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십육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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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영
2023년 7월의 《월간 십육일》에서는 강민영 작가님의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 멈춰있는 시간과 나아가는 시간 >
1.
매년 12월이 돌아오면 새로운 달력을 고른다. 벽걸이형 달력은 쓰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곁에 두고 바로 볼 수 있는 탁상 달력을 선호하는 편이다. 이제는 종이 달력보다 구글 캘린더를 더 자주 들여다보면서도, 달력을 사는 행위를 멈추지 않고 반복한다. 직접 손으로 적어두어 기억하고 싶은 날들이 있기 때문이다. 매년 어김없이 반복되는 4월 16일은 더더욱이 그렇다.
아직도 그날을 기억하며 4월의 작은 한 칸을 내어주는 달력도 있지만, 시중에서 판매하는 대부분의 달력들에서 그날의 슬픔은 잊혔거나 혹은 기록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정정당당히 할당받은 적이 없다. 그렇기에 꽃과 풀이 고개를 드는 봄의 16일을 잊지 않게끔 새 달력을 열어 그곳을 확인하고 무언가를 기록한다.
그렇게 달력을 바라보고 있으면, 아주 가끔씩 2014년 4월 16일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멈춰있는 시간을 마주하게 된다. 첫 번째는 나의 기억과 기록이다. 사무실에 앉아 여기저기서 터지는 탄식과 분노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뉴스 화면과 SNS만 들여다보며 잠을 이루지 못했던 그 일주일 동안 썼던 비공개의 일기가 블로그에 여전히 남아있다. 두 번째는 타인의 기록이다. 정확히, 그리고 확실하게 기억해두고 싶은 이름, ‘레네미아’의 기록. 그의 블로그는 2014년 4월 15일에 멈춰져 있다. 완전히 동결된 그의 마지막 포스팅을 나는 매년 들여다본다. 그곳에는 그 멈춰진 시간에 대한 많은 사람의 댓글이 남아있고 또 남겨지는 중이다. 이렇게 멈춰있는 2014년 4월 16일의 시간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참담한 기록을 추모하며, 다시 달력을 연다. 일주일 전, 한 달 전에 남겨진 불특정다수의 토로에 나도 몇 자를 끄적이며 그 틈새에 비집고 앉는다. 잊지 않겠다는 말을 수도 없이 했건만, 그 말을 할 때마다 입이 건조하고 바싹하게 타들어 가는 느낌이다.
2.
진도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 건 세월호 6주기 때였다. 코로나19라는 질병이 온 나라를 감쌌고 길과 길이 막혔던 시기였다. 자전거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나는 자연스레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는 곳, 특히 수도권에서 제법 먼 곳을 찾아다녔다. 전국 지도를 눈앞에 두고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진도에 가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그 해에 비경쟁 장거리 라이딩인 ‘랜도너스’ 퍼머넌트 코스로 세월호를 추억하는 ‘PT-416 봄날’이 생겼다. 진도 팽목항에서 출발해 안산 단원고등학교 기억 교실로 돌아오는 416km의 코스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코스를 설계할 때 이름에 대해 깊게 고민하셔서 의견을 전달 드리기도 했다. 언제고 이 챌린지에 참여해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계획의 일환으로 망설임 없이 진도행을 택했다.
팽목항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빨간 등대 앞에 섰다. 노란색 커다란 추모 리본을 보며, 이곳에 몇 번이고 와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눈에 선하도록 봤던 이미지였기 때문일까. 작은 등대 곁에 서니 갑작스런 돌풍이 불어와 몸을 가눌 수 없어졌다. 그 길로 팽목 기억관을 향해 걸어간다. 팽목 기억관은 팽목항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황량한 벌판 위에 세워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려고 문을 열자,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온다. 잠결에도 꿈결에도 잊을 수 없는 노래다.
다른 사람의 이름을 그렇게 오래도록 불러본 적이 있을까. 다른 사람의 이름이 들어간 멜로디를 그렇게 오래도록 말해본 적이 있을까. 기억관 한 곳에 서서 사진과 리본, 메시지와 리본들을 계속해서 바라본다. 그때, 다리를 간질이는 무언가가 느껴져 아래를 내려다봤다. 검고 하얀 얼룩무늬의 고양이와, 밝은 갈색의 치즈 고양이 두 마리가 나를 빤히 올려다본다. 번갈아 야옹거리는 고양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한달음에 근처 슈퍼로 달려가 고양이 캔을 몇 개 사 온다. 고양이들의 눈빛이 초롱해진다. 곧 고릉고릉 소리를 내며 두 마리 고양이들이 캔 쪽으로 고개를 숙이기 시작한다.
고양이들 때문인지 기억관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때문인지 아니면 바로 문밖과는 너무 다른 이곳의 공기 때문인지, 오랜 시간을 이곳에 머무른다. 한적한 평일에 이곳을 찾는 사람은 나와 일행 말고는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곧 몇 명의 사람들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생전 처음 만난 사람들이지만 그들과 우리는 가볍게 묵례를 나눴다.
그들 중 한 명의 가방에서 노란 리본이 달랑거리는 걸 가만히 바라봤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내 자전거의 안장 바로 밑에도 항상 노란 리본이 자리하게 되었다. 가방과 자전거 등 여기저기에 나누어 달린 리본과 스티커들은, 정작 내가 볼 수 없는 위치에 자리한다. 하지만 그 리본을 마주했을 때, 잠시 스치는 몇몇 사람들의 표정을 볼 수는 있다. 그날에 멈춰버린 시간을 안고, 그걸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들의 얼굴에 지나가는 감정, 정지된 기억과 기록을 품에 안은 채 주어진 시간을 향해 매일 나아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사이에 나도 오래도록 섞여서 언젠가 마주하게 되면 반갑게 묵례할 누군가를 기다린다. 우리가 함께 기억해야 할 표식은 멈추듯 흐르며 그렇게 영원히 이어질 것이다.
……
강민영(소설가)
글 쓰고, 글 엮는 사람. 제3회 자음과모음 경장편소설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영화 매거진 ‘cast’의 편집장을 맡고 있으며, 프리랜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작품
소설 『부디, 얼지 않게끔』, 『전력 질주』, 에세이 『자전거를 타면 앞으로 간다』 등
《월간 십육일》은 매월 16일 4.16세월호참사와 관련한 글을 연재합니다. 다양한 작가의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주제의 글을 통해 함께 공감하고 계속 이야기해 나가자고 합니다.
*연재되는 모든 작품들은 4·16재단 홈페이지, SNS(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블로그), 뉴스레터 등에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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