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면서도, 나에게 그 개념은 모호하게 다가올 때가 줄곧있다. 연대란 어쩔 수 없이 아픔을 같이 마주하게 된 이들의 우발적인 공감대일까? 혹은 끊임없이 남의 입장이 되어보고자 노력하여 길러지는 것일까? 그 근원이 정확히 어디에 있던, 연대는 아마 큰 그림에서 같은 곳을 바라 보는 것, 같은 공간에 앉아 같은 고민을 하는 데에 있지 않을까 싶다.
지난 달, 4.16재단에서 진행한 국제포럼의 통역을 돕게 되었고, 이 시간은 영광이자 귀한 배움이 기회였다. 세월호 가족 및 국내의 재난 피해 가족들과 해외의 피해가족 및 활동가들과 동행하며 함께 보낸 시간은 마치 ‘연대’가 윤곽을 잡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 같았다.
‘피해자 권리’를 고민하며,
‘피해자 연대’를 만들어 나가다
영국, 프랑스, 뉴질랜드에서 방한한 연사들은 재난 피해자들의 지원체계 및 구너리 강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세월호의 풀리지 않은 과제들에 어떻게 응답해 나갈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 주었다. 이 모든 논의의 궁극적인 행선지는 명백하고 간단했다. 참사가 되풀이 되지 않는 세상이었다.
외국에서 세월호의 소식은 아마 참사 당일에만 반짝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것 같다. 포럼에 앞서, 해외 연사들은 공감과 만남의 시간을 통해 인천의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 안산의 기억교실, 단원고등학교, 그리고 가족협의회를 방문했고, 뉴스의 보도를 통해 접했던 숫자들이 아닌 이름과 이야기로 세월호 참사를 만날 수 있었다.
재난의 아픔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같은 아픔을 어루만지러 나서다
세월호 활동에 대해 천천히 배워가기 시작할 무렵 알게된 영국의 Disaster Action과 프랑스의 FENVAC은 재난 피해자들이 주체적으로 다른 참사 현장에서 직접적인 도움을 수행하는, 국제적으로도 거의 유일한 사례로 꼽히는 단체들이었다.
영국의 각종 재난참사 피해자들의 포괄적 조직인 Disaster Action은 다수의 인재가 발생했던 영국의 198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창립 30년이 지난 오늘 날 까지, 30개의 다른 참사를 겪은 이들의 경험이 축적되어 서로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이 함께 극복의 과정을 일구어 나가고, 피해자들의 법적, 행정적 대응 등을 돕고 있다. 포럼의 기조강연을 맡은 Anne Eyre 본인은 1989년, 96명의 리버풀 팬들이 희생당한 힐스버러 참사의 생존자이기도 하다. 본인의 경험에 기반한 공감만큼 깊은 유대감은 없어서인지, Anne의 눈과 미소에서 베어나오는 따뜻함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꾸밈없었다. Anne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한다며, 본인이 택한 길을 ‘사명’이라고 일컫기도 했다.
프랑스 정부의 공식 지원을 받아 활동을 하고 있는 FENVAC은 1994년 설립되어 재난 및 테러 피해자 및 유가족들과 전문가들이 함께하는 단체다. 단체를 대표하여 방한한 Sophia 이사로부터 피해자들의 자립적인 단체 형성을 도와온 과정, 기억과 추모에 대한 약속,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과정, 법적 지원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영국과 프랑스 두 사례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궁극적으로 같다고 본다. 참사의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경험한 이들이 피해자 또는 지원 대상자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주체가 되는 것은 재난 상황에서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가장 잘 아는 자들이 수습, 회복 과정 및 진실규명에 참여함으로서 피해자의 목소리가 보다 더 정확하게 반영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재난 현장에서도 체계적이고 실질적인 지원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앞선 두 곳과는 조금 다른 모델이 있었다. 뉴질랜드의 3,000명 가량의 작은 항구 마을 리틀턴은 2000년부터 약 21,000건의 지진을 겪었는데, 이 혼돈의 시기를 극복하는 데에 타임뱅크라는 단체가 했던 역할이 무척 컸다.
