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우 님] – 공감과 사회적 애도가 있을 때, 비로소 치유됩니다

공감과 사회적 애도가 있을 때, 비로소 치유됩니다.

<‘재난 현장 속 자원봉사자’를 찾습니다> 백종우 님

“마음이 너무 아파서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하면서 수많은 재난 피해자가 발생했다. 백종우 교수(경희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는 15년 넘게 마음을 다친 이들을 살피는 의사로 일해 왔지만 재난 피해자를 어떻게 지원해야할지는 막막했다고 한다. 당시 어려움을 느낀 건 그뿐 만이 아니었다. 그가 속한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동료들 역시 어린 학생들의 죽음에 큰 무력감과 책임감을 느꼈지만 재난 정신건강 대응과 관련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때마침 정부가 건국이래 최초로 ‘범부처 심리지원단’과 ‘통합재난심리지원단’을 구성하며 지원 체계를 갖췄다. 하지만 정부 역시 재난의 충격과 고통을 다뤄본 경험이 없었다. 현장에서 활용 가능한 가이드라인이나 매뉴얼도 전무했고, 관련한 전문가 역시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사실상 제로 상태에서 재난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민관의 개입이 시작된 것이었다.

막막함을 밝힌 연대의식

그가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동료들과 가장 먼저 한 일은 적합한 상담이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한 이들을 분류하는 것이었다. 유가족, 생존자, 구조·수습·복구 조력자, 그리고 안산 시민들로 심리지원대상이 구분됐다. 간호, 복지, 상담 등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들이 상담을 돕기 위해 모여들었는데, 그들과 함께 현장에 가기 전 모두 동일한 교육을 받는 것을 원칙으로 정하였다.

참사 직후 첫 주말에 첫 번째 교육이 실시됐다. 그 사이 그가 속해 있던 대한신경정신의학회와 대한정신건강재단은 빠르게 재난정신건강위원회(위원장 채정호)를 구성했고, 그는 위원회 사무국장을 맡았다. 그는 함께 일할 위원들을 조직했는데 수십 명의 전문의가 짧은 시간 안에 자발적으로 지원했다.

“솔직히 얘기했죠. 우리가 아는 게 너무 없다. 재난 피해자 정신건강 지원에 관한 매뉴얼조차 없는데 우선 그것부터라도 찾자. 미국 자료 찾고, 일본 자료 찾고…. 번역을 시작했는데 누군가 새벽 2시까지 하고 자면, 그다음 사람이 이어서 업데이트를 해놓고, 아침에 보면 번역이 다 되어 있는 거예요. 성명서를 쓸 때도 서로 고쳐주고, 이어 쓰다 보니 다음 일로 빨리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심리상담을 도와줄 자원봉사자를 모집하자 첫 주에만 100여 명이 지원한 데 이어, 보름 만에 250여 명의 전문의가 모였다.

“공공병원, 개인병원 할 것 없이 자원을 해주었는데 그때는 다들 뭐라도 시켜달라는 입장이었습니다. 우리가 유가족 상담이 필요하다고 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가겠다고 그러고 직접 안산에 가서 상담 가능한 장소도 알아보고 세팅도 다 해놓고…. 제일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분들이 소아청소년 정신과 선생님들이었는데 그중 한 분은 부인이 말리는 데도 병원 문을 닫고 오셨어요.”

진료실 문을 닫고 안산으로 찾아온 전문의들은 유가족과 생존자, 안산시민 등 수많은 사람들의 심리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상담을 시작했다.

또 다른 ‘김관홍’을 막기 위해

매우 짧은 시간 동안 동시다발적으로 일이 진행됐다. 많은 이들의 노고에 힘입어 점차 심리지원이 체계화되고 안정화되었지만, 시행착오도 고민도 많았다.

