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재단 청년 기자단 4기] 세월호참사 10주기 참사해역 선상추모식

4·16재단 청년 기자단 4기 강현석님과 최유빈님의 글을 동시 기재하였음을 알립니다.

 

기념일을 맞이하는 것은 즐겁지만, 추모일을 기억하는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있지 않았으면, 발생하지 않았더라면 어느 봄날처럼 평범한 날이 되었을 4월 16일. 그러나 10년 전, 4월 16일 304명이 희생되었습니다. 되돌릴 수 없는 야속한 시간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기만 합니다. 24년 4월 16일 참사해역에서 열린 선상추모식에 다녀왔습니다.


안산에서 새벽 2시에 출발한 버스는, 목포 해경 전용 부두에 도착하였습니다. 이번 선상 추모식에는 세월호참사 유가족 분들과 지인, 관련단체 활동가와 기자 86명이 함께 하였습니다. 

해경 3015함을 탑승하여 목포 바다를 벗어나 참사 해역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바다에는 짙게 연무가 꼈습니다. 목포 해안쪽으로는 섬들이 많지만, 항해가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아 바다에서 보이는 것은 오직 안개뿐이었습니다.

2년전 저는 기자단으로서 해상추모식에 다녀온적이 있었습니다. 그날과는 전혀 다른 날씨였습니다. 햇빛을 받지 못해 짙은 청록빛을 띤 바다를 3015함은 묵묵하게 항해를 이어갔습니다.

목포 연안을 벗어나자, 물살이 거세졌습니다. 하늘은 여전히 흐렸습니다.

 

목포에서 참사가 일어난 맹골수도 지역까지는 세 시간 가량 걸립니다.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물살이 강한 맹골수도라고 합니다. 맹골수도에 가까워질수록 물살은 더욱 거세졌습니다. 배가 거센 물살을 가르느라 만들어지는 파도는 그 생김새가 빙하를 연상하게 할 정도였습니다. 3월과 4월에 맹골수도의 물살이 가장 거세다고 합니다. 그냥 서 있는 것만으로도 몸이 울렁이는 바다입니다. 십 년 전 사월 맹골수도 연안에서 세월호 이준석 선장은 3등 항해사에게 운항을 맡기고, 자동운항 설정된 배를 수동 운항으로 바꾸었습니다. 도대체 왜 그랬을지, 다시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항해는 계속되었습니다. 출항한 지 세시간이 조금 넘은 열시 즈음. 배가 천천히 느려졌습니다. 마침내 배는 완전히 멈추었습니다. 항해 내내 거칠게 돌아가던 배의 엔진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10시 30분 유가족을 태운 배는 침몰 해역 인근에 도착했습니다.

청년 기자단 강현석 기자 글(전문) 보러가기

 

강한 물살과 파도를 타고 3시간 정도 이동하니 참사 지역을 표시해놓은 ‘세월’이라는 글씨가 새져진 노란 부표가 보였습니다. 세월호 침몰이 있던 장소를 우측으로 둔 채 잠시 정박하자 추모의 의미를 담은 뱃고동이 세 차례 울려퍼졌습니다. 해경 경비함의 뱃고동 소리와 함께 선상추모식이 시작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희생된 304명을 기리는 묵념을 진행하였습니다.

(사) 0416단원고가족협의회 간사 호진아빠 이용기님은 “참사 10주기를 잊지 않고 찾아와주시고, 추모 행사에 도움을 주신 분들께 감사하다”는 인사말을 전했습니다. 아래는 (사) 0416단원고가족협의회 김빛나라아빠 김병권님의 추도사입니다.

사랑하는 아들 딸들아! 매년 4월이 되면 돌아오지도 볼수도 없는 너희들이 그리워 가슴이 너무 미어지는구나. 불러도 대답없는 너희들을 부모는 목놓아 불러본다. 너희의 이름을 부를 때 그리 환하게 웃으며 달려오던 그 모습을 이제는 볼수가 없구나. 들리지도 않고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만 저 바다위에 던진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전화 한통으로 부모는 생활 자체가 엉망이 되었다. 해마다 봄이 오면 꽃들이 피어나는데 너희들은 세상에 꽃을 피우기도 전에 부모 가슴속세 한송이 꽃으로 남아있구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나의 사랑하는 아들, 딸들아 부모의 가슴속에 묻는 날이 벌써 10년이 되었구나. 단원고의 벚꽃, 길거리의 벚꽃을 보면 울컥 눈물이 난다. 세월은 유수와 같다고 하던데 그토록 가슴에 깊은 한을 품고 한 송이 꽃으로 그 먼길을 떠나 이제 볼수도 만질수도 없구나. 무심히 지나온 세월에 거슬러 간다면, 그 시간으로 되돌아 갈 수만 있다면 그렇게 너희들을 그 배에 태우지 않았을 것을… 지금도 후회한다. (중략) 눈물 속에 살아가게 하지 마십시오. 더 이상 참담한 대한민국을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유가족들은 여전히 바다에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외치고 있었습니다.

이후 희생된 아이들의 이름을 한 명씩 부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히 10주기인만큼 단원고등학교 학생 250명뿐 아니라 희생된 304분의 이름을 모두 불렀습니다. 일반인 희생자 중에서는 학교 선생님들을 포함하여 세월호 선원과 아르바이트생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직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희생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미수습자 5분의 이름은 자리를 함께 하던 모두가 함께 불렀습니다.

 

다음으로 헌화를 진행했습니다. 가족분들과 재단과 센터 사람들, 언론인들과 해경까지 모두 국화를 한 송이씩 바다에 던졌습니다.

“딸아, 잘 지내고 있지? 아빠는 요즘 좀 괴롭다. 그럼에도 살아야지. 행복하게 있어.” 라며 담담히 말씀하시는 분들도, 목놓아 아이들의 이름을 외치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먹먹한 가슴을 안고, 유가족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등을 다독이며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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