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자 님] – 우리는 온몸으로 이야기를 쓰고 있는 거예요

우리는 온몸으로 이야기를 쓰고 있는 거예요

<‘재난 현장 속 자원봉사자’를 찾습니다> 임정자 님

세월호참사로 희생된 아이들은 우리가 만든 동화를 읽고 자란 세대였어요. 저만해도 희생된 예은이를 세월호참사 이전에 지역 도서관 초청 강연에서 만났으니까. 우리가 쓰고 그린 동화책을 읽으며 꿈을 꾸었던 아이들이 우리 어른들이 만든 세상에서 희생되었으니… 참담함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어요. 너무 아프고, 무겁고, 힘들어서 무엇이라도 해야 했어요.

동화 작가들, 한뼘 그림책을 그리다

화랑유원지 합동분향소에 가서 안내라도 하자, 어린이도서연구회 사람들이랑 의논해 온라인 카페를 만들고 신청을 받아 하루에 두 명씩 조를 짰어요. 그렇게 모인 작가들이 합동분향소에서 안내도 하고 진상규명 서명도 받은 거죠.

또 광화문 광장에 작은 휴대용 테이블이랑 의자를 펼쳐놓고 손바닥만 한 노란 종이를 오가는 시민들에게 나눠줬어요. 시민들이 종이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 그걸 갖다 붙이며 부스를 운영한 거예요. 날마다 나오지 않아도 된다, 다들 자기 작업도, 생계도 있으니 한 번씩만 돌아가면서 나오자, 우리는 이걸 끝까지 해낼 수 있다며 함께 시작한 일이었어요.

100일째 됐을 때 우리가 한 게 ‘한뼘그림책 걸개전’이었어요. 우리는 동화와 동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이고 책 만드는 사람들이니 그걸 하자, 시간도 없고, 거리에 서서 봐야 하니 길게 쓰면 사람들이 못 읽는다, 짧게 쓰자, 한 거죠. 일주일 만에 글을 써서 보내면 그림 작가들이 4일 만에 그림을 그리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정이었죠.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을 가로 90cm, 세로 1m 크기의 현수막 한 장에 인쇄하여 광화문 광장에 걸었어요. 이때 여주 남한강인쇄소 사장님이 실비로 현수막을 제작해 주시며 함께 했어요. 그때 참여한 작가들이 67명이었는데, 모임 이름도 없어 ‘한뼘 작가회’라고 칭했죠. 45점의 한뼘 그림 걸개를 전국으로 들고 나르고 발송하며 시민과 작가들이 150여 곳에서 전시회, 북콘서트 등의 형태로 세월호참사를 기억하고 행동했어요. <세월호 이야기>(별숲, 2014)는 이때 작품들을 묶어 만든 책이에요.

4,767장의 타일로 만든 세월호 기억의 벽

그러다가 200일이 됐어요. 의미 있는 거라도 똑같으면 관심이 사그라지니까 한 단계 더 나아가는 걸 하고 싶었어요. 우리들은 논의 끝에 종이에 그림 그리던 방식을 연장해 타일에 그림을 그리기로 했어요. 어린이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주머니를 털어 타일과 준비물을 샀죠. 그리고 어린이도서연구회 각 지회들과 지역 작은서점, 도서관들이 합심해 진행했고요. 저는 타일을 싣고 다녔고, 저 포함해서 어마어마하게 많은 작가들이 참여해주었어요. 이분들이 전국 22개 지역 어린이, 청소년과 어른들, 그리고 피해자 가족들에게 가로 11㎝, 세로 13㎝ 짜리 타일에 세월호참사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나 느낌, 생각들을 표현할 수 있도록 북돋았죠. 그렇게 모인 타일을 여주로 가져와 구운 뒤 다시 진도로 날랐어요. 타일이 쌓아놓으면 어마어마하잖아요. 20~30명의 작가들이 그걸 지역별, 번호별로 다시 다 분류했어요. 두 차례에 걸쳐 분류 작업을 했는데, 한 번은 고맙게도 진도 주민분이 자기네 비닐하우스를 내주셔서 할 수 있었고, 또 한 번은 팽목기억관 강당에서 새벽까지 분류작업을 했더랬죠. 팽목항 방파제 벽에 타일을 붙일 때 지역별로 해야 찾아볼 수 있으니까요. 세어보니 4,767장이던데 그걸 1주기에 맞춰 진도 팽목항 방파제에 붙였어요. 일주일 동안 팽목항에 머물며 작업했고, 그렇게 ‘세월호 기억의 벽’은 만들어졌어요.