“참사 초기에는 진료 경험이 많은 분들도 피해자들에게 어떻게 말해줘야 할지 몰라 실수를 연발하곤 했습니다. 부끄럽지만 그게 당시의 우리 수준이었어요. 또 모든 게 처음이라 고민도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디서 어떻게 지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는 거예요. 우선 장례식장에 가서 인사부터 드리고, 이후에 찾아뵙는 방식을 고안해 보았습니다.

지금도 물론 그렇겠지만, 당시 유가족분들의 중요 관심사는 진상규명이었어요. 가족분들이 하나같이 광화문과 청와대 앞에 가 계시니 어떤 방식으로 심리지원을 드려야 할지 판단하는 일 역시 숙제처럼 느껴졌습니다.”

재난 구조·수습·복구에 참여한 조력자들의 정신건강을 제때, 제대로 살피지 못한 일은 여전히 아픈 기억이다.

“매일 재난 응급 상황을 맞닥트리는 훈련된 소방관도 감당하기 어렵고, 제일 잊기 힘든 게 아이들의 죽음이라고 하더군요. 민간 잠수사분들은 트라우마에 관한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계속 잠수를 하셨잖아요? 고통이 매우 크셨을 텐데 우리가 그분들을 미처 돌보지 못했습니다.”

김관홍 잠수사의 죽음, 유족지원 업무를 담당하던 경찰관의 자살 등 조력자들의 정신건강을 돌보는 일 역시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백종우 교수는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참혹한 재난 현장의 구조·수습·복구에 참여하고, 피해자를 돕는 일에는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트라우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훈련, 그리고 서로의 마음 건강을 돌봐줄 믿음직한 동료의 존재는 스스로와 서로를 지키기 위한 방책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세월호 참사 이후 자원봉사자를 포함한 조력자들에 대한 교육과 이들의 정신건강 상태를 모니터하는 관리 체계가 만들어졌어요.”

민간의 협력과 지원은 재난 정신건강의 최전선

세월호참사의 경험은 학문적 연대와 결집을 제공했다. 국내 심리지원체계 수립을 위해 만난 외국의 전문가들은 세월호참사의 고통에 공감하고 보탬이 되고 싶다며 아낌없이 경험과 자료를 나눠주었다. 또한 참사 당시 심리지원에 참여한 이들을 중심으로 2015년 11월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가 창립됐다. 학회에는 그를 포함한 정신과 의사뿐 아니라 사회복지사, 심리학자, 간호사 등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들이 모여 있다. 그리고 지금도 모여들고 있다.

“참사 당시 슬픔에 공감하고 기여하며 사회적인 의미를 찾으려고 했던 후배들이 지금도 이 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태원 참사 이후에는 30대 중후반의 젊은 전문가들이 30명이나 새롭게 학회에 들어와 활동하고 있고요.”

재난에 따른 정신적·심리적 충격을 보다 잘 이해하고 예방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논의와 연구, 경험의 나눔이 중요하다. 세월호참사는 물론 코로나19 등을 통해 확인한 바와 같이 재난과 같은 비상 상황에서는 전문적인 민간의료인들의 협력과 지원이 필수다. 시민들의 일상은 이들의 도움이 없다면 큰 위기에 처하곤 한다.

“재난 상황에서 국립트라우마센터와 정신건강복지센터가 국민들의 정신건강을 지키는 역할을 합니다. 훈련된 전문가니까요. 하지만 평소에는 재난 정신건강에 관한 수요가 없다 보니 문제가 발생합니다. 재난 직후에만 환자가 폭증하다 보니 공적영역이 이를 감당하기 쉽지 않은 거죠.

따라서 훈련된 민간 전문가들이 평소에는 본업을 하다가 재난 시 든든히 백업을 해줘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제때 적절한 대응을 수행할 수 있는 거죠. 이번 이태원 참사 때 상담전화가 폭주하자 간호사분들이 상담전화을 받아주시고, 저희가 돌아가면서 분향소를 맡았던 것도 이러한 맥락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사회적 재난의 처방전은 공감과 사회적 애도

그는 천안함 참사, 세월호참사, 코로나19, 이태원 참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회재난 피해자들을 만나며 “곁에 사람이 있으면 피해자들은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제가 마음 다치신 분들을 약 25년간 만나왔습니다. 그중엔 당연히 재난에 따른 외상 후 스트레스 혹은 우울증 진단을 받은 분들이 계셨고요. 재난 현장을 지원하며 더욱 선명해진 건 사회재난은 개인적 접근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사회적 애도가 굉장히 중요해요.

