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이 아닌, 피해자 중심으로” – 416재단 창립1주년 안전사회포럼(2)

대구지하철 참사로 어머니를 잃은 2.18안전문화재단 황순오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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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재난과 참사를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을까.

세월호 참사, 씨랜드 참사, 대구지하철 참사, 제천 화재 참사의 유가족들과

32년간 참사를 취재해온 PD, 오랜 시간 피해자 곁을 지켜온 연구자,

당시 시신을 수습했던 민간 잠수사와 시민들이 모였다

 

두 번째 발제를 맡은 유해정 연구원은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재난참사의 피해자들을 만나왔다. 세월호 국면에서는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으로 활동해 피해가족들의 이야기를 책에 담았다. 현재는 성공회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이자, 4.16재단의 운영위원으로 참여해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급 봉사를 병행하고 있다.

앞서 발제한 이규연 PD가 현장 기자로써 내린 진단과, 서로 다른 분야인 재난참사 연구자인 유해정 연구원이 내린 진단은 상당 부분이 겹쳤다. 재난참사에 대한 국가적인 고민과 합의를 시작조차 하지 못한 상황이라는 점. 백서의 부재는 물론, 재난참사에 대한 연구가 사고 직후에만 진행이 되고, 지속적으로 연구되는 경우가 거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단순히 가족의 명복을 빌어주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를 어떻게 쇄신하느냐의 문제.

 

유해정 연구원은 여러 참사들의 유가족과 피해자들의 이야기에서 공통적인 생각이 존재한다고 했다. 이들이 단순히 개인적인 슬픔이나 애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같은 사고를 재발하지 않게 하려는 노력, ‘생명’을 사회의 최우선 가치로 만들려는 노력 등 자신이 입은 상처를 다른 이가 겪지 않게 하려는 사회적인 측면의 생각을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이 노력이 성공한 후에야 피해가족들이 비로소 진정한 개인적 애도를 할 수 있었다는 사례를 언급했다.

그녀는 다섯 가지 참사의 연구 자료를 준비했다. 각자 다른 참사의 피해 가족들과 대화를 하며, 사고 당시 겪었던 문제와 해결 과정, 그리고 현재 겪고 있는 문제 등을 짚어냈다. 피해자의 관점이 담긴 소중한 자료였다.

 

유해정 연구원은 피해자 중심으로 문제를 바라보기를 주문했다
유해정 연구원은 피해자 중심으로 문제를 바라보기를 주문했다

 

삼풍백화점 참사

한국 역사상 최악의 참사

– 502명 사망, 937명 부상

 

1995.06.29 삼풍백화점 참사 발생
1995.06.29 삼풍백화점 참사 발생

위령탑이 크지 않아도 좋다. 여기에 최고급 아파트를 짓든, 최고급 백화점을 짓든,

여기에서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었다는 묘비석이라도 하나 만들어주면 좋겠다.

우리가 왜 양재시민의 숲에 가서 울고, 눈물을 뿌려야 하는지. 의미가 없는 거예요.

– 삼풍백화점 참사 유가족 구OO 씨

 

삼풍백화점 참사. 붕괴 규모가 워낙 컸던 탓에 참사 후 100일이 넘도록 수습하지 못한 시신이 100구를 넘었다. 참사 후 구호조치와 수습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유가족이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까지 직접 뒤져야 했다. 결국 잔해물 속에서 가족과 유품 등을 찾아냈고, 최종적으로 30분은 찾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사망 인정 역시 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삼풍백화점 참사의 피해가족들이 가장 아쉬워하는 지점은 위령탑이 제대로 세워지지 못한 것이라 했다. 작더라도 현장을 기억하기를 바라던 유가족의 입장과 달리 당시 서울시의 입장은 강남 서초구의 비싼 땅을 팔아서 삼풍 그룹의 부족한 재원을 해결해야 보상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유가족의 입장은 반영되지 않았고, 참사 현장과 많이 떨어진 양재시민의 숲에 위령비가 세워졌다.

