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의 삶을 봉사로 채웠어요. 모두의 식탁을 펼치는 마음이랄까요
<‘재난 현장 속 자원봉사자’를 찾습니다> 조기상 님
1946년생인 조기상 씨는 수원에 있는 한 섬유제조업체에서 청춘을 다 보냈다. 무려 25년을 한 곳에서 일했다. 1997년 외환위기에 휩쓸려 회사가 사라졌을 때 조기상 씨의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에게 봉사활동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피어올랐다.
돌이켜보면 자신은 이 사회에서 많은 걸 받은 사람 같았다. 조기상 씨가 성실한 노동자로 살아온 25년은 한국이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어내던 시기였다. 탄탄한 회사에서 안정된 정규직으로 일하면서 남매를 키워냈다. 회사는 사원복지도 좋아 대학까지 자녀 학비도 지원해주었고 장기근속한 직원은 부부동반으로 해외여행도 보내주었다. 큰 탈 없이 남매가 성장해 제 갈 길을 찾아간 것에 감사했다.
그러니 여생은 남을 위해 봉사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퇴 후의 삶을 남들과 다르게 채우고 싶기도 했다. 집에서 가만히 있거나 경로당에서 내기 화투를 치는 일은 성미에 맞지 않았다.
수원에서 안산으로 이주해 새로운 터전을 꾸린 뒤, 조기상 씨는 우연한 계기로 안산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의 문을 두드렸다. 대안의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확산하는 활동에 참여하다가, 2006년 안산시자원봉사센터를 통해 본격적인 자원봉사활동에 발걸음을 내딛게 된다. 그렇게 시작한 자원봉사는 그의 삶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가장 처음 참여한 봉사활동은 ‘경기안산항공전’의 진행요원. 2016년 이후 중단됐지만, 한때 아시아 최대규모의 항공 축제였다.
“지역에서 큰 행사가 하나 치러지려면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대단히 많이 필요해요. 안산시의 대표적 행사인 ‘안산국제거리극축제’의 경우 250명가량의 자원봉사자가 활동합니다. 2교대로 나뉘어 하루 8시간씩 참여해요. 경기안산항공전의 경우 많을 때 500명가량의 시민이 자원봉사에 참여했어요.”
자원봉사자들은 행사 전반에 걸쳐 다양하게 활동한다.
“관람객이 버린 쓰레기를 정리하고, 안내부스와 체험부스에 배치돼 관람객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요. 휠체어나 유아차를 지원하는 일도 기본이죠. 봉사자들의 활동과 식사를 챙기는 일 또한 당연 봉사자의 몫입니다.”
15년 넘게 자원봉사활동을 하며 조기상 씨가 가장 중점을 둔 활동은 식사나눔이다. 안산시자원봉사센터는 2011년부터 지역 노인들에게 무료로 한 끼 식사를 제공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안산시는 상록구와 단원구로 이루어져 있는데, 상록구는 상록수역 ‘늘푸른광장’에서, 단원구는 ‘글로벌다문화센터’에서 진행해왔다. 안산 시민과 기업의 후원으로 진행되며 이·미용, 간단한 건강검진 등이 함께 이루어진다.
“급식봉사는 크게 세 파트로 나눠서 활동합니다. 먼저, 아침에 식자재가 들어오면 준비하는 팀이 필요해요. 조리 담당이 조리를 할 동안, 몇몇 사람은 배식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식탁과 의자를 세팅해요. 그다음에 배식하는 팀이 있어야겠죠. 배식이 끝나면 설거지와 뒷정리를 맡을 팀도 필요하죠. 한 번에 100명가량의 자원봉사자가 함께 움직여요. 상록수역은 교통 여건이 좋으니 어르신들이 600명가량 오세요. 글로벌다문화센터 쪽은 300명가량. 즉 일주일에 1천여 명에게 무료급식을 계속해왔어요.”
