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십육일-무과수] 무맥락 대화 속에 담긴 희망

월간 십육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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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과 수


11월의 《월간 십육일》에서는 삶의 단면을 기록하는 작가이면서

오늘의집 커뮤니티 매니저로 활동하는 무과수 작가님의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무맥락 대화 속에 담긴 희망>

 

 

 

 

 

 

가을이 ‘언제 오나’ 기다리며, 연이어 이어지는 낮의 더위에 ‘아직이려나’ 했는데. 차가워진 밤공기에 화들짝 놀라며 긴 옷을 꺼내입는 계절이 왔다. 여름내 덕지덕지 붙어있던 끈적임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밤낮으로 창문으로 스미는 또렷한 공기에 상쾌함으로 가득 차 있다.

 

지난밤, 언니들과 오랜만에 모였다. 우리를 설명하자면 서로를 응원하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랄까. 무엇을 하던 칭찬부터 나오는, 미래를 희망차다 굳게 믿고 살아가는 이들이다. 오랜 시간 함께 한 사이도 아닌데 질투와 증오, 의심이 없는 관계는 요즘 시대에 더 귀하다. 앞으로 나아가는데 큰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정갈하게 차려진 제철 음식과 그에 어울리는 약주 ‘일엽편주’를 한 잔씩 홀짝이며 우리의 대화가 시작됐다. 우리는 만나면 보통 맥락 없어 보이지만 결국 삶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을 주로 나눈다. 나는 관심 있는 것 빼고는 관심이 없는 편이라 정보 습득이 느려, 언니들이 먼저 듣고 온 발 빠른 세상 이야기에 감탄하기 바쁘다. 자신이 보고 배운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고, 나는 그걸 또 감사히 받아 또 다른 이야기로 내어준다. 느린 사람과 빠른 사람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는 우리를 보면 알 수 있다.

 

세상에는 정말 내가 알지 못하는 다양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AI’, ‘NFT’, ‘메타버스’, ‘비트코인’ 등의 미래라고 불리던 것들이 현실 안으로 막 들이치는 시대. 분명 흥미로움도 있지만, 점점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오프라인인지 온라인인지 헷갈리게 되는 혼란도 존재한다. 먼 미래까지 닿던 대화는 결국 다시 우리가 사랑하는 ‘아날로그’로 돌아와 결국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그리곤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경험하고 다양한 차별, 일의 방식, 주거 등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는 지각변동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세대를 귀하다고 표현했다.

 

그 이후로 음식이 몇 번 더 나오고, 술을 몇 잔 더 기울이니 대화가 점점 무르익어 갔다. 항상 말하는 거지만 우리의 대화는 우리만 듣기 참 아깝다. 이런 농도 깊은 대화를 더 많은 사람과 나눌 수 있게 되면 조금 더 가치 있는 세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돌아가서, 마지막 대화의 주제는 ‘축제’였다. 최근에 읽은 책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에서 나라에서 정해준 기념일 말고 스스로 기념일을 만드는 것에 대한 내용을 보고 감명을 받았던 참이었다.

 

“그러지 말고, 우리가 직접 축제를 만들어보자!”

 

우리는 현실이 아닌 오직 상상만으로 벌써 멋진 축제 하나를 단숨에 만들어 버렸다. 축제의 프로그램, 사람들의 참여 방식 등이 꽤 구체적이었다. 쓰레기가 없는 지속가능한 축제를 만들고 싶다거나, 진심으로 우리가 바라는 삶의 가치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왔으면 한다거나, 사진을 찍지 않는 것을 규칙으로 해서 각자의 기억 속에만 남아 신기루 같은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모닥불도 피우자”

“나 벌써 그 앞에 앉아 있어.”

“난 이미 감동 받았어”

 

우리는 분명 성수의 어느 술집에 앉아 있을 뿐이었는데, 벌써 우리의 마음은 우리가 만들어 낸 상상 속 축제에 모두 도착해있었다. 맥락 없는 대화처럼 보일 수 있지만, 중요한 건 이 속에는 진심과 희망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축제를 만든다는 건 또 하나의 세상을 만드는 것과 같다.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그 어떤 이유에서건 외면받는 사람 없이 모두가 각자의 삶을 잘 누리며 살아가는 것’.

 

한마음 한뜻을 가진 사람들이 어느 숲속에서 한날한시에 만나는 상상을 했다. 별이 쏟아질 듯한 깜깜한 밤 아래 모닥불이 피어오르고, 우리는 서로가 누군지 모른 채 그저 함께 삶을 노래하고 춤을 추고 사랑할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그 어떤 것도 짊어지지 않고, 오로지 웃음을 가득 머금은 채로.


About 《월간 십육일

《월간 십육일》은 매월 16일 4.16세월호참사와 관련한 에세이를 연재합니다. 다양한 작가의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주제의 에세이를 통해, 공함하고 계속 이야기해 나가자고 합니다.

*연재되는 모든 작품들은 4·16재단 홈페이지, 블로그, 뉴스레터 등에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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