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십육일-임진아] 우리의 괄호

월간 십육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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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아


5월의 월간 십육일에서는 살면서 느끼는 다양한 것을 그림과 글로 표현하는,

 임진아 작가님의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우리의 괄호>

 

7년 전 나는 회사원이었다. 7년 전 4월 16일, 당장 큰 소리가 오고 가더라도 아무렇지 않을 고요함 속에서 각자의 키보드와 마우스 소리만이 공간을 겨우 채우고 있었다. 덜 뜬 눈으로 컴퓨터를 바라보고 있다가 뉴스를 접했다. 컴퓨터 화면 오른쪽 하단에 네이트온 알림창이 무심하게 떴다. 그 알림 창은 속보뿐만 아니라 연예 소식이나 정치 기사도 곧잘 띄웠다. 작은 창 속 작은 글씨. 무표정하게 일하던 임대리는 눈동자만 움직여 그 글씨를 읽었다. 습관적으로 오늘자 업무로 시선을 옮겼다가 서둘러 다시 눈을 돌렸지만, 알림창은 이미 모니터 밑으로 사라져 있었다. 그때 사무실 사람들이 소리를 내며 뉴스를 읽었다. 여섯 명의 팀원과 저 멀리 따로 앉은 본부장의 얼굴들이 하나둘 번갈아가며 파티션 위로 들썩였다. 몸을 일으킨 건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팀장님이었다. 그리고 모두 다시 자리에 앉아 다음 속보를 기다렸다. 팀장님이 다시 일어났다.

“모두 구조했대. 다행이다.”

방금 뜬 속보 알림창을 나도 보았다. 그걸 곧장 클릭했다. 안산 단원고 측 “학생들 모두 구조” 글씨가 사진에 크게 박혀 있었다. 몰랐다. 사진 속 진짜 상황은 속보 타이틀에서 빠르게 멀어지고 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배 밖의 모든 사람들만 속을 수 있던 속보였다.

 

디자인팀이던 우리 팀은 규모가 작았다. 많으면 일곱 명, 그 안에서 진심을 떠들 수 있는 건 한두 명. 그 작은 세상 안에서 우리는 바깥 세상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일들을 함께 바라보며 각자 해야 할 일을 하며 지냈다. 4월 16일부터 우리는 “미치겠다”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다음날, 그 다음날, 계속되었다.

“진짜 미치겠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일을 해야 했다. “미치겠다”라는 말은 우리 입에서 조금씩 나오지 않게 되었지만, 미치겠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의 뒤통수 어딘가에, 심장 아래쪽에 박혀버린 채로, 그저 눈앞의 일을 해내며 오늘을 살아냈다. 작은 사무실 모두가 그렇게 여름을 맞이했다.

 

여름이면 열리는 야외 페스티벌의 엠디상품을 몇 해 째 우리 팀이 담당해오고 있었다. 페스티벌의 메인 포스터를 디자이너들과 처음 보는 자리에서, 우리는 각자의 어딘가에 박혀 있던 그 말을 꺼냈다.

“미치겠다.”

포스터에는 수면 아래 사람들이 이미지화되어 있었다. 어찌 보면 평범한 표현이었다. 음악의 세계에 풍덩 빠진 사람들. 환상적인 축제. 그런데 하필 검은 바다였다. 굳이 바다 속이었다. 음악에 그만큼 빠질 수 있다는 가상의 이미지는, 마치 있던 사건을 없는 취급하는 것만 같았다.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모두의 얼굴이 굳었다.

“팀장님, 이건 아닌 것 같아요.”

“내가 이상한 거 아니지.”

포스터는 얼마 뒤 바다가 아닌 우주 느낌으로 수정되었다.

나조차도 한동안 TV 속 바다 영상을 못 봤다. 예능에서 수영장을 배경으로 누군가를 장난삼아 빠트릴 때도, 해양 생물을 비추러 수중 카메라가 다이빙을 할 때도 나는 채널을 돌렸다. 누군가를 떠올렸다. 방금 이 장면을 안 보셨으면.

어떤 슬픔은 이마가 구겨지며 시작된다. 이마에 미치겠는 눈물이 차오른다. 어떻게 할 수조차 없는 나의 무력함이, 나를 한층 더 울게 만든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든다. 한없이 무력하다 느끼기에 할 수 있는 게 있다. 있던 일을 없는 취급하지 않는 것, 여전히 계속되는 사건이라는 걸 생각하는 것. 그렇게 나는 ‘미리’라는 앞 시간을 감각하며, 나에게서 비롯되는 말과 행동 앞에 애도에서 시작된 시선 하나를 두게 된 것이다. 누군가가 보고 있다, 볼 수도 있다, 그의 하루가 순식간에 망쳐진다는 마음 한 줄이 생겨났다.

