식으로 써내려가야 할지 어렵고, 누군가의 마음에 의도치 않은 유리조각 끝을 겨누는 것이 되지는 않을까 두려워지는, 자꾸만 길을 잃게 되는 그런 날. 그럼에도 말해야 하고 말해져야 하는 날, 4월 16일.
더 자주 내다보지 못했던 창으로 그렇게 또 봄이 왔다. 오늘을 기준으로 매년 돌게 되는, 너무도 참혹한 1/4짜리 시야로. 차갑고 두려운 그날의 사실들과 대비되는 이해할 수 없이 따뜻한 계절에. 내가 누리는 단순한 사랑에, 원색적인 행복에 죄책감을 느낄 만큼 무겁게 흐르는 봄이 왔다. 친구의 창 밖으로 내다보던 매화는 달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빛나겠지만 빛바랜 이날의 색과 형태는 언제나 같다. 멈춰진 자연 같은 이날의 공기를, 감히 짐작할수조차 없지만 잠시 멈춰 떠올려본다. 그들이 두고온 그들의 방 밖으로는 어떤 풍경이 펼쳐져 있었을까. 계절마다 모습을 바꾸는 나무나 산이, 그대로인 식탁과 텔레비전과 옷장이 있었을까. 나는 그것에 대해 말하고 싶다. 그들이 만날 수도 있었을 3/4짜리 매화나무에 대해 말하고 싶다.

전부 보이지 않아 더 소중하고 우습고 아름다운 매화, 그래서 더 기억될 만한 철골 사이의 매화나무가, 곁의 누군가가 전해주었던 생생한 온기가 그들 모두에게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 자신만의 주기를 만들고, 흐르길 기대하고, 계절 속에 어떤 모습이 되어갈지 궁금해한 삶의 디테일들이 있었을 것이다. 생일 케이크와 환하고 어두운 촛농과 농담과 수다의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4월 16일에 공개되는 에세이 청탁을 받았을 때,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하며 또 어디에 초점을 맞춘 글을 써야 할까 고민이 많았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지만,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에 대해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내 안에 새로운 주기의 1년이 들어온 날에 대해, 3/4만큼 내다보이던 친구네 집 매화나무에 대해 써보기로 했다. 아주 평범한 행복은 새 봄을 맞은 누구라도 누릴 자격이 있던 것이었으니까, 슬프게도 이 마땅한 빛을 그들 모두가 강탈당한 것이었으니까.
나는 그들을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로 기억하고 싶다. 그들 곁의 완전하지 않은 매화나무를 상상하고 심어 안겨주고 싶다. 매실과 낙엽과 잔가지를 그들의 머리맡에 놓아주고 싶다.

《월간 십육일》은 매월 16일 4.16세월호참사와 관련한 에세이를 연재합니다. 다양한 작가의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주제의 에세이를 통해, 공함하고 계속 이야기해 나가자고 합니다.

​*연재되는 모든 작품들은 4·16재단 홈페이지, 블로그, 뉴스레터 등에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