 

우왕좌왕. 세월호 사건이 났는데 똑같은 행동을 하는데 정이 떨어지더라고요.

삼풍백화점에서 502명이 목숨을 잃었을 때 경험을 했는데, 또 저런 식으로 하는구나.

– 삼풍백화점 참사 유가족 조OO 씨

 

다음으로 지적한 것은 언론과 국가에 대한 불신이었다. 100일이 지나도록 가족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음에도 언론은 이를 다루지 않았다. 당시 언론은 생존자 3명을 반복해 출연시키며 ‘참사를 이겨내고 있다’라는 메시지를 핵심으로 방송했다. 시신 수습의 문제와 언론의 무능 등은 다뤄지지 않았다. 피해가족들은 자신이 인터뷰를 했던 내용이 왜곡 보도되는 등의 일을 겪으며 더 이상 TV나 신문을 보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이 피해가족들이 국가와 언론에게 외면받을 때 곁에서 가장 큰 힘이 되어준 사람들은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뉴스를 보고 뭐라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한 시민들이 사고 현장으로 봉사를 나온 것이었다. 피투성이가 된 구조자를 불평 없이 자신의 차량에 태워 병원으로 옮긴 것도 봉사자들이었다. 피해가족들은 이분들이 가장 고맙다며 큰 도움이 되어주신 분들이라 표현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받았던 도움처럼, 사회에 도움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씨랜드 화재 참사

불법 인허가, 불법 증개축, 리베이트 계약, 책임자-수사관 혼연 관계, 부실 수사 등

제대로 된 조사와, 처벌을 하지 않은 대표적 참사

– 소망 유치원생 19명, 교사 1명, 강사 3명 사망

 

1999.06.30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참사 발생 < 출처 : SBS뉴스 >
1999.06.30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참사 발생 < 출처 : SBS뉴스 >

 

원인규명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좀 국민이 납득하고 유가족들이 납득하는 수준까지는…

이런 일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해주면 가슴에 남아있는 억울함이 덜 할 텐데…

– 씨랜드 화재 참사 유가족 이OO 씨

 

이날 포럼에는 씨랜드 참사로 두 쌍둥이 딸을 잃은 유가족 대표도 있었다. 사건 발생 당시 제대로 된 검증과 조사가 없이 발화 원인은 모기향이라는 발표와 함께 사건은 급히 마무리 지어졌다. 이에 유가족들이 국무총리를 찾아가고, 재수사를 요구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 재판에서조차 피해자의 성별, 이름이 바뀌어 있을 정도로 기본부터 부실했다.

씨랜드 참사의 피해 가족들이 가장 아쉬워하는 지점 역시 전혀 이뤄지지 않은 진상규명과 부적합한 처벌이었다. 책임자 처벌이 제대로 되지 않자, 씨랜드를 운영했던 인물이 참사 현장 인근에서 또다시 불법 캠핑장을 운영하다 적발되는 모습도 지켜봐야 했다. 아무도 죄송하다고 말하지 않았고, 아무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

도저히 그냥 끝낼 수가 없더라고요.

우리 19명. 유치원생 희생자 부모들이 다 오케이 했어요.

또 유족 변호인단이 수임료 한 푼도 안 받고 그대로 우리한테 기부를 해줬어요.

그래서 출범한 게 한국어린이안전재단

– 씨랜드 참사 유가족 고OO 씨

 

잘못된 것을 알고도 고치지 않는 현실은 피해 가족들이 먼저 떠난 아이의 이야기조차 꺼내기 어렵게 만들었다. 피해가족은 ‘시간이 약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버티는 것’이라고 할 정도로 이들의 아픔은 사건이 발생한 그날에 멈춰있었다. 유해정 연구원은 사건 발생 초기에 여러 측면에서 실패한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며 이 문제가 피해가족에게 가장 큰 아픔으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음을 강조했다.

