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십육일 – 박래군] 이태원참사와 애도의 공동체

월간 십육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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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


11월의 《월간 십육일에서는 박래군 작가님의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 이태원참사와 애도의 공동체 >

 

 

영화 <판도라>는 보기 힘든 장면으로 끝이 났다. 원자로가 터져버린 긴급 대형사건 앞에서 대통령은 잘못된 보고를 받으며 판단을 못하고 밍기적거리고 국무총리를 비롯한 정부 책임자들, 한수원의 책임자들은 사건을 덮기에만 급급했다. 그 과정에서 원자로의 경제성만 따져서 핵연료봉이 공기에 누출될 상황인데도 바닷물이 아닌 민물만 고집하는 인물들, 결국 더 큰 참사를 막는 일은 원자력 발전소 현장의 소장과 노동자들이 목숨을 걸고 해냈다. 마지막 핵연료봉 저장시설의 바닥이 누수되는 상황에서 바닥 자체를 폭파하고 그곳에 해수를 채워서 연료봉의 온도를 낮추는 일을 하기 위해 죽을 줄 알고도 그곳에 들어가야 하는 하청노동자…마지막 탈출구마저 봉쇄된 그곳에서 그 하청노동자의 마지막 당부는 자신을 기억해달라는 말이었다. 그 장면으로 영화는 끝나고 TV는 뉴스 화면으로 전환되었는데, TV는 영화에서처럼 재난상황이 발생한 생생한 장면을 급박하게 전하고 있었다. 나에게 이태원 참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2022년 10월 29일 밤이었다. 서울의 한복판 이태원에서, 3년 만에 노마스크로 열리는 핼러윈 축제에 10만 명 이상의 인파가 몰릴 거라는 예측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 예상대로 사람들은 이태원에 몰렸고, 폭 3.2미터 길이 40미터의 해밀톤 호텔 옆 골목에서 사람들은 선 채로, 또는 넘어져서 압사를 당했다. 참사 이틀 뒤 세월호 유가족들과 이태원참사 현장을 방문했다. 합동분향소에서 조문을 하고, 참사 현장 바로 앞의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국화꽃을 놓고 추모하는 그곳에 가서도 흰 국화꽃다발을 놓고 묵념을 올렸다.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이태원 참사는 남의 일이 아니다. 만 17세였던 단원고 학생들은 지금 만 25세 청년이 되었다. 이번 이태원 참사의 피해자들 중에서 가장 많이 희생된 이들이 20대 청년들이다. 8년 전 세월호참사로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지금쯤 이태원 핼러윈 축제에서 신나게 축제를 즐겼을지도 모른다. “8년 동안 안전사회를 그렇게 외쳤는데 이게 뭐냐.”고 울음 우는 그 유가족들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태원 참사를 대하는 이 정부의 태도를 보면서 자연스레 세월호참사 때와 겹쳐졌다. 세월호가 침몰하는 다급한 상황에서 현장에 출동한 해경 경비정이나 헬기는 세월호 상황을 파악하려 하지 않았고, 우선 먼저 “탈출”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해경 지휘부는 잘못된 상황 판단을 하거나 부적절한 지시만 내렸다. 그런 사이에 세월호는 100분 이상의 골든타임을 허비한 채 침몰했고, 우리가 아는 것처럼 승객들은 구조받지 못했다. 그래서 구조를 못한 게 아니라 구조를 안 한 거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리고 7시간도 더 지나서 중대본에 나타났던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그렇게 발견하기 힘듭니까?”라고 말했다.

참사 당일 이태원에 나갔던 사람들은 오후 6시34분경부터 압사의 위험을 느끼고 경찰에 112로 신고했다. 참사가 일어나기 무려 4시간 전이었다. 이때부터 지속적으로 이태원 해밀톤 호텔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112에 전화로 상황의 심각성을 알렸다. 그런데도 경찰은 이에 대한 대응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 이태원 핼러윈 축제는 매년 열렸던 것이라 안전 관련 노하우도 축적되어 있던 상황이었지만, 올해는 안전대책을 서울시도, 용산구청도 전혀 마련하지 않았고, 현장의 다급한 신고도 묵살했다. 참사가 나자 윤석열 대통령은 담화 발표 뒤 현장을 찾아가 “여기서 그렇게 많이 죽었단 말이야?”라고 말했다.

