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십육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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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동 혁
3월의 《월간 십육일》에서는 성동혁 작가님의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안경>
아세테이트를 소재로 한 테들을 즐겨 씁니다. 아세테이트 테들이 가진 형태를 좋아합니다. 차갑지도 않고, 적당히 단단하고 매끄러운 질감을 좋아합니다. 관리가 편하기도 하여 외출을 할 때면 아세테이트 안경을 쓰고 나가곤 합니다. 안경이 표정의 윤곽을 잡아준다고 생각합니다. 안경을 고르는 일은 다른 물건을 고르는 것보다 까다롭습니다.
안경은 타인이 저를 볼 때도 보이지만 제가 타인을 볼 때도 보이는 물건입니다. 안경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보게 됩니다. 그러니 안경까지가 제 표정일 것입니다. 안경 덕에 가끔은 조금은 둥근 사람이 된 것 같고 가끔은 선명한 사람이 된 것 같기도 합니다.
안경을 쓰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안경을 고르는 기준도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안경은 옷의 색과 톤에 따라 바꾸기도 하고, 기분에 따라 바꾸기도 하는 액세서리입니다. 제가 가진 가장 단정한 액세서리겠죠. 테의 형태와 색이 마음에 들면 조금의 불편함은 감수하기도 했었습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운전을 할 때만 안경을 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점점 안경을 쓰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결국 아무리 근사해도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하는 액세서리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근사한 안경을 써도 그 불편함은 제 표정 어딘가에 남겨져 있을 테니까요.
종종 두통이 생기고 어지럼을 느끼곤 합니다. 그럴 때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안경을 벗는 일입니다. 눈을 감고 목을 뒤로 젖히고 산소 발생기를 틀고 두통이 지나가길 기다립니다. 평소 무게감을 의식하지 못하던 안경을 그제서야 느끼곤 합니다. 안경이 그리 무거운 것이었나 느끼곤 합니다.
얼마 전 티타늄 안경을 구입하였습니다. 건강치 않을 때도 어지러울 때도 버겁지 않을 무게를 찾게 되었습니다. 착용감을 최우선으로 생각할 때 티타늄 안경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이 안경은 제가 가진 안경 중 가장 얇고 가벼운 안경입니다. 그러다보니 피로도가 덜했습니다.
그렇다고 두통과 어지럼이 사라진 건 아닙니다. 여전히 그런 순간이 찾아오면 안경을 먼저 벗습니다.
정말 안경이 무거운 것일까요. 아니면 저의 건강이 그 테까지 무겁게 만든 것일까요. 두통과 어지럼은 안경의 무게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그렇지만 가끔은 어떤 이유를 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렇게 하나하나 바꾸어가다 보면 두통과 어지럼을 덜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요.
사월 십육일에 우린 같은 안경을 나누어 가진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 누군가는 안경의 무게 때문에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여 주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였습니다. 우리가 어떤 무게를 나누어 가질 수 있을지 모릅니다. 애초에 나누어 가질 수 없는 무게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같은 안경을 나누어 가지고 서로의 표정을 보며, 조금씩 조금씩 어지럼을 걷어내고, 조금씩 조금씩 선명히 걷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가끔 친구가 다니는 교회에 가 예배를 드립니다. 단상엔 여전히 노란 리본이 있습니다. 그 리본이 어떤 설교 말씀보다 커다랗게 다가오곤 합니다. 운전을 하다가 뒤 유리에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니는 자동차들도, 가방에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니는 사람들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분들처럼 잊지 않고 일월에도 이월에도 삼월에도 어떤 달에도 사월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 분들의 안경을 포개어 봅니다. 덕분에 선명히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고백합니다.
삼월입니다. 곧 개나리가 필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였는지 삼월은, 사월은, 꽃 없이도 노랗습니다.
《월간 십육일》은 매월 16일 4.16세월호참사와 관련한 에세이를 연재합니다. 다양한 작가의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주제의 에세이를 통해, 공함하고 계속 이야기해 나가자고 합니다.
*연재되는 모든 작품들은 4·16재단 홈페이지, 블로그, 뉴스레터 등에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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