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진 님] – 함께 추모하고 기억하는 건, 아름답고 힘이 나는 일이에요

함께 추모하고 기억하는 건, 아름답고 힘이 나는 일이에요

<‘재난 현장 속 자원봉사자’를 찾습니다> 강효진 님

2018년 3월 30일 오후 5시, 고잔동 행정복지지원센터 옥상에 주민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의 손엔 불판과 버너, 고기와 묵은지, 다과와 막걸리가 한 아름 들려있었다. 누군가는 스스럼없이, 누군가는 쭈뼛쭈뼛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불판 위로 지글지글 익는 고기를 저녁 삼아 삼삼오오 모여 앉은 50여 명의 주민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민자치위원회 간사로 이 자리를 함께 준비한 강효진 씨는 말없이 불판만 쳐다보고 있었다. 평소 붙임성과 친화력이라면 자신 있는 그였지만 이날만큼은 말 한마디, 표정 하나 너무나 조심스러웠다.

구어진 고기를 자르던 그때, 그의 가위질이 서툴러 보였는지 마주 앉은 남성이 “그것도 못해요?”라며 농을 던졌다. 그 순간 효진 씨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다른 주민들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다. 농담을 건넨 주민은 세월호 참사로 자녀를 잃은 피해 가족이었다. 그가 먼저 친근하게 말을 걸자 테이블을 둘러싼 어색함과 긴장감이 누그러졌다. 이내 어디에 살았고 살고 있는지, 거기에는 뭐가 예쁜지, 사라져 아쉬운 건 무엇인지 소소한 동네 이야기에 둘러앉은 주민들 사이에 이야기꽃이 폈다. 세월호 가족들이 집어준 고기 한점씩을 입에 넣으며 또래 아이들과 옥상을 뛰어다니는 효진 씨의 두 아이들 역시 행복해 보였다.

고잔동에 터 잡고 사는 효진 씨에게 세월호 참사는 가까웠지만, 세월호 가족들은 너무나 멀고 어려운 존재였다. 하지만 세월호 가족들과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는 세월호 가족에 대한 선입견을 한 꺼풀 걷어냈다. ‘정말 내 옆집에 사는 이웃이구나. 너무 조심하는 게 오히려 피해 가족들에게 큰 상처가 되겠구나.’ 좀 더 편하게 대해주면 좋겠다는 세월호 가족의 말에 그는 생각했다. ‘이분들이 외롭지 않게 주민들과 만나는 자리를 좀 더 자주 만들어야겠다.’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함께 토닥이며 세월호 가족과 주민들이 이웃의 정을 나누기 위해 고잔동 주민자치위원회가 마련한 제4회 “밥 한 끼 합시다”의 저녁이 효진 씨의 다짐과 함께 무르익었다.

웃음소리가 사라진 고잔동

경북 안동에 살던 효진 씨는 안산으로 발령 난 남편을 따라 2007년 고잔동으로 이주했다. 아무 연고가 없는 곳에서 그는 두 아이를 낳고 키웠다. 단 몇 분 만이라도 누가 아이들을 봐주면 좋겠다 싶은 시절이었다. 그런 그에게 고잔동은 아이 키우기 좋은, 정이 넘치는 동네였다. 낮은 빌라들이 처마를 이룬 동네 어귀엔 어르신들이 평상에 앉아 늘 이웃과 꼬마들의 안부를 물었다. 맞벌이 부모를 대신해 위 아랫집 아이들을 챙기고, 옆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정도로 대문을 열고 사는 이웃 역시 많았다.

하지만 2014년 4월 16일 이후 고잔동의 풍경이 달라졌다. 관광버스가 여러 대씩 오가며 팽목과 진도로 가족들을 실어 나르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던 동네가 흐느낌과 침묵에 휩싸였다. “저희 집이 단원고 통학로라 아침과 오후면 항상 등하교 하는 학생들 소리로 시끌벅적했는데 일순간에 그 웃음소리가 사라졌어요. 적막하고, 고요하고, 어두웠어요. 저는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먹먹하고 막막해요.”