유가족들은 사랑했던 사람의 억울한 죽음이 잊히는 것에 대한 큰 괴로움이 있습니다. 그러던 중 주위를 살펴보니 사람들이 찾아와요. 시민들이 분향소에 와 참배를 하고, 밥을 나눠주고, 어떤 분은 예배를 보고. 유가족들은 이에 굉장한 치유를 받을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인 죽음에 관심 갖고 함께 슬퍼해 주기 때문이죠.

또 재난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져요. ‘이 세상이 안전한가?’, ‘인간을 믿을 수 있나?’ 특히 인적재난으로 생명을 잃는 경우가 많은 나라에서는 이 재난이, 죽음이 누구의 책임인가를 질문하게 됩니다. 그때 현장의 자원봉사자, 그리고 전문가들이 문제를 해결하려 애쓰는 모습을 보면 유가족들은 자연스레 안전과 사람에 대한 의구심을 내려놓게 됩니다. 결국 우리가 유가족들한테 줄 수 있는 진정한 위로는 참사를 기억하며 다시는 동일한 재난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책임을 지겠다는 사회적 약속일 겁니다. ”

백 교수는 우리 사회가 세월호참사를 통해 분명 많은 것을 배웠다 생각했는데, 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와 일부 사람들의 혐오적 언사를 보며 ‘아직도 갈 길이 멀구나’ 싶었다고 한다.

현재 이태원 유가족들이 제대로 된 분향소도, 유가족 대기실도 없이 언제 철거될지 모르는 텐트를 전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나마 다행인 건 피해자들이 서로의 곁이 되어주고 있다는 점이지 않냐며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태원 참사 이후 참 감동스러웠던 게, 세월호 유가족들이 보여준 모습이었어요. 이분들이 이태원 유가족들에게 먼저 다가가 위로를 건네고, 49재 때는 합창도 해주셨잖아요. 그건 수십 년 경력의 정신과 전문의가 노력한다 한들 할 수 없는 위로예요.”

세상을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드는 일

그는 자신의 활동을 봉사라는 말에 가두고 싶어하지 않았다. 활동으로써 자신의 슬픔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데 역시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란다.

“재난 트라우마의 치유란, 결국 함께 슬퍼하면서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더라고요. 제가 사는 세상을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드는 일인데 그걸 봉사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부족함을 성찰하고, 시작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봉사를 그와 같이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자리하기를 바란다. 재난 현장에 그와 같이 애쓰는 걸음들이 하나둘 많아질 때, 뿌리뽑힌 삶은 조금씩 희망을 부여잡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사회는 보다 따뜻해질 것임이 분명하다. 올해도 봄이, 성큼 우리 앞에 다가왔다.

  •  참고문헌

“[사설] 세월호, 지속적인 심리지원 필요하다.” <청년의사>. 2015.04.29. 백종우·김현수·심민영·이해국·우영섭·정찬승·이상혁·석정호·전홍진·이상민·방수영·나경세·이병철·이명수·허효정·채정호.

“세월호사고 직후 대한정신건강재단 재난정신건강위원회의 초기 지원과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회원들의 자원봉사 활동.” <신경정신의학> 54(1). 1-5.2015. 이수연·최옹융·홍종관·김춘경. 2004.

“대구지하철참사 청소년생존자의 심리사회적 적응을 위한 인지행동적 위기상담의 효과.” <청소년상담연구> 12(1). 156~168.

주관 – 4·16재단, 후원 –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담당 – 모금홍보팀 유진솔, 글 – 유해정 (성공회대 사회과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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