피해가족들이 ‘아이들이 남겨준 숙제’라고 생각하고 지금도 수많은 사회적 재난에 무언가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전국을 다니고 있다며, 또 다른 어린이들의 희생을 막으려는 연대 활동을 언급했다. 피해가족들은 보상금을 모아 한국어린이안전재단을 출범하고, 이러한 사회적 연대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어린이안전재단 고석 대표. 이번 재단 1주년 포럼에도 많은 도움을 주셨다
한국어린이안전재단 고석 대표. 이번 재단 1주년 포럼에도 많은 도움을 주셨다

 

대구지하철 참사

한국 최악의 철도 참사.

– ‘최소’ 192명 사망, 68명 실종, 151명 부상

 

2003.02.18 대구지하철 중앙로역 화재 참사 발생
2003.02.18 대구지하철 중앙로역 화재 참사 발생

 

책임자 처벌이 안 된 거죠.

정말로 많은 대형 참사는 책임자 처벌만 옳게 되어도 줄지 않겠나

– 대구지하철 참사 유가족 황OO 씨

 

국내 최악의 철도 참사이자, 세계 철도 역사에서 두 번째로 많은 희생자를 낸 대구지하철 참사. 화재 현장이 화장터보다 더 뜨거웠던 탓으로 뼈조차 남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유해는 나오지 않았으나 지팡이가 발견되어 사망이 확정된 경우도 있어 대구지하철 참사의 피해가족들은 ‘최소’ 192분이 돌아가셨다고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참사가 발생하던 시절은 휴대전화가 많이 보급이 되기 전이라 가족이 연락이 안 되는 것인지, 사고를 당한 것인지, 병원에 가있는 것인지 확인이 어려웠다. 그 상황 속에 대구시장과 대구지하철공사 사장은 참사 발생 하루 만에 현장을 물청소를 해버렸다. 화재가 발생한 열차도 기지창으로 옮겨버렸다. 물 청소와 문이 열린 채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유골, 유류품, 진상규명의 단초들은 사라졌다. 유가족들은 하수구까지 직접 뒤져가며 가족의 흔적들을 찾아내야 했다. 그러나, 책임자들은 처벌받지 않았다.

 

상처가 많이 되죠, 상처가. 자기 가족 묻을 땅이 없겠어요?

하다못해 누구 말마따나 보상금도 있는데 그런 걸 마련 못하겠느냐.

양지바른 좋은 곳에 묻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은, 가족이 억울하게 죽었잖아요.

안전 관련 문제 때문에.

– 대구지하철 참사 유가족 전OO 씨

 

대구지하철 참사 피해가족들은 개인적인 애도보다 사회적 의미를 택했다. 억울하게 희생당한 가족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선택은 ‘그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것’이라며, 가족의 유해를 사회에 내놓은 것이라 표현했다. 그러나 사회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피해가족들은 ‘암매장’이라 말하는 사람들에게 고소까지 당하는 등의 고초를 지금도 겪고 있다.

대구지하철 참사로 인해 만들어진 <2.18안전문화재단>은 4.16재단이 방문했을 때 “미안합니다”라고 말했다. 본인들이 겪고 있는 고통도 중요하지만, 다른 재난들에 뭔가 사회적 기여를 더 했어야 했는데 그게 안되고 있어 미안하다는 말이었다. 이날 포럼에도 참사로 어머니를 잃은 황순오 팀장이 참석해 의견을 나누고 발언했다

 

2.18안전문화재단 황순오 팀장
2.18안전문화재단 황순오 팀장

춘천봉사활동 산사태 참사

유가족이 “할 수 있는 만큼은 다한 것 같다”라 말하는

우리나라 유일의 진상규명 성공 사례

– 봉사활동을 갔던 인하대학교 학생 10명 등 13명 사망, 26명 부상

 

2011.07.27 춘천시 봉사활동 산사태 참사 발생 < 출처 : 춘천봉사활동인하대희생자기념사업회 >
2011.07.27 춘천시 봉사활동 산사태 참사 발생 < 출처 : 춘천봉사활동인하대희생자기념사업회 >

 

우리는 그래도 할 수 있는 한은 다 했다고 생각을 하는데, 확산이 안된 거.

