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십육일 – 배수연] 레이스 뜨는 사람들

월간 십육일

x

배수연


2023년 12월의 《월간 십육일에서는 배수연 작가님의 시를 소개합니다

 

 

 

< 레이스 뜨는 사람들 >

 

 

언제까지, 언제까지

그 세계에 갇혀있을 거냐는 말을 들었다

전화기 너머로

 

질문일까?

아니, 그들은 내게 궁금한 것이 없다

 

귓속에 검은 물, 검은 물이 흐르고

입술은 길어진다 납빛이 된 부리를 벌릴 때

 

거울 좀 봐,

눈보라가 든 배낭을

옹기장수처럼 이고

절벽을 타는 운명, 거기 네가 있지

잠을 잘 자야 해, 어깨를 두드리며

내 발에 뒤축이 닳은 신을 신기는 사람들

 

운명일까?

아니, 내 운명은 거울 밖에 있다

 

호통과 명령 거울 비추기와 헛된 호의

 

고립이란 오직 그들의 세계

점을 치고 셔틀콕을 던지고 구두코를 매만지며

스시에 조심스레 간장을 찍어 먹는 세계

무엇이든 불시에 묻고 싶은 것을 묻고

보고 싶지 않은 것은 없다고 말하는 세계

 

네가 입을 스웨터를 풀어헤쳐

폐허 위에 덮을 거대한 레이스를 뜨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조심해

 

레이스 위에 활기찬 경주마를 푸는 사람들

펜스에 매달려 소리치고 셈을 하고

경주마를 가두고 조련하는 사람들

 

나는 전화기를 비우고

거울을 비우고

신발을 고쳐 신는다

 

그들이 내가 궁금할 때

나는 거기 없다

 

 

……

배수연 (시인)

중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며 시를 쓴다.
읽기, 쓰기, 그리기를 한 몸처럼 좋아한다.

 

작품

시집「조이와의 키스」, 「가장 나다운 거짓말」, 「쥐와 굴」 등


《월간 십육일》은 매월 16일 4.16세월호참사와 관련한 글을 연재합니다. 다양한 작가의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주제의 글을 통해 함께 공감하고 계속 이야기해 나가자고 합니다.

*연재되는 모든 작품들은 4·16재단 홈페이지, SNS(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블로그), 뉴스레터 등에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다른 소식들이 궁금하신가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https://416foundation.org/%ec%98%a8%eb%9d%bc%ec%9d%b8-%ea%b8%b0%ec%96%b5-%ea%b3%b5%ea%b0%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