이웃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거나 눈을 마주치는 일을 피했다. 희생된 아이의 집이 윗집일 수도, 옆집일 수도 있었던 상황에서 혹여 동네 사람들이 큰 소리를 내거나 웃는 모습에 세월호 가족들이 마음을 다칠까 봐 모두 조심하는 분위기였다. 마을을 산책하는 일도, 마을 어귀를 지키는 어르신들도 한동안 사라졌다. 그 시간을 관통하며 그는 주민자치위원회 간사로 일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간사’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도 몰랐다. 아이를 키우며 동네 사람들과 소통하며 일할 수 있는 자리라는 제안에 덥석 하겠다, 손을 들었다.

간사로서 함께 준비하고 참여한 일들이 주민들 사이를 이음과 동시에 마을의 공동체 회복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2018년 3월 시작된 ‘밥 한 끼 합시다’는 그가 처음으로 유가족과 대면한 자리였고, 그날 이후 그는 한 발짝 한 발짝 세월호 가족들 곁으로 다가가고자 했다.

몸을 부대끼고 함께하며 허물어뜨린 장벽

이후 그는 고잔동 소생길 정원 만들기를 통해 세월호 가족들과 다시 만났다. 고잔동 빌라와 단원중학교까지 이어지는 소생길은 봄에는 꽃들이, 여름엔 녹음이, 가을엔 낙엽이 아름다운 길이었지만 사람의 발길이 머무는 곳은 아니었다.

야트막한 야산에 나무와 풀들이 제멋대로 자라나 인도를 침범했고, 겨우내 쌓인 낙엽과 행인들이 버린 쓰레기가 모이면서 어둡고 습해져 버린 공간이기도 했다. 그런 소생길이 2017년 경기정원문화박람회를 계기로 재정비되자 2018년부터는 주민들과 유가족들이 소생길에서 만나 함께 쓰레기를 줍고, 잡초를 뽑고, 땅을 고르며 정원을 만들게 되었다.

“흙을 만지고 꽃을 심고 물을 주다 엉덩이가 부딪히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을 터트리곤 했어요. 세월호 가족들과 이웃들이 이제 함께 웃는구나, 웃어도 되는구나 싶으니 감격스럽더라고요.”

달라진 길목만큼이나 마음의 장벽도 허물어졌다. 함께 마을 정원을 가꾸는 주민들이 많아지면서 이들의 모임엔 2촌도, 3촌도 아닌 ‘일촌가드너’라는 이름이 붙었다. 아주 가까운 이웃 정원사라는 의미였다. 소생길은 주민의 휴식과 안식을 주는 공간으로, 문화예술공연도 열리는, 편안하고 즐길 거리가 있는 정원으로 탈바꿈됐다. 소생길에서 팜파티가 열릴 때면 꼬마 정원사들의 손엔 주민들이 만든 떡볶이와 세월호 가족들이 준비해온 음료수로 양손 무거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는 ‘기억꽃집’에도 참여했다. 기억꽃집은 매년 4월, 세월호참사 추모기간을 맞아 단원고 삼거리에서 화분을 나누는 행사로 슬로건인 ‘같이 가자’를 내걸고 꽃망울을 터트린 수선화와 제라늄을 이웃들에게 건네는 프로젝트를 말한다. 무언가를 나누다 보면, 함께 하는 추모와 기억은 슬픔을 넘어 희망을 만든다는 걸 효진 씨는 깨닫게 되었다고.

“초창기만 하더라도 주민들이 화분을 집으로 들고 가셨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화분을 소생길에 놓아두거나 단원고 담벼락에 나란히 세워두고 가시더라고요. 한 명 한 명이 놓고 간 화분으로 거리가 노랗고 빨갛게 물든 걸 보면 함께 추모하고 기억하는 건, 분명 아름답고 힘나는 일이구나 싶어 마음도 즐겁고 뿌듯해요.”