무료급식소는 노인들에게 ‘밥 한 끼’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분들이 밥 안에 든 저희의 마음을 느끼시는 거예요. 무엇보다 여기 오면 대화할 상대가 있잖아요. 또래 사람을 만나고,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접하실 수 있는 거죠.”
노인들은 단순 끼니 해결뿐 아니라, 사회 속의 한 사람이 되기 위해 배식소를 방문한다는 조 씨. 사회는 이렇게 서로를 연결하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만들어진다.
조기상 씨는 식사나눔에 꾸준히 참여해오다 현장을 총괄하는 역할까지 맡게 되었다. 그런데 요즘 수심이 가득하다. 야외에서 진행되는 식사 나눔의 특성상 4월부터 10월까지만 할 수 있건만, 올해는 시작도 못 했다. 상록수역 광장을 사용할 수 없게 된 까닭이다. 광장 사용에 대한 허가권을 쥔 상록수역 측에서 광장 사용을 불허했다. 무료급식으로 인해 노숙인 증가가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단원구 글로벌다문화센터에서 진행되던 무료급식은 코로나19가 확산되며 중단된 뒤 재개되지 못하고 있다. 이곳 역시 상록수역과 마찬가지로 장소를 내어준 곳에서 장소 사용을 더 이상 허가해주지 않아서다.
“다른 장소를 물색 중인데 마땅한 장소가 없죠.”
세월호참사 이전에는 일주일에 4회씩 식사나눔을 진행했으나, 세월호참사 이후부터는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참사 직후 안산시 주민들의 피해회복에 사회적 자원이 집중된 데다, 코로나19로 인한 펜데믹이 겹치며 기존에 형성되었던 자원망 상당 부분이 흩어져 버렸다. 조기상 씨는 그런 상황에서도 꾸준히 지원을 계속한 시민들과 기업들에게 고맙다고 했다.
아쉬운 것은 행정과 정치다. 봉사활동의 여건이 정치인들의 이해득실에 따라 뒤바뀌는 모습을 보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참 씁쓸하다는 그. “안산시에서 무료급식을 위한 장소 혹은 비용을 지원하지 않을지라도, 안산시민들이 자체적으로 무료급식에 관한 우호적인 분위기는 만들어갈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러한 노력들을 기울여주면 좋겠어요.”
조기상 씨는 취약계층을 직접 만나는 공무원들에게는 복지의 사각지대에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을 기울일 것을 당부한다.
“외출할 수 있는 노인들은 ‘귀동냥’이라도 할 수 있거든요. 집안에만 있는 노인들은 그러하질 못하죠. 그러다 보니 나눔의 기회가 있을 때에도 늘 받는 사람만 또 받게 되기 쉬워요. 정말이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는 노력이 필요해요. 우리 봉사자들은 길 가다 폐지 줍는 어르신이 있으면 유심히 봐두기도 하거든요.
조기상 씨는 재해복구현장에도 수차례 달려갔다. 2013년 7월 경기도 이천(태풍), 2014년 2월 강릉(폭설), 2019년 4월 고성(산불)에 이어 지난해 안산의 수해 현장 복구활동에도 동참했다.
겨울에는 폭설, 여름에는 폭우로 인한 집과 비닐하우스를 복구하는 일은 고되고 위험했다. 자동차나 중장비가 들어갈 수 없는 상황에서 20여 명이 삽과 빗자루를 들고 눈이나 흙을 일일이 파헤쳐야만 했다. 단단히 쌓인 흙은 삽마저도 튕겨냈다.
“현장에 처음 갔을 땐 암담했죠. 이걸 어디서부터 치워야 하나, 싶더라고요. 눈 쌓인 지붕에 올라가 눈을 치우다 안전사고가 날 수 있잖아요.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봉사자들을 위한 교육이 있으면 좋겠어요.”
