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십육일-장혜영] 우리는 아직 ‘나라다운 나라’에 살고 있지 못하다

월간 십육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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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혜 영


10월의 《월간 십육일》에서는 제21대 국회의원이자 정의당 정책위원장.

‘2021 100명의 떠오르는 인물’로 선정된 장혜영 작가님의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우리는 아직 ‘나라다운 나라’에 살고 있지 못하다>

 

 

 

 

 

 

지난 6월말, 국회에서 대정부질문이 열렸다. 대정부질문은 말 그대로 국회가 정부를 상대로 여러 현안이나 의제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듣는 자리다. 나는 정의당을 대표해 교육·사회·문화 분야의 대정부질문을 맡게 되었다. 벌써 출범 5년차에 접어든 문재인 정부를 상대로 하는 대정부질문이었다.‘촛불정부’를 자임해온 문재인 정부가 지난 임기동안 해왔던 일들을 평가하고 얼마 남지 않은 임기 가운데 반드시 마무리해야 할 일들을 상기시켜야 하는 자리였다.

 

정권 교체의 크나큰 힘이었던 촛불광장의 시작은 다름 아닌 세월호 참사임을 부정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겉보기에는 눈부시게 발전한 것처럼 보이는 우리 사회가 사실은 안에서부터 단단히 망가져 있는 것은 아닐까.’ 세월호 참사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이런 반성과 성찰의 촛불을 켜올렸다. 집단적 성찰의 힘은 실로 강력했고, 정치는 여기에 조응했다. 2016년 총선,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그리고 2017년의 조기대선까지 정치는 끊임없이 세월호를 호명했다. 노란 리본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4년이 흘렀다. 어느새 ‘촛불정부’도, 그 정부를 엄호하는 거대 여당이 ‘세월호’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일은 눈에 띄게 잦아들었다. 모든 진상이 명백히 규명되고 우리가 이미 충분히 안전한 나라에 살고 있기 때문일까. 지금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온갖 인재(人災)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다던 촛불의 초심은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대정부질문 당일, 나는 김부겸 총리에게 이렇게 물었다.

“총리님,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 무엇이었습니까?”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던 안전과 인명에 대한 경시, 불감증 이런 부분들과 작은 부패의 고리들이 이리저리 엮여져 결국 그 귀한 젊은 생명들을 떠나보낸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나는 다시 물었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에 여전히 정확하게 다 밝혀졌다고 단언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건 알고 계실 겁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밝혀진 세월호 참사의 구조적 원인 가운데 하나는 바로 선박의 불법적인 구조 변경, 과적 등으로 인한 복원력 저하입니다. 최소한 이렇게 사람이 개선을 이뤄낼 수 있는 분야인 선박의 불법적인 구조변경, 과적의 문제는 문재인 정부에서 깨끗이 해결되었습니까?”

총리는 적잖이 당황한 눈치로 내가 지적한 내용에 대한 통계를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나는 다시 물었다.

“안타깝게도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많은 선박들은 여전히 선박검사 없이 항행을 하거나 불법 증개축을 하고 화물을 과적한 채 운행하고 있습니다. 중앙지방해경이 올해 2월 말부터 14주간 단속을 한 결과, 불법 증개축, 고박지침 위반을 포함해 해양안전 저해행위가 무려 263건입니다. 겨우 14주 동안 263건입니다. 그렇다면 지난 4년 동안은 어땠던 걸까요? 이에 대해 국무총리로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날 대정부질문에서 나는 안방의 세월호라고 불렸던 가습기 살균제 참사, 끝없이 이어지는 위험의 외주화로 인한 산재 사망과 최근 일어난 광주 공사현장 붕괴 참사까지 국민들의 마음을 분노와 안타까움에 휩싸이게 했던 사건들을 짚으며 정부의 역할이 무엇이었고, 무엇이었어야 했는지를 물었다.

 

촛불 이후, 시민들의 요구는 명확했다. 나라다운 나라, 좀 안전한 나라에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수학여행을 가다가 죽지는 않는 나라, 일하러 갔다가 죽어서 돌아오지 않는 나라, 버스 타다가, 길 가다가 죽지 않는 나라에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런 나라를 4년 안에 만드는 것이 문재인 정부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느냐는 내 질문에 총리는 그래도 정부도 각 분야에서 노력을 했지만 여전히 부족했다는 다소 모호한 대답을 내놓았다. 차라리 어려웠다고 솔직히 대답하길 바랐다. 그리고 이제라도 사력을 다해 바로잡아가겠노라고 답하길 바랐다. 그러나 마음을 열고 책임을 통감하기보다 정부를 방어하기 급급한 총리의 모습에 쓴웃음이 나왔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시행령이라도 실효성 있게 제대로 만들어줄 것을 당부했지만, 결과적으로 그 또한 공허한 말잔치로 끝나고 말았다.

 

세월호 7주기가 지난 2021년의 오늘에도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에 던진 질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가족협의회는 여전히 생때같은 자식들이 왜 그렇게 죽어야 했는지 속시원히 알지 못한다. 총리가 세월호 참사의 원인으로 짚은 안전불감증과 인명에 대한 경시, 작은 부패의 고리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있다. 우리는 아직나라다운 나라에 살고 있지 못하다. 지치고 괴롭고 서글프고 실망스럽지만 바로 그러하기에 우리는 계속 변화를 촉구해야 한다. 우리는 나라다운 나라에 살아갈 자격이 있다. 시민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정치가 나서야 한다. 이제 다시 정치의 시간이다. 이번 대선은누가 더 나쁜 놈이냐를 가리는 선거가 아니라 누가 세월호를 잊지 않았는지, 누가 세월호가 남긴 질문을 여전히 끈질기게 성찰하고 있는지를 가리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 우리 자신을 위해,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About 《월간 십육일

《월간 십육일》은 매월 16일 4.16세월호참사와 관련한 에세이를 연재합니다. 다양한 작가의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주제의 에세이를 통해, 공함하고 계속 이야기해 나가자고 합니다.

*연재되는 모든 작품들은 4·16재단 홈페이지, 블로그, 뉴스레터 등에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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