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십육일 – 김민지] 기억의 스키드 마크

월간 십육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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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지


2023년 8월의 《월간 십육일에서는 김민지 작가님의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 기억의 스키드 마크 >

 

문제를 문제로 덮는다. 바쁘다는 핑계로 오래 붙드는 문제가 없다. 세상이 견고하지 못해서 세월을 가늠하기 어렵다. 이런 식으로 얼마나 더 갈 수 있을까.

올해도 많은 일이 있었다. 그 일들이 불쑥 일어났다고 하기엔 막을 수 있는 순간순간이 분명하게 있었다. 그렇지만 또 바쁘다는 이유로 일을 키우고 말았다.

2015년 봄. 어느 골목 과속방지턱 위에 하얀 퍼즐 한 조각이 떨어져 있었다. 차가 많이 다녀 거뭇거뭇 타이어 자국이 묻은 노란 사선 위에 있던 하얀 퍼즐 한 조각. 인근 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실수로 떨어뜨린 것일까.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도 절묘해 사진으로 남겨 두고 있다가 무가지 엽서를 만들어 책 행사에 나갈 때마다 나누었다. 엽서의 제목은 “416 꼭 맞춰 오지 않은 봄”이었다.

2016년 봄. 검은 아스팔트 위에 떨어진 또 다른 퍼즐 한 조각을 발견했다. 파고가 높아진 바다를 닮은 짙푸른 색감이었다. 사람의 발이나 차바퀴에 맞고 굴렀는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퍼즐이 온통 긁혀 있었다. 그 길에서 주워온 퍼즐 한 조각을 본떠 종이를 오리고 편지를 써서 유리병에 넣었다. 책방 사장님이 한쪽 벽면을 내어주셔서 “416 유리병편지”라는 이름으로 얼마간 연남동 헬로인디북스에 둘 수 있었다.

그렇게 2년을 보내고 3년째 봄부터 지금까지 나의 기억은 세상보다 견고한지 되묻게 된다. 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덜컥거리고 내려앉는 마음이 다여서는 안 된다. 냉소도 안 된다. 그럼 무엇이 되어야만 할까. 어떤 마음과 어떤 자세로 이토록 큰일들을 대해야 할지 처음엔 알지 못했다.

9년쯤 지나서야 진정 체감하게 된 건 기억력. 기억의 힘이었다. 기억을 더 좋게 하는 일상적인 행위 속에서 그간의 미흡함을 돌아보았다. 기억을 살리기에 적절한 방법이 많겠지만 경험상 세 가지가 컸다.

퍼즐. 대화. 독서.

슬프고, 답답하고, 화가 나고, 무서운 일이 일어날 때마다 주변 사람들과 나눴던 대화. 이미 나온 책의 두께를 더 두텁게 만드는 일을 하듯이. 오직 읽는 일에 진심을 다하는 것. 이 작은 최선이 반복된다면 기억은 확실히 나아지지 않을까. 반문하고 있지만 이미 그렇게 믿고 있다.

『금요일엔 돌아오렴』 『엄마. 나야.』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눈먼 자들의 국가』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 등 지난 9년 동안 책장을 채우고 있던 세월호 관련 기록들이 입을 모아 말해준 하나.

가만히 있으라던, 이젠 잊어도 된다고 말하던 사람들로부터 참상을 보았다. 아픔으로 배운 가치를 세상이 어떻게 홀대하는지 볼 때마다 분노가 인다. 그 아픔을 당겨 나는 얼마나 스스로 따끔한 사람이 되었나.

올해 여름 304낭독회에 두 번 다녀왔다. 직접 쓴 시와 침대맡 책장에 놓인 책 속에서 발췌한 글들을 낭독하고 돌아온 날들. 이상하게 그 두 날엔 비가 오지 않았다. 그토록 퍼붓던 비가 오지 않다니. 그 시간만큼은 별 탈 없이 기억을 나누고 가라는 맑은 계시였을까.

이제는 날씨 이야기도 쉽게 할 수 없다. 모든 게 사람 짓이다. 편리와 편의 속에서 지낸 날들에 대한 대가를 돌려받는 중이다. 모두 바라던 바는 아니었을 것이다. 자연과 맞물린 존재로 내내 합을 이루지 못하다가 최악으로 접어든 상황에 이제야 욕심을 반쯤 접어야겠다며 참회하는 기분이다.

불안과 불확실이 더해지는 날들 속에서 모두가 힘들다고 느낄 때. 또 어떤 홀대들이 세상에 난무할지 두렵다. 그 두려움에 앞서 기억의 심지를 더욱 굳건히 하는 연습을 해야겠다.

올봄까지 쓴 글들을 엮어 낸 『마음 단어 수집』 속 “알람”이라는 단어처럼. “우리를 한꺼번에 울릴 만한 일이 일어났을 때. 그 슬픔이 세상을 맑게 만들 수 있는 자양분일 때. 잊지 말고 함께 깨어”날 수 있기를.

모든 참사 희생자분들과 유족분들이 무감각한 이들 사이에서 쌓아 올린 안전의 참뜻을 생각하며 에두르지 않고 함께 길을 낼 수 있길 바란다.

 

……

 

 

 

……

 

김민지(시인)

“당연하고 분명한 것일수록 어려워질 때까지 생각해요”
제1회 〈계간 파란〉 신인상에 시 「top note」 외 9편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작품

에세이 『마음 단어 수집』 등


《월간 십육일》은 매월 16일 4.16세월호참사와 관련한 글을 연재합니다. 다양한 작가의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주제의 글을 통해 함께 공감하고 계속 이야기해 나가자고 합니다.

*연재되는 모든 작품들은 4·16재단 홈페이지, SNS(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블로그), 뉴스레터 등에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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