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십육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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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2024년 1월의 《월간 십육일》에서는 김지현 작가님의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 지난하고 찬란한 >
2007년 겨울, 수학여행을 가는 배에 탄 적이 있다.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도 몇몇 장면은 선명한 느낌으로 남아있다. 친구들과 함께 난생처음 해외로 간다는 설렘 말고도,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하룻밤 동안 겹겹의 감정들이 내 안에 머물러 있었다. 친하지 않은 아이들과 한 숙소에 배정된 당혹감, 선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좋아하는 아이와 우연히 마주치기를 바라는 기대 같은 것들. 그날 그곳엔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과 나를 좋아해 주는 친구들이 있었고, 졸업하면 더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아이들이 있었다. 우리를 보며 어느 도시에서 왔냐며 반갑게 묻는 어른들이 있었고, 밤새 시끄럽게 군다며 야단을 치는 어른들이 있었다. 전화 부스마다 자리를 잡고선 한참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들이 있었고, 그 끝에 별안간 우는 아이들이 있었다. 누군가가 길게 늘여놓은 것만 같던 밤이었다. 학생이었던 나는 지금보다 더 쉽게 낙담하고 최악의 상황을 자주 상상했지만, 적어도 이 배에서 내리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걱정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2014년 봄, 학교 기숙사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벽에 걸린 TV에서 뉴스를 보았다. 그해 봄, 나는 심리학을 전공하기 위해 이제 막 대학원에 입학한 학생이었다. 인간에 대해 더 깊게,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이 시작된 건 지금 생각해 보면 아주 순진한 질문에서였다. ‘왜 모든 인간이 행복하게 살 수는 없을까’하는 의문. 한 개인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마음의 근원을 알아보고 싶다는 궁금증이었다.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했기에 그렇지 못한 남들을 이해하고 돕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나부터가 삶이 행복하지 못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 원인을 스스로 찾아보려고 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디에서 생겨난 질문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나는 그 해답을 인간 안에서 찾아보려고 했다. 다시 계절이 흐르고, 많은 것들은 잊혔다. 그렇게 학위를 받고 일을 하면서 인간에 대해, 인간의 삶에 대해, 안녕과 편안함과 괴로움과 고통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 그동안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그저 길을 걷다가, 한날한시에 한 공간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는 세상을 보았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 여전히 인간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초점을 두려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인간 밖으로 시선을 돌리고 의문을 품게 되는 날들이 있다. 그리고 적어도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떤 불행의 원인은 인간이 아니라 그 밖에서 이유를 물어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그렇게 인간의 삶을 이해해 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소설을 쓰게 되었다. 왜 청소년 소설을 쓰게 되었느냐는 질문을 자주 듣는다. 나에겐 얼마든지 이유를 찾을 수 있는 일이기에 여러 대답을 내놓기도 했지만, 결국엔 그 시기의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쓴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좋은 어른이 되는 것보다, 그전에 무사히 어른이 되는 것부터 쉽지 않은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 지난하면서도 찬란한 시기에 대해 쓸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교복 입은 학생들과 교실이 나오는 소설을 쓰는 동안에는, 그 작은 공간에 모여 웅성거리는 마음들이 들려오는 것만 같다. 그 마음들을 헤아리면서, 애들이 다 그렇지, 사춘기니까 그렇지, 쉽게 말하지 않는 어른이 되려고 다짐한다. 시간이 흐르고 그 시기가 지나면 잊기 쉽고, 잊어버리고 나면 뭉뚱그려서 가볍게 말하기 쉽다는 사실을 되새기려고 한다. 내가 2007년 겨울에 타고 있던 배 안에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꼈듯이 2014년 봄의 그곳에서도 그만큼 많은 마음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그 소중한 마음들을 하나하나 다 헤아릴 순 없어도 적어도 잊지 않으려고 한다. 비극의 희생자들이라고 뭉뚱그려 생각하지 않는 것, 무력감에 짓눌려 그 일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믿는다.
잊지 않기 위해서, 가볍게 보고 함부로 말하지 않기 위해서 선택한 방법이 결국 글쓰기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쓰는 동안 내가 되새기고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그 다짐을 여기에 쓴다.
……
김지현 (소설가)
2022년 사계절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청소년소설을 쓴다.
새로운 세계를 짓고 이야기를 만들 때 가장 즐겁고 충만하다고 느낀다.
작품
청소년소설 「우리의 정원」 등
《월간 십육일》은 매월 16일 4.16세월호참사와 관련한 글을 연재합니다. 다양한 작가의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주제의 글을 통해 함께 공감하고 계속 이야기해 나가자고 합니다.
*연재되는 모든 작품들은 4·16재단 홈페이지, SNS(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블로그), 뉴스레터 등에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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