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극 님] – 사람 살리는 고귀한 손이 되어보세요

사람 살리는 고귀한 손이 되어보세요.

<‘재난 현장 속 자원봉사자’를 찾습니다> 고재극 님

「이 폐허를 응시하라」. 리베카 솔닛은 북아메리카에서 발생한 다섯 건의 대형 재난을 깊이 연구한 뒤 이런 책을 썼다. 폐허가 된 삶과 사회를 오랫동안 바라본 솔닛은 거기서 무얼 발견했을까.

재난이 할퀸 곳은 종종 ‘지옥’에 비유된다. 지옥은 우리에게 고통과 절망이 소용돌이치는 곳으로 상상된다. 그런데 솔닛은 그 지옥 같은 재난 상황에서 회복력, 동정심, 용기, 연대의식 같은 인간의 깊은 속성이 두드러지게 발현된다는 점을 발견했다.

인간은 고통과 절망을 마주할 때, 회복과 희망을 피워낸다. 재난 현장에는 언제나 부족한 시스템의 틈새를 메우며 생명을 구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그러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 사회 곳곳의 재난 현장을 조명하고자 한다.

고재극(60) 씨는 높은 산과 깊은 물에서 사고를 당한 사람, 갑자기 심장이 멈춰 쓰러진 사람을 구조하는 일의 전문가다. 1998년 ‘시민구조봉사단’을 창단해 지금껏 활동하고 있다. 고 씨는 생명을 살리는 일을 자신의 소명으로 여기고 있다.

지난해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을 때도 그는 뉴스를 보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뉴스를 볼 때마다 사망자 수가 계속 늘어나니까…. 가서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니 마음이 너무 아팠죠.”

60명의 익사자를 가족 품으로

‘시민구조봉사단’은 특전사 출신인 고 씨가 후배들과 함께 꾸린 곳으로 특히 수중 인명 구조활동에 전문성이 있다. 이렇다 보니 지역 경찰이나 소방의 요청으로 지원에 나설 때가 많다. 대개는 익수자 구조보다 익사자 수습 활동이다. 고 씨는 지금껏 60구의 시신을 수습하여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냈다.

처음 이 일을 접하게 된 건 군대에서였다. 물에 빠져 죽은, 낯선 이를 안아 올리는 일은 정말이고 무섭게만 느껴졌다. 그러한 일도 60번을 거듭하면 조금은 익숙한 일이 되는 걸까?

“안 힘들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특히 여름철 물속에 오래 방치된 시신은 부패가 심해지는데, 보기 괴로워요. 유가족들이 보면 평생 지워지지 않을 트라우마가 되고요. 그래서 그분들이 보지 못하게끔 물속에서부터 시신을 ‘사체포’에 넣어 모시고 나와요.

사고로 돌아가신 분이 대부분이지만 스스로 목숨을 던지시는 분도 분명 계시거든요. 아무래도 그런 작업에 나가면 마음이 더 힘들 수밖에 없죠. 여기 대구 강정고령보에서만 1년에 3명 정도가 투신합니다. 그런 선택을 안 하게끔 우리 사회가 도와줘야 하는데….”

한국 사회가 절벽 앞에 선 사람에게 손을 내밀기보다는 등을 떠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고재극 씨는 안타깝기만 하다.

훌훌 털어내고 다시 시작

그는 과거 상심한 유가족들에게 의심과 비난의 말을 들은 적 있다. 돈을 노리고 시신 수습을 지연시킨다는 말은 사명감으로 일하는 고 씨의 가슴에 큰 상처를 냈다. 그러나 고 씨는 봉사로써 죽은 이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 가족 잃은 이의 아픔을 이해하기에 그는 구조활동을 계속하기로 한 번 더 다짐했다.

“봉사활동을 시작했을 당시만 해도 대구시 소방본부에 잠수 가능한 인력이 별로 없었어요. 지금은 소방 구조 인력이 기본적으로 잠수 교육을 모두 이수 받다 보니 전에 비해 출동은 확실히 덜하죠. 그럼에도 아직도 부족해요. 현장에 인력이 충분치 않거든요. 아무래도 우리가 경험도 많고 배도 여러 대 있고 하니까 꾸준히 의뢰가 들어옵니다. 그러면 그때마다 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언제든 가는 거죠.”

목숨만큼 중요한 마음의 상처

고재극 씨의 활동은 구조 및 수습에서 점차 재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지원하는 일로 확장됐다. 시민구조봉사단은 재난 현장 구호활동과 재난 예방 활동을 하는 ‘희망브리지’ 봉사단의 대구지부로 활동한다.

※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는 1961년 설립된 민간 구호단체를 말한다.

울진과 밀양의 산불, 영덕과 강구의 홍수 등 최근 한국 사회에서 큰 피해로 기록된 재난 현장에는 늘 시민구조봉사단이 함께했다.

“수해 현장에서는 물품 지원도 중요하지만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 또한 중요해요. 특히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면 한 시간 이상 천천히 이야기를 들어드리곤 해요. 마음에 진 응어리를 스스로 꺼내실 수 있도록요. 복구를 끝내고 돌아와서도 그분들께 문자를 드리며 계속 대화를 이어나가려 하죠.”

