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혜영 님] – 사람들의 삶 가까이 다가가야만 보이는 게 있어요

사람들의 삶 가까이 다가가야만 보이는 게 있어요

<‘재난 현장 속 자원봉사자’를 찾습니다> 곽혜영 님

「이 폐허를 응시하라」. 리베카 솔닛은 북아메리카에서 발생한 다섯 건의 대형 재난을 깊이 연구한 뒤 이런 책을 썼다. 폐허가 된 삶, 폐허가 된 사회를 오랫동안 바라본 솔닛은 거기서 무얼 발견했을까.

재난이 할퀸 삶과 사회는 종종 ‘지옥’에 비유된다. 지옥은 우리에게 고통과 절망이 소용돌이치는 곳으로 상상된다. 그런데 솔닛은 그 지옥 같은 재난 상황에서 회복력, 동정심, 용기, 연대의식 같은 인간의 깊은 속성이 두드러지게 발현된다는 점을 발견했다.

인간은 고통과 절망을 마주할 때, 회복과 희망을 피워낸다. 재난 현장에는 언제나 부족한 시스템의 틈새를 메우며 생명을 구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그러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 사회 곳곳의 재난 현장을 조명하고자 한다.

재난 현장의 밥 한 그릇

올해 3월 경상북도 울진에서는 큰불이 났다. 3월 4일에 시작된 불은 자그마치 열흘이나 이어졌다. 축구장 3만 개를 이어 붙인 만큼의 거대한 숲이 허무한 연기로 사라졌다. 숲이 품었던 수많은 생명들도 검은 재가 되었다. 숲은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기도 했다. 송이를 채취해 삶을 잇던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일터를 잃었다. 주택 319채, 농축산 시설 139개소, 공장과 창고 154채도 불길에 휘말렸다. 이 모든 숫자 하나하나에 헤아릴 수 없는 삶의 무게가 담겨 있다.

울진 산불은 이미 ‘역대급’으로 기록되었지만, 원자력발전소와 LNG가스저장소로 불길이 번졌다면 그야말로 상상할 수 없는 더 큰 재난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최악의 상황을 막아내기 위해 매일 4천여 명이 진화작업에 투입되었다. 불길이 거셌던 만큼 불길을 막으려는 사람들의 노력도 필사적이었다.

진화인력의 뒤를 이어 화재 첫날부터 현장을 누빈 이들이 또 있다. 바로 식사를 책임지는 자원봉사자들이었다. 끼니와 뒷정리를 하는 사람 없이 돌아가는 현장은 없다. 불타는 집에서 몸만 간신히 챙겨나온 이재민들에게는 당장 먹고 마실 것이 필요했다. 구호품을 나누고 이재민들의 몸과 마음을 보살피는 일에도 당연 자원봉사자의 손길이 닿아야 했다.

혜영씨는 그러한 일에 함께한 자원봉사자 중 한 명이었다. 울진군 죽변면에 사는 혜영씨는 산불이 일어난 지 몇 시간 뒤 울진군종합자원봉사센터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상황의 심각성이 감지되면서 자원봉사자들이 소집된 것이다. 그녀는 ‘여성자원봉사회’ 소속으로 울진에서만 19년 가까이 봉사활동을 해온 ‘베테랑’이다.

“저희는 연락받으면 바로 오죠. 무슨 일이 있지 않은 한, 바로 와요.”

현장에 도착한 혜영씨는 주먹밥부터 만들었다. 당장 먹을 수 있으면서 동시에 전달이 쉬운 음식부터 시작했다. 밥차를 운행하게 되면서는 밥과 반찬을 만들었다.