그런 부분은 있는 것 같아요

– 춘천봉사활동 산사태참사 유가족 정OO 씨

 

새벽 시간 산사태가 발생해 펜션이 반파됐다. 그 펜션에는 상천 초등학교로 봉사활동을 갔던 인하대 발명동아리 학생들이 묵고 있었다. 이 참사는 다른 재난참사에 비해 비교적 언론 보도가 적은 탓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산사태는 천재지변으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사고였다는 인식이 많이 퍼졌으나, 사망사고는 2차 산사태에서 발생했다. 1차 산사태 이후 12분의 대피시간이 있었다는 점, 피해자가 모두 외지인이었고 주민들은 대피에 성공했다는 점, 더 심하게 파손된 옆 건물에서는 희생자가 없었던 점 등. 피해가족들은 ‘천재’가 아닌 ‘인재’라는 입장에서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춘천시는 피해가족의 진상규명 요구를 거부했고, 유가족들은 춘천 시내 전역에서 1인 시위와 선전전을 하는 한편으로 직접 진상규명을 시작했다. 피해학생의 친구, 부상자, 시민단체 등과 협력해 직접 조사한 결과 많은 원인들을 찾아냈다. 과거 산에 주둔했던 군부대가 철수하며 방공포 진지와 도로를 방치하며 산사태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을 밝혀냈고, 과거 산사태 피해가 있던 지점에 또다시 민박집 허가를 내준 점, 펜션 주인이 여러 채의 펜션을 운영하며 사고가 난 펜션에 거주하지 않아 위험 사실이 학생들에게 전달되지 않았던 점 등을 밝혀냈다.

 

< 출처 : 춘천봉사활동인하대희생자기념사업회 >
< 출처 : 춘천봉사활동인하대희생자기념사업회 >

 

원인을 찾아내는데 성공하면서 굉장히 많은 성과들을 이뤄냈다. 사고 지역에 안전센터를 설치하고, 방공포 진지를 원상 회복시키고, 학교 차원에서 진행되는 봉사활동은 학교에서 책임을 지도록 변경했다. 또한 춘천시에 피해자 지원 조례를 만들고, 강원도에는 전국 최초로 재난피해 지원조례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참사 1년이 지나 춘천시장의 막말에 500원 소송을 걸어 공개사과도 받아냈다.

 

제도적인 장치가 조례 등을 통해 마련되어야 향후에도 똑같은 사고가 나더라도 합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거죠.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은 그냥 잊히는 거죠

– 춘천봉사활동 산사태참사 유가족 최OO 씨

 

가족에 대한 사랑과 또 다른 아픔을 막기 위해 직접 만든 백서. '네 꿈을 기억할게
가족에 대한 사랑과 또 다른 아픔을 막기 위해 직접 만든 백서. ‘네 꿈을 기억할게

 

이들은 또 다른 사고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 가족들이 같은 아픔과 잘못을 최대한 겪지 않도록 피해자 관점의 백서를 직접 만들었다. 이러한 수많은 결실을 맺는데 성공한 피해가족들은 각자가 할 수 있는 조건에서 함께 열심히 싸웠다는 신뢰감이 형성됐다. 그래서 모이는 날이 되면 아이들 이야기도 같이 하고, 싸움 이야기도 같이 하는 게 가능하다고 했다. 유해정 연구원은 원인을 찾지 못한 다른 참사의 경우에는 피해 가족들이 모여도 그날에 대한 아픔을 서로 꺼내기 어려워하는 점을 안타까워했다.

