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십육일 – 윤글] 어떤 마음에는 지지 않는 꽃이 피어 있다

월간 십육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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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글


9월의 《월간 십육일에서는 윤글 작가님의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 어떤 마음에는 지지 않는 꽃이 피어 있다 >

 

 

2014년 4월 16일, 수요일. 그러니까 내가 스무 살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싱그러운 봄 내음이 거리 곳곳을 누비고 있었고, 한강에서는 개나리와 벚꽃을 비롯하여 수많은 꽃이 저마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을 즈음. 지난날의 기억 앞에서 눈을 지그시 감고 어렴풋한 그때의 시간을 더듬어 보니, 그날의 시작은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었던 따뜻하고 포근한 봄날이었다. 전날 친구들과의 약속 자리에서 과음을 한 탓에 숙취에 시달리며 아침도 아니고 점심도 아닌 애매한 시간에 일어났다. 밀려오는 갈증에 시원한 물을 한 컵 들고서 소파에 무거운 몸을 기댔다. 그러고선 무심코 TV를 켰는데 뉴스에서는 믿을 수 없는 장면이 송출되고 있었다. 전라남도 진도 부근 해상에서 승무원과 승객 476명을 태운 여객선이 침몰 중이라는 속보였다. 딱 봐도 거대한 크기의 배가 반 이상 기울어진 채 이내 바닷속으로 잠겨 버릴 것만 같았다. 그것이 내가 처음 마주한 ‘세월호’의 모습이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런 위급한 장면을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차이가 있겠지만, 실시간으로 접한 사건 중에서 심장이 덜컹 내려앉을 만큼의 충격적이었던 일은 나에게 세 번 정도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은 ‘천안함 피격 사건’, ‘연평도 포격전’ 그리고 ‘세월호 침몰 사고’였다.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 때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다시금 발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북한의 어처구니없는 도발 감행에 대한 분노 그리고 나라를 지키다 떠난 국군 장병들에 대한 존경과 애도가 주된 감정이었다면, 세월호 사건 때는 사고 자체에 대한 허탈과 상실 그리고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해 안타까움이 더 밀려왔다.

그중에서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세월호 사고의 경우에는 마음이 조금 다르게 답답했다. 하필이면 그 시기가 고등학교 졸업식을 마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고, 고로 사망자의 대부분이 고작 나보다 두 살 정도 어린 동생들이었기에 부디 모두가 안전히 구조되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그러나 간절한 소망과는 달리,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상황은 계속 악화되었고 끝내 세월호는 304명의 푸른 청춘과 눈부신 낭만을 싣고, 깊고 어두운 바다로 사라지고 말았다.

배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도 틈이 날 때마다 세월호 관련 내용을 찾아봤었다. 배가 완전히 잠기더라도 내부에 공간이 남아 있다면 사람이 생존할 수 있는지, 생존할 수 있다면 그 기간은 얼마나 되는지, 그 제한된 시간 안에 구조대가 침몰한 선체의 내부로 들어가서 구조할 여건이 되는지 등등. 비록 전문가들은 날마다 실종자의 생존율에 관해서 암담한 수치를 내놓았지만, 그곳에 단 0.1%의 가능성이라도 남아 있다면 꼭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랐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로부터 3년이 지난 후 세월호는 기나긴 잠수를 마치고 녹슨 채로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5년이라는 시간이 더 흘러, 나는 이 원고를 의뢰 받아 글을 쓰고 있다. 어느덧 8년째를 지나가고 있는 그날의 아픔에 대해 이야기를 다시금 늘어놓는 일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어둡고 춥고 숨이 막히는 곳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또한, 부모로서 차가운 바닷속에 있는 자식을 그저 바라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현실이 얼마나 끔찍했을까. 나로선 한없이 다가가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시간과 감정이다.

누군가는 시간이 약이라고 말한다. 마치 이 시간만 지나면 지난날의 아픔이 아예 없었던 일이 되는 것처럼. 그러나 엄연히 시간은 약이 아니다. 그저 처방전일 뿐이지. 약은 다름 아닌 마음가짐이다. 그래서 그때의 일만 생각하면 여전히 눈물부터 차오르는 모든 사람들이 부디 마음을 굳게 먹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차차 극복해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 또한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낸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괜찮아진다는 것이 결코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게다가 나 역시도 이런 위로를 건네는 것이 편하지만은 않다. 겉으로 다친 것은 한 번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 경험으로 인해 안에서 연속되고 지속되는 통증은 수천, 수만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많았을 텐데,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런 고통과 싸우고 있을 당사자들의 마음을 안아 주는 일에는 상당한 세심함과 조심성이 필요하니까. 또, 어떤 이들에게는 그날의 기억과 잠시 스치는 것조차도 죽을 것처럼 힘들어서 마음 깊은 곳에 묻고 괜찮은 척, 무심한 척 근근이 살아가고 있을 텐데 내가 괜히 그 아픔을 건드리는 것만 같아서.

그럼에도 모든 어려움을 무릅쓰고 간절히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 세상을 떠난 마음과 이 세상에 남은 마음이 서로를 그리워하고 사랑한다는 사실은 영원히 변하거나 사라지지 않으니 남은 아픔이 있다면 더욱 충분히 슬퍼하고 비우되, 다시금 행복해지려는 노력은 절대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는 진심을 전하고 싶다. 밥도 잘 먹고, 좋은 이야기도 많이 나누며, 밝은 생각도 자주 하고 기회가 된다면 며칠 멀리 떠나기도 했으면 좋겠다. 어쩌면 그것이 먼저 떠난 마음이 남은 마음에게 전하지 못한 마지막 바람일지도 모른다.

어느새 가을이다. 이 선선한 계절이 지나가면 이어서 추운 겨울이 올 것이고 거기서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어김없이 마음 한편이 먹먹해지는 봄이 찾아올 테다. 그렇게 다음 봄에는, 지난봄에 피었던 꽃들이 시들었던 자리에서 또다시 비슷한 꽃들이 피어날 것이다. 변함없이 저마다 자리를 차지하고선 달큼한 향을 풍길 것이고 누군가는 그 꽃들 앞에 서서 한참을 생각에 잠길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세상의 꽃은 피어나고 지기를 반복한다. 그러나 어떤 마음에 피어난 꽃은 영원히 지지 않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이 덥거나 춥거나 한결같이 그대로 피어있다. 단, 그 꽃을 아끼는 마음이 여실히 잘 지내고 있다면 말이다. 그러니까 마음에 지지 않는 꽃을 피워 낸 당신은 어떻게든 잘 지내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잘 살아내야 한다. 앞으로도 감당하기에 쉽지 않은 감정은 수없이 들이닥칠 것이고 어떤 날에는 한계를 느끼는 순간도 있겠지만, 나는 부디 당신의 마음이 잘 버텨 내기를 이토록 바란다.

 

 


 

《월간 십육일》은 매월 16일 4.16세월호참사와 관련한 글을 연재합니다. 다양한 작가의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주제의 글을 통해 함께 공감하고 계속 이야기해 나가자고 합니다.

*연재되는 모든 작품들은 4·16재단 홈페이지, 블로그, 뉴스레터 등에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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