주불이 진화되기까지 열흘간 여러 지역에서 7천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울진을 찾았다. 대부분 불이 진화된 뒤, 돌아갔지만 혜영 씨를 비롯한 지역의 자원봉사자들은 훨씬 오래 구호 현장에 머물렀다. 이재민들의 삶을 회복하기 위한 구호활동은 산불이 꺼진다고 해서 바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젊은 사람들이야 빨리 대피할 수 있지만, 어르신들은 그렇지 않잖아요. 그리고 이 지역 자체가 어르신들이 많아요. 자식이 있는 분들은 자녀가 오겠지만, 그렇지 않은 어르신들이 계시니까 살펴드려야죠.”

혜영씨는 이재민을 위한 호텔에서 한 달 가까이 식사와 빨랫감을 챙겼다.

“어르신 한 분이 못 걸으셨어요. 호텔방에서 계속 텔레비전만 보고 계시기에 속으로 ‘얼마나 답답하실까’ 생각했죠. 식사 준비 사이에 잠깐 짬이 나서 어르신 휠체어를 밀고 1층으로 내려왔어요. 너무 좋아하시는 거예요. 로비에 앉아서 왔다 갔다 하는 사람만 봐도 좋으신 거죠. 마을 사람들이 다 거기에 계시니까 서로 인사하고. 그렇게 좋아하시는 거 보고 너무 기뻤어요.”

집 한 채가 물에 잠기면

혜영씨는 서울에서 살다가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받으며 남편의 고향인 울진으로 이주했다.

“심적으로 정말 힘들었어요. 그런데 이러고 있으면 안 되겠다, 뭐라도 해야겠다 싶더라고요. 그러다 우연히 봉사활동에 눈 뜨게 된 거예요.”

남을 살리는 줄로만 알았던 활동은 실은 나를 살리는 일이었다.

“자원봉사를 시작하며 우울한 마음이 줄어들고 기쁨이 커졌어요. 시골에 사는 어르신, 특히 독거 어르신들이 생일잔치 같은 걸 할 수 없잖아요. 생일을 축하해 드리는 사소한 일부터 시작해서 봉사를 하면 할수록 저에게 큰 보람이 되더라고요. 누가 하라고 해서 하면, 힘들고 어렵겠죠. 그런데 내가 기뻐서 하는 거잖아요. 남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니 쉼 없이 했어요.”

최근 수년 사이 경북 울진은 산불과 수해(2019년, 태풍 미탁)를 모두 겪었다. 재난 현장 구호는 또 다른 세계였다.

“태풍 ‘미탁’이 왔을 때, 울진 시내 강이 범람하는 걸 보니 굉장히 무섭더라고요. 하천이 어느 순간, 엉뚱한 데로 넘어가는 거예요. 여기 배수 펌프장이 문제가 돼 시내도 다 잠겼었거든요. 수해를 입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한 곳까지 모두 물에 잠겼었죠. 피해 범위가 엄청났어요.

집 한 채가 물에 잠기면 수습하는 데, 정말 오래 걸려요. 장롱이며 이불이며 가재도구 다 꺼내는 데만도 한참이에요. 집으로 물만 들어오는 게 아니잖아요. 흙이며 나뭇가지 같은 게 같이 들어와요. 여긴 바다하고 만나니까 뻘까지 엉켜요. 그게 차곡차곡 쌓이면 삽질할 때, 정말 무겁죠. 미끄러우니까 다칠 수도 있고. 닦아내는 데 굉장히 힘들었어요. 물을 뿌려서 닦아내면 좀 수월한데, 수도가 끊긴 곳도 있었죠.”

그래도 수해 피해를 입은 집은 엉망이 된 곳을 닦아낸 후, 들어갈 수라도 있었다. 화재로 전소된 집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아흔이 다 된 어르신이 계셨는데, 집이 모두 타버렸어요. 어쨌거나 힘들지언정 집은 다시 지으면 되는데, 그 안에 있던 추억거리가 다 타버린 거는 되돌릴 수 없잖아요. 그게 너무 슬프다고 하시는 거예요.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혜영씨는 그 곁에서 함께 눈물 흘리며 조심스레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면서 많은 걸 배워요. 작은 일에 감사하는 마음도 생겼어요.”

