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십육일 – 임정희] 우리, 어떻게 해야 해요?

월간 십육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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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희


2023년 1월의 《월간 십육일에서는 임정희 작가님의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 우리, 어떻게 해야 해요? >

 

 

그날 밤, 결국 꿈을 꾸고 말았다.
나는 늙은 할머니였고, 일곱 살 쯤 낯익은 듯 낯선 아이는 내 손주였다.
“할머니, 우리는 안전하지요?”
“그렇지 않단다.”
“안전하지 않다고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아이의 얼굴은 당혹과 낭패감으로 발개졌다.
나는 아이에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알려 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고등학생이 되면 말야. 수학여행을 갔다가 침몰하는 배에서 구조되지 못하고 창문으로 살려달라 외치다 죽을 수도 있고, 할로윈 축제에 갔다가 사람이 너무 많아서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목이 쉬도록 살려달라 소리치다 압사할 수도 있단다. 수백 명이 순식간에 죽는 일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단다. 그게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야. 절대 안전하지 않아.”
“정말이예요?”
“도와달라고 살려달라고 해도 소용없어. 수백명의 사람들이 한순간에 결국 죽고 말지. 몇 몇 사람들의 노력이 있겠지만 역부족이지. 2014년 봄에도 또, 지난해 겨울에도 그런일이 일어 났단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사람들이 죽는 동안, 우리나라는요, 우리 뽑은 대통령이나 높은 사람들은 뭘 했나요? 우릴 안전하게 지키려고 있는 사람들 아닌가요?”
“그 사람들은 국민을 살릴 틈이 없단다. 아주 바쁘거든. 권력이나 돈이 국민들의 목숨보다 더 중요하거든. 그런 일이 일어나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아.”
“그럼 같은 국민들은요? 이웃이나 친구들은요?”
“외면하고 망각하고 심지어 왜곡하고 이용하지. 그게 편하거든. 같이 아파하고 잊지 않고 기억하는 건 정말 어렵거든. 당장 먹고 살기도 바쁘고. 그러니 참사 후에 공감이나 애도나 기억 같은 건 꿈도 꾸지 말아야 해. 오히려 비난을 들을 수도 있거든. 최대한 빨리 잊어야 해.”
“그럼, 우리나라는 이 세상은 누구를 위한 건가요?”
“적어도 우리의 것은 아니란다.”
“우린…어떻게 해야 하나요?”
나는 어떤 대답도 하지 못했고 아이의 눈동자에 비친 내 얼굴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아니라 불행과 예정된 비극을 전하는 무기력한 전령이었다. 죽지 않고 살아있는 한, 언제든 비참하게 참사 속에서 죽을 수 있는 현실을 전하는 무책임하고 무기력한 생존자, 방관자 말이다. 참사가 계속될 거라는 무참한 예언, 그 어둠속에서 ‘어떻게 해야 해요?’ 라는 한 마디가 울리고 또 울렸다. 아이의 한 마디는 나의 말이 되었다.

꿈을 꾼 것은 낮에 본 뉴스 때문이었다.
서울 도심, 이태원에서 할로윈 축제를 즐기러 모였던 젊은이들의 압사소식이었다. 사전에 위험을 알렸던 여러 번의 신고와 살려달라는 호소는 묵인되고 말았다. 상식적인 안전 시스템이 작동했다면 살릴 수 있었는데도 방치된 이상한 참사였다. 이번에도 결국 인재였고 대부분 십대와 이십대였다. 며칠 후, 목숨을 잃은 이태원 참사에서 살아남은, 그러나 친구가 바로 앞에서 숨이 막혀 죽는 걸 목도한, 그 비극의 기억을 잊으려 애써 성실하던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뉴스까지 전해졌다. 이후, 내용들 역시 왜곡과 외면과 책임회피와 이상한 대응이었다. 지난 2014년 봄, 세월호 당시처럼 참사 이전에도 참사 현장에서도 그리고 이후에도 같은 대처였다. 세상에 어른으로, 가정에 부모로 고개를 숙이게 만드는 사태의 반복이었다. 나라는 그들을 지켜주기를 외면했고, 책임지고 소명해야 할 사람들은 거짓말과 왜곡으로 일관했다. 애도조차 여의치 않았다. 모든 것이 축제를 즐기러 밤중에 모여든 젊은이들의 탓인 양.