현재는 싸움의 과정에서 생각과 상황이 달라 함께 하지 못했던 다른 피해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지금 돌아보면 이해가 가는. 그 당시 자신들의 판단에 대한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또한, 여전히 남은 아픔과 사회에서 유가족을 바라보는 시선의 어려움은 다른 참사와 동일하게 겪고 있다고 짚었다.

 

태안 사설 해병대캠프 참사

군기를 잡는다며 수영 금지 해역에 구명조끼도 없이 학생을 바다로.

무허가 업체, 무면허 조교, 비인가 영업, 부실 관리 등이 모여 발생한 참사

– 공주 사대부고 학생 5명 사망

 

2013.07.18 태안 사설 해병대캠프 참사 발생 < 출처 : SBS 뉴스 >
2013.07.18 태안 사설 해병대캠프 참사 발생 < 출처 : SBS 뉴스 >

억울하고 원통하고. 죽어서 아들 볼 낯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죽어라 쫓아다녀 봤는데 세상은 정말 꿈쩍도 안 하더라고요.

– 태안 사설 해병대캠프 참사 유가족 고OO 씨

 

물살이 너무 강력해 지역 주민들이 수영 금지 해역으로 정했던 구역에 불법 사설 해병대캠프 업체가 들어와 발생한 참사였다. 교관 경험이 전혀 없는 해병대 출신을 고용해 진행한 군기 교육으로 구명조끼도 입지 않고 대기하던 학생들이 바다에 휩쓸렸다. 교관들은 학생들이 바다에 빠진 상황에서도 구하지 않았다. 결국 학생들이 스스로 나서서 구조를 해 18명을 구했고, 5명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서둘러 신고를 해도 부족했을 해상 실종 상황에 캠프 관계자는 학생들이 몰래 숙소로 간 것 같다며 시간을 허비해버렸고, 교사들은 학생들을 살피지 않고 회식을 하고 있었다. 뒤늦게 도착한 해경은 늦은 시간이라 수색이 어렵다며 부모들에게 다음날 찾을 것을 권유했다. 혹시라도 살아있을 가능성에 희망을 걸 수밖에 없던 부모들은 항의했지만, 해경 서장은 자리를 피해버렸다.

 

‘엄중 처벌하겠다’ 교육부장관의 명예를 걸고 약속한다고 했고

저희는 그걸 믿었어요.

– 태안 사설 해병대캠프 참사 유가족 이OO 씨

 

이후 가족들이 직접 진상규명 작업을 하며 해당 해역에 불법 모래 채취로 인해 인위적인 갯골이 발생할 수 있었음을 확인하는 등의 성과가 있었지만, 검찰 수사는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교육부장관이 약속했던 책임자 처벌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관리감독 부실 책임도, 실질적 오너에 대한 처벌도, 보상에 대한 것들도 지켜지지 않았다. 그나마 ‘안전의 날’을 제정하는 것으로 많은 불만 속에 교육부와 협의를 했지만, 그마저도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자 교육부는 날짜를 바꾼다며 거의 막바지에 다다랐던 안건을 폐기했다.

약속들이 지켜지지 않자 협상 과정과 대응을 둘러싸고 유가족 간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유해정 연구원은 너무 슬픈 이야기라며, 다섯 명의 아이들을 함께 봉분해 기일에 유가족이 모일 수밖에 없음에도 서로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했다. 유가족의 잘못이 아니라 정부가 합의한 것을 지키지 않은 문제인데, 그 고통을 유가족이 감내해야 한다는 점을 짚었다. 한 유가족은 유가족의 분열을 조장하는 정부의 이간책을 지적했다. 이들은 극심한 고통과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우리 아이의 손을 꼭 잡고 맹세를 했습니다. 오늘 이 순간 이후로, 사고의 진실이 밝혀지고, 책임자들이 처벌이 되고. 그러한 날이 올 때까지는 절대로 울지 않겠다. 아들아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고, 아버지가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마라. 아버지는 이제 너에게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것이 이거 밖에 없을 것 같아서. 죽는 날까지… 절대 눈물 흘리지 않고 오늘 맹세한 거를 지킬께. 지키마”

 

 

유해정 연구원은 이 연구들을 기반으로 3가지 제안을 했다.