현장에서 오래 활동하면 할수록 자원봉사자 역량강화를 위한 교육과 지원의 중요성을 절감한다는 그. “다들 좋은 마음으로 봉사하러 오지만, 활동을 하다 보면 마음이 흐트러질 때도 있잖아요. 좋은 마음으로 왔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을 때도 분명 있거든요. 화합하고 협업하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경험과 지식이 탄탄한 전문가에게 교육받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면 참 좋겠어요.”
자원봉사자들은 특별한 대가를 바라고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대우받아도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
“자기는 손 하나 까딱 안 하면서 저희에게만 지시 내리는 공무원을 보기도 해요. 갑작스러운 재해가 발생했을 때 봉사자들은 무조건적으로 동원될 수 있다는 암묵적인 인식이 있는 거죠.”
공무원들이 현장을 잘 모른다는 느낌이 들 때는 화가 나기보다 안타깝다는 조 씨.
“재해 복구에 투입되면 첫날은 어렵지만, 대신 요령이 생겨 일이 빨라져요. 그런데 투입 다음 날 다른 쪽 인원이 부족하다고 갑자기 그쪽으로 옮겨가라고 해요. 그런 일이 종종 있어요. 자원봉사센터는 저희와 오랜 교류가 있으니 저희의 역량을 잘 알고 있잖아요. 가령 지역에서 큰 행사가 열린다고 해봅시다. 수 백명의 봉사자들이 서로 잘하는 게 다를 거 아니에요. 저 사람은 체험 부스 운영을 잘해, 이 사람은 쓰레기 처리를 잘해, 이 사람은 주차 관리를 잘해, 이런 주특기가 있거든요. 그러한 부분을 이해하고 적절히 배치하면 더 좋지 않겠어요? 그런데 그냥 단순히 필요한 숫자만큼 쪼개어 배치해 버리는 경우가 많아 여러모로 안타깝죠.”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참사가 일어나던 날 조기상 씨는 마침 안산에서 식사나눔에 매진하고 있었다. 사고 소식을 듣고 큰 충격에 빠졌다. 다음 날 새벽, 자원봉사센터의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버스로 함께 팽목항으로 내려갔다. 참사 현장은 어수선했다. 비까지 주륵주륵 내려 밤에 몸을 뉘일 곳 찾기도 어려웠다.
“처음에 내려가서는 3일 있다 올라왔어요. 옷 갈아입고 또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기를 열 번 쯤 반복했죠.”
조기상 씨는 4월 17일부터 35일간 매일 팽목항과 안산 합동분향소를 지켰다.
“현장에서 속속들이 지켜보았으니 세월호참사를 떠올릴 때면 너무나 마음이 아프죠. 지금도 단원고 앞을 지나면 여러 생각이 스쳐요. 자원봉사센터에서 트라우마 치료를 받으라고 권했는데 그럴 시간이 없었어요. 그럴 생각도 없었고. 심리치료를 받는다는 게 익숙치 않았거든요. 좀 힘이 들었죠. 틈날 때마다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려고 굉장히 노력했어요. 지금은 많이 나아졌죠.”
어디에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세상의 모습이 달리 보인다는 사실을 그는 오랜 봉사활동을 통해 깨달았다. 그러므로 계속 ‘움직이는 사람’이고 싶다고… 앞으로도 그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 변화가 필요한 곳으로 다가가는 자원봉사자로서 살아갈 것이다.
“종종 봉사활동을 하던 중 회의감이 들기도 해요. 그래도 돌아서면 또 잊어버리죠. 우리의 활동이 누군가에겐 꼭 필요할 테니 계속합니다. ‘감사합니다’, ‘밥 잘 먹었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은 그 말이면 충분해요. 우리는 칭찬에 약하거든요.” (웃음)
그가 타인에게 마음을 다하듯, 그 역시 누군가에게 한 아름 기운을 받을 수 있기를. 그래서 결과론적으로 곳곳에서 그의 지속되는 봉사를 오래도록 되새길 수 있기를, 하고 바랐다.
주관 – 4·16재단 후원 –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담당 – 모금홍보팀 유진솔 글 – 박희정 (인권기록센터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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