타임뱅크는 봉사활동 시간을 일종의 화폐로 환산해, 본인이 남을 위해 제공한 봉사시간만큼 자신 역시 봉사를 제공받을 수 있는 호혜성에 기반한 시스템이다. 타임뱅크 시스템에는 리틀턴 주민의 약 20%에 해당하는 주민의 정보와 연락처, 또 그들이 제공할 수 있는 봉사역량에 대한 데이터베이스가 있었기에, 주민들은 복구 과정에서 서로에게 의지하며 함께 지진을 극복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인근 도시인 Christchurch의 이슬람 사원에서 올 해 3월에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 이후에도 정부 당국의 대응이나 하향식의 지원보다는 지역사회에서 자주적으로 결성된 연대체와 시민들간의 공감이 얼마나 귀중했는지 Margaret은 이야기 해주었다.
뉴질랜드 Lyttelton Timebank 설립자 Margeret Jefferies
이러한 공동체 의식과 자연스러우면서도 촘촘한 연대는 미리 탄탄한 기반이 마련되어있어야 재난 상황에서 그 효력을 발휘한다. 재난에 대한 대응은 재난 상황이 일어난 후에서부터 시작됨이 아니라, 그 발생 전부터 오랜시간 지속적으로 구축해 나아가야하는 과제임을, 그리고 예방 및 대응에 대한 노력이 정부와 제도에 의해서만 견인되는 게 아니라, 시민들이 더불어 따뜻하고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 감으로서 기여할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상기 할 수 잇었다.
금요일 오전, 삼풍 백화점 참사, 대구지하철 참사, 스텔라데이지호 실종 사고 등 각종 참사 피해자들이 토론 자리에서 구체적인 질문을 쏟아내는 것만 보아도 국제 사례를 통한 자문이 세월호 가족들을 비롯한 재난참사 피해자들에게 얼마나 절실했는지 알 수 잇었다. 작은 질문, 요청 하나하나를 결코 소홀히 넘기지 않는 연사들의 모습은 이들의 간절한 마음에 대한 진심어린 보답이었다.
질문하고 경청하는 세월호 가족들과 토론 참가자들
다른 나라의 재난 극복 과정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국에서는 아직 미흡한 법적, 제도적 지원 그리고 사회적 지지 등을 떠올리게 했고, 다른 나라들의 경험과 여건이 마냥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피해당사자들의 참여권이 한국보다 단단히 확보되어 있는 프랑스 및 영국의 사례들을 통하여 세월호 이후의 가족들의 외침이 분명 중요한 목적지를 향하고 있다는 희망과 확신을 갖게도 되었다.
한겨레와의 인터뷰 중 Anne 연사의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다. “세월호 참사를 한국 밖에서도 주시하고 있기에, 이 크나큰 사건이 어떻게 풀어져 나가는지가 국가의 시스템과 책임성을 대변하게 될 것”이라고. 국제사회가 세월호의 경과를 지켜보고, 세월호 가족과 활동가들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한국 밖에서 들려온다면, 그리고 그 관심이 국제적 연대로 이어져 함께 가능성을 고민해 나아갈 수 있다면. 피해자 참여와 권리를 향한 더 많은 길이 열리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아마 그 가능성을 향한 첫 발걸음은 연결이기에, 지난 한 주는 한 사람의 눈물과 두 사람 간의 포옹, 그들이 나눈 감사와 감동을 넘어 그 자리에 없었던 이들까지 아우르는 연대의 첫 걸음이었다고 생각한다.
하루종일 쉴틈 없던 일정을 마치고 9시반,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 세월호에 대한 새로운 보도가 나온다는 소식에 주저없이 내 방으로 모여, 조금은 엉성했을 내 통역을 한 마디, 한 마디 귀담아 듣던 연사들의 모습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이렇게 연대는 어떤 거창한 것이 아니라 타인의 아픔, 소외를 인정하고. 거기에서 돌아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은 작지만 따뜻한 몸짓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 이 컨텐츠는 416기자단의 박영서 기자가 작성한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