돈도 안 생기는 일을 왜 계속 하냐고요?

혜영씨는 때때로 울창한 소나무숲이 시뻘건 불길에 타들어 가던 날의 꿈을 꾼다.

“어떡해, 어떡해. 저거 어떡해. 모든 걸 잃어버려서 저분들 어떻게 하지. 저 불을 꺼줘야 하는데… 제가 막 안타까워하면서 울고 있는 거예요.”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힘이 혜영씨의 가슴에 깊은 슬픔을 불러일으켰다. 그 힘으로 남을 도왔지만, 치유의 힘은 온전히 자신의 내면에서만 나올 수는 없는 법. 재난 현장의 조력자들에게도 지속적인 심리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초창기 봉사할 때보다는 많이 좋아졌죠. 처음에는 맨땅에 헤딩하듯 활동했어요. 우리끼리 돈 걷어서 활동했는데, 지금은 지원이 생겼거든요. 울진군종합자원봉사센터에서 밥차와 목욕차를 운행하니 이제 우리는 몸만 가서 해드리면 되는 거예요.”

자원봉사센터는 ‘자원봉사활동기본법’에 따라 자원봉사활동을 증진하고 체계화할 목적으로 설립된 비영리단체다. 울진군종합자원봉사센터는 2008년 출범했다.

“봉사활동을 지속적으로 하면 카드가 나와요. 상점을 이용할 때, 할인을 해주죠. 또 봉사활동을 하다가 다칠 수 있으니 보험도 들어줘요. 봉사자들을 위한 환경이 조금씩 나아지는 거 같아요. 바람이 있다면, 봉사자들이 다같이 모여 쉴 만한 공간이 조성되었음 좋겠어요. 모임을 할 때면, 늘 장소를 따로 빌려야 하거든요.”

사실 혜영씨는 무엇보다 봉사활동과 자원봉사자를 바라보는 인식이 개선되기를 기대한다.

”봉사자들은 마음을 내서 활동하는 사람들이니까 함부로 대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봉사하러 왔으니까 이런 일은 당연한 거라는 듯 대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와는 별개로 봉사활동을 안 하는 사람들은 되려 저희를 의아하게 바라보기도 하죠. “아니, 돈도 안 되는데 왜 봉사를 하고 다녀? 자기 시간 버리면서.” 경험해 보면 이렇게 행복하고 즐거운데, 경험도 안 해본 사람이 함부로 말하는 걸 들을 때면 힘 빠질 때가 있죠.”

자원봉사활동은 혜영씨에게 개인적 보람만으로 머물지 않는다. 책임감까지 부여한다.

“자원봉사자가 없으면 우리 사회가 안 돌아갈 거예요. 무슨 일 생기면, 공무원들이 다 나와서 할 수는 없잖아요. 그 한계를 봉사자들이 채워주는 거죠.”

올해 나이 62세, 마음과 달리 몸 쓰는 일이 힘에 부칠 때도 많다.

“한번은 우스갯소리로 우리 회원분과 그런 말을 나눴어요. 왜 이렇게 온몸을 다 바쳐서 봉사를 하지? 다들 왜 일 못해서 안달 난 사람처럼 이러는 걸까? (웃음) 봉사하는 게 몸에 뱄는지, 무슨 일이 있을 때 가만히 있잖아요? 편치가 않더라고요.”

혜영씨가 자원봉사로부터 얻는 기쁨은 성장하는 기쁨이기도 하다.

“봉사활동을 안 하고 있었더라면 내가 사는 곳만 알았을 거예요. 봉사를 하면서 자연스레 울진 곳곳을 다니게 됐어요. 이동 밥차를 하거든요. 명단을 뽑아서 마을로 가요. 울진 사정을 세세히 알게 되는 거죠. 울진에 이렇게 ‘좋은 데가 많구나’도 알게 되고. 덕구온천 가는 쪽에는 나무가 무성한 게, 그전에 참 보기 좋았거든요. 이번 화재로 전소되어 정말 마음 아파요.”