참사 뒤에 정부 책임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재난안전관리기본법(재난안전법)에 주최자가 없는 민간의 자발적인 축제이기 때문에 법적인 책임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재난참사에 대한 예비와 대비와 대응, 복구의 정부 책임자인 행안부장관은 처음부터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발언으로 비난을 자초했다. 인파가 예년보다 많았던 게 아니라고도 했고, 미리 경찰이나 소방을 배치했다고 달라지는 게 뭐냐고도 했고, 당일 소요나 시위 상황 탓에 제대로 대응을 못했다고 식으로 말을 했다. 누구 하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지 않던 정부 책임자들이 일제히 사과를 한 것은 이태원 참사 발생 3일 지나서 다급한 112신고가 언론에 노출된 다음이었다. 그 사이에 ‘참사’란 말 대신 ‘사고’로, ‘희생자’, ‘피해자’ 대신 ‘사망자’, ‘사상자’로 바꿔 쓰게 했다. 그리고 참사 초기의 혼란한 상황에서 경찰은 정보사찰을 벌이면서 이 국면을 탈출할 방향을 정부에 제시하기도 했다. 그게 어디 경찰만 그러겠는가.

이 기시감은 무언가? 아마도 우리는 이태원 참사의 이후 진행 경로를 알고 있을 것이다. 사건의 진상은 왜곡할 것이고, 증거는 조작할 것이며, 수사와 감찰의 결론으로 말단 경찰이나 행정 공무원 몇 명에게만 죄를 뒤집어씌우고, 피해자들에게는 보상과 지원 얼마를 해주고는 입 다물라고 할 것이다. 가족이 왜 죽었는지 진실을 요구하는 유가족들은 ‘순수하지 못한 유가족’으로 ‘순수한 유가족’과 분리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유가족들을 비롯한 피해자들을 조롱하고 모욕할 것이고, 고립된 피해자들은 트라우마를 겪으면서 이 세상을 원망하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할 것이다. 지금은 침묵의 애도 시간이지만 이렇게 정부가 상황을 끌어갈 때 피해자들부터 침묵의 애도는 분노로 바뀐다. 우리가 세월호참사로 이미 겪은 일이다. 억지로, 인위적으로 덮으려 하고 책임지지 않으려 할수록 그 분노는 더 커진다.

세월호참사가 났을 때 대구지하철, 삼풍백화점 참사 등 이전에 참사를 겪었던 사람들은 “우리가 참사 났을 때 제대로 싸웠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해서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를 겪은 세월호참사 유가족들도 같은 말을 한다. “우리가 안전사회를 위해서 싸운다고 싸워왔지만, 우리가 제대로 못해서 아직도 이런 일로 사람이 죽나 봐.” 왜 이런 자책은 재난참사 유가족들의 몫이어야 하는가. 참사 현장에서 마지막까지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려고 했던 경찰이나 구급대원들, 그리고 심폐소생술을 실행했던 시민들이 오히려 미안해하고 자책했다. 왜 이런 미안함과 자책은 시민들의 몫인가?

우리는 다시 국가의 부재 상황을 겪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공감의 공동체가 필요하다. 아픈 유가족과 피해자들의 곁에서 “당신들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해주는 인간적인 공감력을 보여주어야 할 때다. 국가가 부재할수록 시민들의 이런 공감의 표현과 행동이 무너져 버린 사회를 살려낸다. 세월호참사 때 그랬던 것처럼, 피해자들의 곁에 서는 것, 그것이 진정한 애도이다.

(이글은 이태원 참사 발생 직후에 쓴 글입니다.)

 

 


 

《월간 십육일》은 매월 16일 4.16세월호참사와 관련한 글을 연재합니다. 다양한 작가의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주제의 글을 통해 함께 공감하고 계속 이야기해 나가자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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