8년 전 그 날, 우리는 경주로 수학여행을 간 두 아들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한가한 날이었지만 뉴스에선 진도 앞바다, 수학여행을 갔던 학생들이 기울어진 세월호 배안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당연히 구조될 줄 알고 지켜봤던 영상이 결국은 수장되는 아이들의 마지막을 목도하는 의식이 되고 말았다. 참사 후엔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았다. 공감과 기억마저 비난했다. 마치 모든 책임이 죽은 희생자들에게 있다는 듯이. 그 날, 나의 두 아들은 집으로 돌아왔고 참사가 우리의 일이라고 생각한 것은 얼마간이었다. 백팩 지퍼 손잡이에 노랗고 작은 리본을 달고 다니는 것이 전부였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보면 왠지 부끄럽고 울컥하는 감정은 일순간이었다. 참사의 짙은 어둠으로부터 등을 돌린 나는 흩어진 공감과 잊혀진 기억의 시간을 보냈다. 우리, 어떻게 해야 해요? 라는, 꿈속에 아이가 한 말은 세월호 희생자 중 한 명이 남긴 마지막 외침이었다.

다시 8년 후, 바다 한가운데에서 지켜내지 못한 목숨은,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도 살려내지 못했다. 그렇게 참사는 우리를 향해 다시 들이닥쳤다. 달라진 거라곤 참사의 장소가 바다가 아니라 육지였다는 것. 우리는 다시 한 번 너희들이 사는 세상은 안전하다고 결코 말할 수 없는 어른이 되었다. 이번에도 그들은 애도를 지우려 했고, 서둘러 덮으려 했다. 참사를 향한 선의의 마음조차 상처받았다. 서서히 참사의 어둠으로부터 고개를 돌리라고 삿된 망령들이 들끓었다. 공감과 기억마저 압사시키는 형국이었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어둠의 한가운데를 걸어가서 그 밀도와 무게, 슬픔을 온전히 견뎌내면, 하나하나 밝혀서 들여다보고 밟아간다면 드러날 진실이, 진실이 열어 준 희망 앞에 사람들은 힘을 얻는다는 것을. 그들은 우리가 매번 등을 돌려 다시 참사가 찾아오기를, 우리의 것을 넘어 나의 것으로, 내 자식에게 내 부모에게로 다시 지속되기를, 공감과 기억을 잃고 반복되는 참사 속에서 죽어가고 죽어가도록 방치한다.

꿈은 망각의 정체를 거슬러 내가 믿는 은밀한 동력을 환기시켰다. 우리 내면에 있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보다 더 위대하다. 우리 안에 원초적인 마음이 모여 현상에 이르고 이 현상이 세상을 변화시킨다. 잊어버린 참사와 다시 일어난 참사의 한가운데서, 마음으로부터 떠나보낸 공감과 기억을 조우한다. 마음의 거대한 힘, 공감과 기억은 우리 스스로 구해낼 수 있는 유일하고 본질적인 힘이다. 최후까지 살려내야 할 우리의 것이다. 살아남은 우리들에게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이다. 새로운 현상을 만드는 건 우리의 마음이므로. 수학여행을 간 학생들이, 할로윈 축제를 즐기러 간 젊은이들이 죽어야 할 이유는 없다. 죽고 나서도 소외 받을 이유는 더더욱 없다. 상실한 공감과 잊혀진 기억의 부활, 그 연대야말로 ‘어떻게 해야 해요?’ 라는 물음에 우리가 들려 줄 이야기의 시작이 있지 않을까. 어떤 외침 한마디, 몇 개의 문장, 어떤 노래나 일상 속에 자기만의 행동 같은 것들 말이다. 세월호 참사 생존자의 오른 팔목 노란리본에 새겨진 ‘20140416’ 타투처럼.

 

 


 

《월간 십육일》은 매월 16일 4.16세월호참사와 관련한 글을 연재합니다. 다양한 작가의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주제의 글을 통해 함께 공감하고 계속 이야기해 나가자고 합니다.

*연재되는 모든 작품들은 4·16재단 홈페이지, SNS(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블로그), 뉴스레터 등에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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