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십육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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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은 정
7월의 월간 십육일에서는 회사원이자 프리랜서 에세이스트이신,
송은정 작가님의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그쪽 마을은 날씨가 맑게 개었나요>
얼마 전 시할머니의 장례를 치렀다. 함께 사는 반려인의 가족이었고 결혼 이후에도 왕래가 거의 없었기에 정서적 교감을 나눌 기회는 거의 없었다. 서울과 대구라는 지리적 거리도 여기에 한몫했을 것이다. 한 통의 전화로 날아든 임종 소식에 놀라기는 했지만 나는 금세 모니터 화면으로 돌아가 업무에 복귀했다. 무정하기 보다는 죽음을 실감하기 어려웠다는 게 맞을 것이다. 지금 여기는 너무도 생생하고, 바쁘고, 두서없이 쏟아지는 카카오톡 알림음으로 가득찬 곳이니까.
요양병원 지하 1층에 마련된 빈소에서 꼬박 이틀을 보냈다. 상조업체에서 파견된 전문가의 안내에 따라 일가 친인척이 일산분란하게 움직였다. 조문객을 맞고, 부족한 떡과 수육을 발주했다. 손님이 모두 떠난 밤에는 나와 반려인, 사촌동생이 팀을 이루어 장부에 부조금을 기록하고 계산이 틀리지는 않았는지 돈을 세고 또 셌다. 자칫했다간 소란의 불씨가 될 수도 있으므로 이틀 중 그 어느때보다 집중력을 발휘해야 했다. 그렇게 한참을 더하기 빼기를 하다보니 가슴께가 답답하고 현기증이 일었다. 창문 하나 내지 않은 지하 공간은 사람들의 눈물과 회환, 피로로 공기의 밀도가 한계치까지 다다른 듯했다. 죽음은 여전히 멀게만 느껴졌다.
다시 돌아온 일상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슬픔에 머물러 있기에는 내일이 너무도 빨리 찾아왔다. 나는 당연한 듯 찾아오는 내일에 진절머리를 쳤다. 반가운 대신 겁이 났고, 때로는 어떻게든 피하고도 싶었다. 한 사람의 부재가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그리 크지 않다는 사실 또한 나를 괴롭게 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불시에 마음이 쿵 하고 쏟아져내린 건. 창백한 조명 아래 놓여 있던 할머니의 비단 신발이 머릿속에 환영처럼 떠올라 나는 하던 일을 멈춘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것은 마치 슬픔이 도착한 기분이었다. 조금은 느리게, 하지만 길을 잃지 않고 와준 슬픔과 나는 잠시 동안 마주했다. 슬픔은 오래 머무르지 않고 이내 나를 떠나갔다. 하지만 영영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언제고 다시 돌아올 것처럼 뒤를 돌아보는 안녕이었다.
4월에는 거리마다 금계국이 가득 피어 있었다. 점심을 먹고 혜화동 근처를 산책하던 길, 금계국 한 무리를 발견한 동료가 뜻밖의 말을 꺼내놓았다. 그때도 금계국이 무성히 피어 있었어요. 이렇게나 아름다운데. 나는 대번에 그때가 언제를 가리키는지 알 수 있었다. 구내식당에서 뉴스 보도를 생중계로 접한 뒤 여느 때처럼 업무에 복귀했던 기억이, 모두가 제자리로 무사히 돌아오리라 믿었던 7년 전 기억이 한달음에 소환됐다. 아마도 그날 이후였을 것이다. 노랑을 마주칠 때마다 마음속에 빛 하나가 작게 반짝이기 시작한 것은. 거리에서 우연히 노랑 리본을 마주칠 때면 나도 모르게 걸음의 속도를 늦추곤 했다. 그리고는 예고 없이 날아든 슬픔을 향해 조용히 안부를 물었다. 아주 찰나였지만 깊고 진한 포옹이었다.
할머니의 비단 신발처럼 어떤 노랑은 나를 상념에 빠트렸다. 언제부터인가 산수유와 개나리, 금계국을 바라볼 때면 찬란하게 빛나는 생명력에 한껏 감탄하는 동시에 아릿한 안도를 느낀다. 잊지 않고 찾아와주었음에, 어김없이 돌아온 봄에 감사함을 느낀다. 아라이 료지의 그림책 <아침에 창문을 열면>은 “아침이 밝았어요. 창문을 활짝 열어요”라는 문장과 함께 매일 아침 창문을 여는 아이의 시점이 릴레이처럼 펼쳐진다. 산속 깊은 곳의 농촌, 번화한 도심 한가운데, 푸른 바닷 마을 등 창 너머 풍경을 바라보며 아이는 언제나처럼 밝아온 평화로운 오늘에 기뻐한다.
“그쪽 마을은 날씨가 맑게 개었나요?”
아이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몇 번이고 따라해본다. 언제고 슬픔이 날아들었을 때 잊지 않고 안부를 물을 것이다.
월간 십육일은 매월 16일 4.16세월호참사와 관련한 에세이를 연재합니다. 다양한 작가의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주제의 에세이를 통해, 공함하고 계속 이야기해 나가자고 합니다.
*월간 십육일에서 연재되는 모든 작품들은 4·16재단 홈페이지, 블로그, 뉴스레터 등에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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