첫째는 ‘유가족’, ‘피해가족’을 돕고 지원하는 것 외에 이들이 뭉칠 수 있도록 만들자는 것. 이들이 다른 사고의 가족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마음을 우리 사회의 시스템에 적용하고, 고립되어 힘들게 싸우는 피해가족들이 함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만들자는 것이었다. 이미 시도가 되었다가 활동이 유지되지 않은 재난안전가족협의회 등이 그 예였다.

 

< 출처 : CBS 노컷뉴스 >
< 출처 : CBS 노컷뉴스 >

둘째는 피해자 관점에 근거한 기록과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것. 앞서 이규연 PD의 지적과 같이 아예 백서가 없거나, 의미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피해가족이 직접 만든 씨랜드 참사와 대구지하철 참사, 춘천 산사태 참사에서 만들거나 만들고 있는 백서는 의미가 있다는 점. 백서를 만들지 못한 대부분의 경우 각자의 기억으로만 남고, 사회적인 기억으로 남지 못한다는 점. 그래서 정부와 언론에 대한 불신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언론의 기록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셋째는 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한 사회적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 천안함 희생자를 고귀한 죽음이라 얘기하면서, 세월호 학생들을 ‘놀러 가다가’라며 비교하는 행태, 세월호 학생들은 학생이었는데 김용균 님은 ‘일용직’으로 비교하는 행태 등 죽음에 대한 비교와 고통에 대한 등급을 없애는 것이 필요하다며, 일상에서 추모할 수 있는 형태의 사회. 즐겁지만 무거운 얘기도 공존할 수 있는 사회가 필요하다며 발표를 마쳤다.

 

 

발제를 마친 뒤 여러 재난참사의 피해가족들과 세월호 민간잠수사, 활동가들이 의견을 나누며 미래를 그렸다.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마음과 고민을 쏟아주셨다. 분량의 문제상 피해가족들의 마무리 발언을 간략히 싣고, 4.16재단 1주년 포럼의 결과는 맨 아래 영상에 싣는다.

 

대구지하철 참사로 어머니를 잃은 2.18안전문화재단 황순오 팀장
대구지하철 참사로 어머니를 잃은 2.18안전문화재단 황순오 팀장

 

“이 참사(대구지하철 참사)를 기억해주시고, 또 유해정 연구원님처럼 연구해주시는 분도 계시고, 저희를 기억해주고 계신다카는게. 이번 토론을 통해서 저는. 좀 많은 치유가 됐다는. 그런 생각이 좀 들었습니다. 우리가 꼭 기억을 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함께 했고요.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참사로 가족을 잃은 민동일 님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참사로 가족을 잃은 민동일 님

 

“어느 참사나 마찬가지지만, 어느 것 하나 밝혀진 것도 없고. 어느 누가 하나 처벌받은 것도 없고. 계속 진행형인데요. 저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은. 1년 반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밤낮없이 싸웠습니다만은 참… 이기기가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내며. 저는 혼자라는 생각을 요새 굉장히 많이 했습니다. 근데 오늘 이 자리에 와서 이렇게 가슴 아픈 분들을 많이 뵙고. 또 하시는 그런 얘기 듣고 그러니까. 아, 저 혼자가 아니구나. 이렇게 많은 분들이 옆에 계셔서. 힘이 됩니다. 앞으로 더 힘내서. 열심히 싸우도록 하겠습니다”

 

스텔라데이지호에서 동생을 찾고 계신 가족대책위 허영주 대표
스텔라데이지호에서 동생을 찾고 계신 가족대책위 허영주 대표

 