 

몇 해 전, 지인과 중국집에서 밥을 먹다가 음식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지인인 H는 사진을 안 찍고 조용히 밥만 먹었다. 내가 아는 그는, 맛있는 걸 먹으면 언제나 SNS에 신나게 사진을 올리는 사람이었다. 혹시 맛이 없나 싶어서 물어봤다.

“H 씨는 사진 안 찍으세요? 맨날 음식 사진 올리시잖아요.”

“그게요. 당분간은 음식 사진 안 올리려고요.”

이유는 명확했다. 최근에 임신한 친한 친구 때문이라고 했다. 입덧이 무척 심해서 음식을 잘 못 먹게 되었는데, SNS에 올라오는 음식 사진만 봐도 너무 괴롭다는 것이다.

“사진 올리면 걔가 보고 또 괴로울 것 같아서요. 그래서 이제 아예 안 찍고 있어요.”

나는 오랫동안 촘촘히 끄덕거렸다. 처음에 나온 공심채볶음 사진만 찍고, 다른 사진은 찍지 않았다. 나는 H의 말을 듣고 다시금 생각했다. 미리 챙기는 마음들에 대해.

 

(     )을 본다면 단번에 몸이 굳어버릴 사람이 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작은 알림창으로, 핸드폰 속 뉴스로, 밥을 먹으며 본 TV로 알게 된, 그 괄호에 적어도 일상이 뒤흔들리지 않는 우리가, 계속해서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니듯이, 애도의 방법으로 누군가의 하루를 미리 생각하는 것.

 

나에게도 그 괄호가 존재한다. 십 년의 세월이 지나더라도 나를 멈추게 만든다. 이제는 그 괄호 앞에서 미소를 지을 수는 있지만, 깊게 남은 슬픔의 자국이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나의 가족들은 TV에 나오는 괄호 앞에서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또 대화 중에 괄호를 꺼내지 않는다. 하지만 모르는 타인은 얼마든지 나와 나의 가족에게 괄호를 가져온다. 땀 또한 뒷목에서 숨어서 흐른다.

하루는 친한 친구가 빌려 간 책을 돌려주며 쪽지를 써주었다. 그 안에는 짧은 시가 적혀 있었다. 나를 굳게 만드는 (     )에 대한 시였다. 하필 그 괄호가 배경이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복잡한 슬픔에 저녁이 멈추었지만, 이내 친구의 마음만으로 꺼내 갖자고 마음을 먹었다. 사람을 잃은 사람의 일상에는 너무나 세세하고 복잡한 슬픔이 꾸준히 더해지고 섞여진다. 그걸 알기에 나는 유족들의 괄호를 챙기고 싶다.

 

오늘도 노란 리본이 눈앞에서 흔들린다.

뛰어가는 학생 뒤에서, 조용히 책을 읽는 청년 옆에서, 커피값을 계산하는 누군가의 지갑에서. 미치겠는 마음이 소지품이 되어 흔들린다. 나는 몇 해 전에 친구가 준 노란 리본을 잃어버렸다. 노란 뜨개실로 만든, 아주 작은 리본이었다. 나 또한 어디론가 뛰어가다가 가방에서 그만 떨어트린 것 같다. 늘 함께 다니던 리본을 잃었지만, 상심하지 않았다. 나라면, 내가 길을 가다가 노란 리본을 마주한다면, 곧장 주워서 나의 어딘가에 다시금 걸어둘 테니까. 우리에게 노란 리본이란 그렇다는 걸 아니까.

 

그렇게 우리의 애도는 이어지고 이어진다. 나의 날을 살면서도 도로 슬픔을 마주해야 한다. 나 또한 나의 슬픔을 마주하며 잊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애도 또한, 나의 일상에서 세세하고 또 꾸준히 더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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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십육일은 매월 16일 4.16세월호참사와 관련한 에세이를 연재합니다. 다양한 작가의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주제의 에세이를 통해, 공함하고 계속 이야기해 나가자고 합니다.

*월간 십육일에서 연재되는 모든 작품들은 4·16재단 홈페이지, 블로그, 뉴스레터 등에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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