최근 효진 씨는 고잔동 마을여행 프로그램에 푹 빠져 있다. 기획부터 마을여행 코스 구성, 해설과 연극까지 고잔동 주민들과 세월호 가족들이 모두 함께 머리를 맞대 성찰형과 피크닉형 마을여행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성찰형은 단원고부터 화랑유원지 내 생명안전공원 부지까지 이어지는 코스로, 기획단이 만들고 시연하는 ‘학교 가는 길 연극’을 보면서 길을 걷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피크닉형은 안산 주민들을 위한 코스로, 주민들 사이의 소통과 유대를 도모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말한다. 각각 1년에 4번씩 운영되는데, 참여자들의 만족도가 높아 협동조합을 만들어 지속해 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물리적 복구에서 공동체 회복으로

지난 5년, 효진 씨는 세월호참사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가족들 곁에 서는 일들에 함께하면서 사적인 모임도 많아지고 관계도 풍성해졌다고 한다. 스스로 역량이 자라는 것도 경험했다. 모두 효진 씨가 마음을 열고 바지런히 몸을 움직여 이룬 결실이지만, 세월호 가족들이 먼저 품을 내어 이웃들 곁으로 다가오면서 생긴 변화이기도 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세월호 가족분들, 특히 4.16공방 어머님들이 되게 노력을 많이 하세요. 생명안전공원을 반대하는 주민들도 적지 않은데, 좋지 않은 소리 들으면서도 먼저 다가와 주시고, 바느질을 하면서 궁금증을 푸는 시간도 만들어주시고…. 정말 존경스럽고 멋진 언니들이에요.”

한편 그가 참여하고 기획한 다양한 프로그램은 정부와 지자체에서 예산을 지원하고, 주민들의 적극적 참여와 자율성을 보장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는 피해지역의 공동체 회복을 위한 법과 제도가 처음으로 마련된 재난으로 2015년 제정된 <416세월호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은 피해자 및 안산시의 심리적 안정과 공동체회복을 위한 프로그램의 개발 및 시행, 그리고 관련한 지원 등을 명시해놓고 있다.

이 법이 선례가 돼 2020년 <포항지진의 진상조사 및 피해구제 등을 위한 특별법>에서도 공동체 회복 관련 조항이 명문화됐다. 하지만 두 법 모두 개별 재난에만 적용되는 특별법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다른 재난들은 공동체의 회복이 아닌 단기적이고 물리적인 복구에만 초점이 맞춰지고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

효진 씨에게 세월호 가족들과 동행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잘못된 언론보도와 불투명한 행정이라는 답이 되돌아온다.

“세월호 가족들과 주민들이 조금씩 친해지다가도 언론에서 세월호와 관련한 잘못된 보도 및 검증 안 된 뉴스가 뜨면 동네 분위기가 급격히 얼어붙어요. 가족들은 잘못한 게 없는데, 오히려 자기 주머니를 털어 활동하는 데도 여전히 오해하고 수군대는 분들이 많아요. 그러면 가족분들이 움츠러드는 거예요.

너무 속이 상해서 “언니 숨지마, 어머니는 죄인이 아니에요.”라고 말해도, 아니야 주민들은 그런 마음이 아닐 거야, 하며 몸을 더 낮추세요. 관계가 예전처럼 돌아가려면 또다시 몇 개월이 걸리는데, 그게 일상처럼 반복돼왔어요. 제발 언론이 제대로 알고 기사를 썼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행정도 오해가 없도록 주민들에게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전달했으면 좋겠어요.”

효진 씨는 열정과 희망이 마을을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킬 거라 믿는다. 열정을 쏟은 만큼 희망이 보이고, 희망이 있으면 세상이 더 밝아진다고 믿는다. 이는 효진 씨가 지난 몇 년 동안 마을 활동을 하며 걷어 올린 지혜이기도 하다. 그의 열정이 안산에 깊이 뿌리내려 피해자와 주민들이 공존하는 도시, 생명을 존중하는 안전사회를 만드는 희망의 싹을 틔우기를 바란다.

  •  참고문헌

안산시·(사)416가족협의회. <안산시 공동체 회복프로그램 활동사항 및 성과기록>. 2018. 83쪽.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재난 피해자 및 지역사회 회복과 역량강화 방안 연구>. 2022.

주관 – 4·16재단 후원 –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담당 – 모금홍보팀 유진솔 글 – 유해정 (성공회대 사회과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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