인명구조와 재해구호 활동을 20년 넘게 지속하며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을 숱하게 걸은 고재극 씨는 목숨을 구해내는 일만큼이나 재난 이후 사람들의 심적 회복을 지원하는 일 역시 중요함을 몸소 깨달았다. 상처 입은 한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야 비로소 공동체 회복 또한 가능하다는 걸 그는 여러 번 확인했다.

“수해복구를 위해서는 수해를 입은 집이 어디고, 어느 정도로 피해를 입었는지 재빠르게 파악해야 하잖아요. 문제는 수해가 나면 전선이 끊기고, 신고 전화가 폭발하는 등 평소보다 공무원들의 상황 파악이 느려지죠. 그러다 보니 문제가 생기면 공무원들이 엄청나게 욕을 먹게 되고요. 특히 119 소방대원들이 가장 힘들죠. 내 모가지까지 물이 찼는데 전화 안 받는다고 막 화를 내는 분들이 있어요. 그럴 때마다 주민들 옆에 앉아 상황 설명도 드리고 기분도 풀어드리고 그러는 거죠.”

심폐소생술, 내 주변을 위한 일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다 보니 고재극 씨는 시민들을 상대로 응급상황 시 대처법을 교육하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특히 심폐소생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상황에 따라 다르긴 하다만 보통 사람이 팔, 다리를 다쳤다고 해서 바로 생명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에요. 문제는 심장마비로 쓰러지면 당장 생명이 위험하다는 거죠. 보통 그렇게 누군가가 갑작스레 쓰러졌을 때, 옆에 있는 사람이 친구나 가족일 때가 많아요.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꼭 미리 심폐소생술을 배워두시라고 강조 드려요.”

심폐소생술이 필요할 일은 생각보다 많다.

“대구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에서 심폐소생술로 여성 참가자 두 명을 살려낸 적이 있어요. 또, 천월산에 해맞이 행사할 때에는 중학생도 살려냈고. 여태껏 긴급한 상황에서 18명에게 심폐소생술을 했는데, 그중 8명을 살려냈어요.”

심폐소생술은 방법이 여러 가지가 아니에요. 딱 하나뿐이죠. 주어진 방법을 잘 이해하고 몸이 외우도록 반복하면 되는 거예요. 손 없다고 못 하는 게 절대 아니에요. 손이 없으면 팔꿈치 같은 부위로 누르면 돼요. 쓰러진 사람 옆에서 뭐라도 하면 살아날 확률이 그만큼 올라가는 거잖아요. 단 1명의 목숨이라도 살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하니… 사실 심폐소생술이란 게, 오롯이 주변을 돕기 위한 거예요. 절대 본인 스스로가 자신의 몸에는 못하잖아요.”

안전을 지키는 사람들의 안전은

시민구조봉사단은 사실 어떠한 지원 없이 오롯이 단원들의 회비로 운영되는 조직이다. 오프라인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회원은 70명가량. 밴드나 카페 등 온라인상에서 소식을 주고받는 회원은 무려 1,300여 명에 이른다. 고재극 씨는 단장으로서 수많은 인원을 이끄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활동하면서 뜻하지 않은 사고가 생길 수 있잖아요. 자원봉사자를 위한 보험이 생겼지만, 그건 다쳤을 때 딱 병원비만 받을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인명구조 활동이 있을 때는 제 사비를 들여 우리 회원들에게 별도의 1일 보험을 들어줍니다. 사고가 났을 때 보상금이 나올 수 있는 보험인 거죠.”

순전히 자원활동이기에 개인 돈을 쓸 일이 참 많다. 20년 넘게 활동하다 보니 작은 부담이 쌓여 꽤 묵직하게 느껴질 때가 빈번하다고. 그는 인명구조에 사용해온 고가의 장비들이 노후화되어 교체시기가 다가올 때마다 부담스럽다.

시민들의 선의로 이루어지는 활동이 꺾이지 않을, 최소한의 토대는 갖춰져야 하지 않을까. 우리 사회가 너무 고민 없이 이들을 방관한 것은 아닐지.

흔들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찌 됐건 고 씨의 의지는 확고하다. “나로 인해 한 사람이라도 삶의 희망이나 위로를 얻는다면, 계속해야죠.”

봉사의 의미와 가치를 전파하기 위해 시민들에게 심폐소생술을 교육하고 나면, 그가 늘 당부하는 말이 있다.

“참가자들에게 자기 손을 보라고 해요. 어떠냐고 물어보면 ‘예쁘다’, ‘잘생겼다’ 가지각색 대답들이 나와요. 그러면 저는 이런 말을 해드리죠. 다 좋다. 그런데 우리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고귀한 손도 한번 되어봅시다.”

인터뷰 말미 주름진 그의 손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꼭 그와 같은 류의 손을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랐다.

주관 – 4·16재단 / 후원 – 사회복지공동모금회 / 담당 – 모금홍보팀 유진솔 / 글 – 박희정 (인권기록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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