오랜 기간 여러 날씩 작가들이 진도를 오가면서 지역주민분들이 세월호참사 이후 받은 심리적인 상처, 트라우마에 대해 듣게 됐어요. 특히 걱정된 건 아이들이 겪는 마음의 상처였어요. 우리는 동화 작가니까 진도 아이들을 만나야 되겠다 싶어서 팽목항에서 가장 가까운 석교초등학교 친구들과의 만남을 시작했어요. 자기 책을 한 권도 갖고 있지 않은 아이들이 많아 작가들과 아이들이 1대 1로 책짝꿍을 맺었어요. 작가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내려와 아이들과 책을 함께 읽고, 책 선물도 하고, 동네주민들도 초대해 책 잔치를 벌였죠.

사람의 길, 팽목바람길

그때까지만 해도 세월호참사 이후 함께 활동해왔던 작가들이 계속 모여는 있었지만 단체 형태는 아니었어요. 그래서 만든 게 2017년 6월 9일 출범한 동화작가들의 네트워크 단체인 ‘어린이청소년책작가연대’예요. ‘어린이청소년책작가연대’ 안에 세월호대책위원회를 두고 가장 먼저 한 일이 팽목바람길을 만드는 일이었어요.

팽목항은 참사 현장은 아니에요. 그러나 모든 가족이 기다렸고, 모든 봉사자들이 모여들었고, 전 국민이 함께 울었던 장소였어요. 아직도 참사 후 들렀던 팽목에서 들었던 소리가 귓가에 맴돌아요. 방파제에서 바다를 향해서 아이 이름을 부르는, 마치 울부짖는 짐승의 소리와도 같았던 그 소리, 거센 바람 소리. 정말 등짝이 마른 통나무 장작처럼 쩍 갈라지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또한 우리 언론이 어떻게 잘못되고 우리 정부가 권력을 위임해 준 시민들을 어떻게 배반하고 기만했는지를 지켜봤던 현장이거든요. 그리고 아이들을 비롯한 304명이 차가운 물 속에서 처음 뭍으로, 가족들 곁으로 올라왔던 땅인 거예요. 이건 역사거든요. 남겨져서 기억되고 성찰되어야 할 뼈아픈 대한민국의 역사 현장인 거죠.

하지만 지리적으로도 너무 멀고 외진 곳에 위치해 있다 보니 팽목에서 세월호참사의 흔적이 이내 사라질 것 같아 보였어요. 진도군도 팽목항을 역사적 현장으로 보존하는데, 냉담하고 부정적이었고요. 사람들이 오지 않는 현장은 지킬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세월이 지나도 팽목을 기억하고 오게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하다가 다다른 결론이 길이었어요. 길을 만들기 위해 답사차 진도의 지도를 출력해서 걷는데, 아, 진도가 정말 아름답더라고요.

길은 만들기로 했는데 아무도 경험이 없잖아요. 처음에는 참사 직후 피해 가족들이 대통령을 만나러 가겠다고 팽목항에서 진도대교를 향했던 길을 코스로 삼았어요. 그리고는 길을 만들어본 경험이 있는 분들을 초청해서 의견을 구했는데, 그분들이 딱 한 마디 하시는 거예요.

“투쟁의 길을 걸을지 상생의 길을 걸을지 선택해야 한다. 사람이 사는 길을 만들고, 사람의 길을 걸으려고 한다면 진도대교로 가는 길은 아니다, 저 도로를 평상시 누가 걷겠냐.”

그러고 보니 팽목에서 진도대교로 이어지는 길은 차도라 경찰이 옆에서 호위해주지 않으면 안전하게 걸을 수 없는 길이었어요. 그때 깨달았어요. 매일이 투쟁일 순 없구나. 세월호를 기억하는 길은 사람들 속에, 일상에 있을 때 긴 생명력을 가질 수 있구나. 사람들 속으로 한 발씩 한 발씩 더 다가서야겠구나.

진도 분들과 함께 낫질을 하고 도끼질을 하며 마을로 향하는 길을 냈어요. 2018년 4월, 세월호참사 4주기에 맞춰 팽목항을 가운데 두고 팽목마을을 거쳐 마사마을, 갈대숲길을 걷는 팽목바람길과 서망마을 쪽으로 향하는 옐로우로드를 열었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 달에 한 번씩 같이 걸은 횟수만도 어느새 예순 번이에요. 또 단체로, 개별적으로 와서 걸으신 분은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꾸준하고요.

몸이 기억하도록

우리는 이 길을 결코 완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요만큼만 걸어도 돼요. 여기 온 것만으로도 이미 너무 훌륭하거든요. 팽목 세월호 기억관에 들려서 묵념하고, 기다림의 등대 한 번 바라보고, 참사해역을 멀리서나마 느끼고 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거든요.