단지, 마음을 다해서

자원봉사센터 간 지역 연대 활동이 활발하다. 인터뷰 전날, 혜영씨는 태풍 ‘힌남노’로 수해를 입은 포항의 한 마을에 다녀왔다. 울진에서 쌓은 경험은 포항 수해복구 현장에도 도움이 됐다.

“울진은 물난리 불난리를 모두 겪으며 연습이 됐지만, 보통은 재난 대응이 체계적이지 않을 때가 많죠.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나면 우왕좌왕하다가 놓쳐버리는 게, 참 많아요. 좀 늦더라도 체계적으로 해야 해요.

보통 공무원들은 매뉴얼대로 하잖아요. 탁상행정 말고, 발품을 팔라고 말하고 싶어요. 서류상으로는 괜찮은데 막상 집에 가면 너무 상황이 안 좋은 어르신도 계시고, 서류상으로는 별 거 없는데 막상 가보면 너무 잘 살아서 지원이 필요치 않은 어르신도 계세요. 내가 사명감을 갖고 현장에 가봐야 해요.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을 찾아내는 행정이 마련됐으면 좋겠어요.”

재난현장에 도움의 손길을 보내는 이들에게도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저희가 물품 관리도 도맡아 할 때가 있거든요. 좋은 물품을 신경 써서 보내주시는 분들도 물론 많죠. 그럼에도 ‘왜 이러한 걸 보냈지’ 싶은 물품도 분명 있어요.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음식과 도저히 입을 수 없는 옷이 대표적이에요.”

재난을 당한 사람은 위로와 회복이 필요한 사람들임이 분명하다. 혜영씨는 신중한 지원을 강조한다.

“저희가 밥차 할 때, 채소나 고기 같은 것도 모두 좋은 걸로 써요. 허투로 안 해요.”

음식은 배만 채우지 않는다. 혜영씨는 마음의 허기까지 채울 수 있다고 믿는다.

“봉사자 마음이 아무리 안타까울지언정 재난 피해자분들 만큼은 아니거든요. 그러니 함부로 위로할 수가 없죠. 단지 마음을 다해서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이거 드시고 건강하셨으면 좋겠어요. 아프지 않으셨음 좋겠어요.”

혜영씨는 고령의 이재민들을 위해 임시주택 청소를 지원하기도 했다.

“어르신들 댁에 청소하러 가면 상한 반찬 같은 것도 함부로 버리면 안 돼요. 내가 보기에는 버릴 것 투성이라고 해도 어르신들 입장에서는 아닐 수 있거든요. 허락받고서 버려요. 거긴 어르신 공간이니까.”

타인을 위로한다는 것은 내가 그에게 무엇을 주는 행위가 아니다. 서로의 존엄을 지키는 일이다.

피해복구는 지금도 진행중!

세월호참사에 대한 기억은 혜영씨에게도 생생하다.

“제가 늦둥이가 있어요. 우리 아이가 단원고 학생들과 같은 또래이기에 마음이 쓰이죠. 저는 돈에 대한 사회인식이 좀 바뀌어야 되지 않나 싶어요. 돈만 생각하며 낡은 배를 개조하니.. 그런 일이 벌어졌잖아요. 우리 사회가 좀 진실됐으면 좋겠어요.”

재난도, 참사도 사람들의 기억에서 쉽게 잊히면 안 되는 이유가 다 있다.

“아직 울진 산불 피해가 다 복구된 게 아니에요. 불에 탄 걸 다 치우지도 못했어요. 특히 숲은 오랜 시간이 걸려야 회복되잖아요. 그러니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주관 – 4·16재단 / 후원 – 사회복지공동모금회 / 담당 – 모금홍보팀 유진솔 / 글 – 박희정 (인권기록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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