“제 남동생 허재웅은 스텔라데이지의 2등 항해사였습니다. 아직까지 실종 상태입니다. 오늘 여기 와서 많은 분들 만나게 되니까 굉장히 많이 아쉽습니다. 만약에 제가 이런 참사를 겪기 전에. 몇 년 전에 이런 모임이 활성화가 되어 있었고, 그래서 민간 차원의 대책이 있었더라면. 저희 스텔라데이지호 사건이 났을 때 빨리 사건을 종결키시기에 급급했던 정부와 기업의 만행에. 저희가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그런 아쉬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국민이 아파했던. 이 세월호 참사로 인해서 이런 민간의 모임이 이제 시작이 된 것이고요. 이것이 그냥 단순하게 시작만 하고 흐지부지되다가 또다시 참사가 났을 때 어떤 역할도 할 수 없는. 그런 무용지물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이, 기대가 좀 큽니다. 저도 할 수 있는 역할. 제가 어느 정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희가 경험한 거 되살려서.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피해가족에게 가족을 돌려주기 위해 힘써오신 민간잠수사 분들
피해가족에게 가족을 돌려주기 위해 힘써오신 민간잠수사 분들

 

“저는 세월호 구조 현장에 있었고, 성수대교 붕괴 때도. 93년도 서해 페리호 사건 때도… 그 현장에서 잠수를 했었습니다. 그때도 해경과 정부는. 그때도 그랬어요. 해경은 그때도 구조를 못했는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철저한 조사를 해서 재발하지 않게 하겠다고 그때 그랬는데. 20년이 훨씬 지났는데 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잖아요.

근데 세월호 때 하고 서해 페리호 때 하고의 차이점이 뭐냐면. 서해 페리호 때는 어떻게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긴박한 상황에서 침몰을 하게 됐어요. 근데 세월호 때는 그 손쓸 시간이 1시간 이상 있었잖아요. 그것만 생각하면 같은 잠수사들도.. 참 이해 못 할 부분이 많은데요. 선원들이나 해경들의 초기 대응에 대해서. 저희 잠수사들은 또다시 시신 수습하는 잠수는 이제 하기 싫거든요. 구조하는 잠수는 하고 싶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진상규명을 철저하게 좀 했으면 좋겠고요. 123정장 한 명 처벌받고 말았는데. 제대로 처벌도 받고, 제대로 된 조사와 수사가 좀 될 수 있도록. 저희 잠수사들도 끝까지 함께 한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 출처 >

– 218안전문화재단. 2016. 2016활동백서.

– 김명희. 2019. “피해자에게 추모의 의미와 사회적 성찰: 피해자의 권리에 입각한 회복과 치유, 소통의 가능성”.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2019년 제1회사회적참사 피해지원포럼 자료집 31-61.

– 김승섭 외. 2016. “단원고 학생 생존자 및 가족 대상 실태조사 연구”.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연구용역보고서.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 김철민‧최충익. 2015. “대형 재난사고 이슈의 생존주기 분석”. 『 서울도시연구』 14(4). 147-162.

– 메모리[人]서울프로젝트 기억수집가. 2016. 『1995년 서울, 삼풍』. 동아시아.

– 유해정. 2018. “재난정치와 애도: 남영호, 삼풍백화점, 세월호 참사의 마주함을 중심으로”. 성공회대학교 일반대학원 박사학위논문.

– 이재승. 2016. “세월호 참사와 피해자의 인권”. 『민주법학』60. 145-179.

– 이호영. 2017. “세월호 특조위 활동과 박근혜 정부의 방해”. 『민주법학』63. 201-245쪽.

– 장덕진 외 지음. 2015. 『세월호가 우리에게 묻다』. 한울.

– 정명중. 2010. “인문(人文)과 치유(治癒), 그 접합을 위한 제언 : ‘사회’ 없는 사회에서 ‘사회’ 만들기”. 『인간연구』 18.

< 삽입 컨텐츠 출처 >

– wikipidia

– 춘천봉사활동인하대희생자기념사업회

– CBS 팟캐스트 ‘세상끝의 사랑’

– SBS 뉴스, CBS 노컷뉴스 등 언론보도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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