그리고 웃고 떠들며 걸으면 어때요? 상관없어요. 초반에만 해도 정말 과묵하고 무겁게 걸었는데, 어느 날 청소년들을 보니 웃고 떠들고 농담하고 노래 듣고 이러면서 이 길을 걷고 있더라고요. 그게 그렇게 좋았어요. 또래 아이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를 희생된 아이들이 들으면 어떨까? 그게 또 다른 위로이지 않을까? 오는 사람들이 늘 무겁고 슬프면 그 영혼도 그러하지 않을까?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올래길을 걷고, 둘레길을 걷는 것처럼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보고 생각하고 같이 얘기하고 걸으면 좋겠어요. 팽목에 지금 기억관이 있지만 그곳을 방문하기 위해서만 오긴 쉽지 않거든요. 하지만 여기 와서 한 번 길을 걸어본 사람들은 잊지 않거든요. 기억의 벽도 그래요. 손바닥만 한 타일에 뭐 그리 대단한 걸 적고 그렸겠어요. 하지만 내 손이 닿아 무언가 함께한 건 잊지 않고 찾아오게 만드는 힘을 갖는 거거든요. 그래서 몸이 기억하는 것들을 해왔던 거고, 지금도 하고 싶은 거죠.

매해 팽목항에서 활동하는 단체들이 기억식을 여는데 올해 9주기 기억식은 쉽지 않았어요.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자기 생업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제 할 만큼 했다는 목소리들도 많아요. 그럼에도 할 수 있는 건 동료들과 함께하기 때문이에요. 9주기 기억식을 안산으로 집중하자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곳 주민들이 안산까지 가기에는 너무 멀어요. 무엇보다 팽목을 비울 수가 없거든요.

개인은 자기가 살기 위해 잊음을 선택할 수 있지만 공동체는 함께 살아가기 위해 기억을 선택해야 하잖아요. 오래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함께 마음을 모으고 몸으로 느끼는 자리를 갖는 건 정말이고 소중해요.

동화, 마땅히 그러해야 할 세계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랑 무슨 관계가 있기에 동화 작가들이 이렇게 열렬히 활동하냐고 물어요. 동화 작가에게 사회적 문제나 어린이 교육, 인권의 문제는 분리되지 않아요. 어린이는 사회 속에 존재하고 그 사회 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니 동화작가들은 사회문제나 어린이 문제를 주의 깊게 바라보고 참여해요. 4대강 건설을 반대하고, 용산참사와 쌍용자동차 파업 투쟁의 집회현장에서 우리 작가들이 시를 읽고, 투쟁에 참여한 이들의 자녀들과 함께 책을 읽으며 마음을 어루만지는 활동을 해왔던 건 이런 사회에서 어린이들이 제대로 꿈을 꿀 수 없기 때문이에요.

또 동화는 마땅히 그러해야 할 세상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동화는 옛날이야기와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어요. 사람들은 동화와 옛날이야기가 허무맹랑하고 뻔해서 시시하다고 말하지만, 그 이야기는 인간의 삶의 본질에 관한 것들이에요. 수백, 수천 년 동안의 민중들의 삶과 철학, 지혜가 담긴 현자들의 비기 같은 거죠. 특히 피지배자들이 세월 속에서 어떻게 살아왔고 그들이 꿈꾸는 세상은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요. 다수의 민중들이 부자나 양반한테 맨날 시달려 삶이 너무 힘들고 고달프지만, 그 고난을 넘어 삶의 주체로 당당히 서서 무언가에 도달하는 것. 그게 행복한 결말의 세상인 거죠. 도달하지 못하면 죽어서라도 도달하고 싶다는 바람이 담겨 있기도 하고요.

지금도 이 세상은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 힘센 사람과 약한 사람, 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 등으로 층져있어요. 이 층으로 우위가 생기는 게 아닌 생명과 존중, 평등과 평화가 우선시 되는 세상으로 바뀌어야 하는데, 그 길은 고난의 길이기도 해요. 이 길에서 괴물을 만나기도 하고, 이간질 하는 사람의 간사한 계략에 빠지기도 해요. 그리고 적은 외부에만 있는 게 아니라 내부에도 있어요. 그러니까 나를 성찰하는 게, 함께 힘을 합치는 게 매우 중요해요. 그래야만 마땅히 그러해야 할 세상에 도달할 수가 있는데 동화는 이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거죠.

세월호참사로 본다면 진상이 규명되고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책임을 지고, 아픔을 겪은 피해자들은 위로받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세상이, 마땅히 그러해야 할 세상인 거거든요.

그래서 지금 우리 동화작가들이 하는 일은, 마땅히 그러해야 할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온몸으로 쓰고 있는 거예요. 언젠가 몸으로 쓴 이야기가 동화로 쓰이고 전해질 날이 오겠죠?

주관 – 4·16재단 후원 –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담당 – 모금홍보팀 유진솔 글 – 유해정 (성공회대 사회과학연구소)

 

 

[후원계좌]

226401-04-346585

(국민,416재단) 

 

[후원문자]

#25404160

(한건당 3,300원)

 

[후원ARS]

060-700-0416

(한통화 4,16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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