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부터 정확히 6개월 전인 2023년 4월 11일 오전 8시 30분경. 강원도 강릉시 난곡동에서 발생한 작은 산불이 건조한 날씨와 강한 바람으로 대형 화재참사로 바뀌는 데에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축구장 530개와 맞먹는 379ha의 산림이 불에 타고, 70여 곳의 건물 피해와 600여 명의 이재민 피해자가 발생했습니다.
다행히 주불은 8시간 만에 진화가 되었으나, 당시 워낙 바람이 거셌던 탓에 화재피해는 심각했습니다. 현지 피해주민의 말에 따르면 도깨비불이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산에서 산을 타고 넘어가는 것 같았다고 했습니다. 게다가 산불이 금방 잡혔다는 소식에 국민적 관심 및 지원은 상대적으로 낮은 상태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22년 동해안산불 현장지원을 함께 진행했던 <더프라미스 국제재난심리지원단 이지스>에서 4·16재단을 통해 세월호 가족의 현장지원에 대한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세월호참사 9주기 기억식이 끝난 직후라 세월호 가족들의 몸과 마음이 더욱 무겁고 힘든 시기였지만, 화재참사를 당한 강릉지역의 아픔을 보듬기 위해 10명의 세월호 가족이 재난현장에 자원했습니다. 4월 20일부터 3일간 3개 조로 나누어 재난참사 현장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나섰습니다.
막상 도착한 강릉지역의 화재피해는 생각보다 심각했습니다. 흡사 전쟁터를 연상케 하는 폐허와 다름없는 재난현장 모습에 방문한 가족들의 마음은 참담하기만 했습니다. 불과 반나절도 안 되는 시간에 이렇게 광범위한 산불피해가 발생한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습니다. 세월호 가족들은 이전에 재난참사를 경험했던 피해자로서 산불피해자의 심정이 어떠할지 이해할 수 있게 되어 더욱 마음이 아프고 무거웠습니다.
아픈 마음을 달랠 겨를도 없이 세월호 가족들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현장지원을 진행했습니다. 거동이 쉽지 않은 고령층을 위한 식사도우미와 배식봉사, 산처럼 쌓인 식기류를 깨끗하게 정리하는 일을 포함하여 산불피해 어린이를 위한 쉼터에서의 심리지원 봉사와 몸만 겨우 빠져나온 피해자의 핸드폰에 남아있던 사진을 인화하고 추억을 되새기며 이웃을 위로했던 일까지 갖가지 영역에서 봉사를 수행했습니다.
힘들고 어려웠던 재난현장이었지만 적지 않은 희망도 있었습니다. 바로 피해지역의 아픔을 감싸고 연대했던 봉사단체 및 지역단체들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는 강릉지역에서 세월호를 기억하고 연대했던 많은 단체들 또한 존재했습니다. 강릉지역 세월호 활동가들과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보고서 고맙고 반가운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이러한 마음의 나눔이 강릉지역의 아픔과 상처가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아무는 것 같았습니다. 현장지원에 참여했던 세월호 가족들은 “재난지역의 아픔에 함께 공감하고 마음을 나누는 것이 재난회복의 출발점”이라고 목소리를 모았습니다.
산불 참사로부터 6개월이 지난 후, 강릉시에서는 세월호 가족들의 현장 활동에 대한 고마움을 감사장으로 표현해 주셨습니다. 감사장을 바라보고 있자 하니 다시금 강릉에서의 시간이 상기됩니다. 감사한 마음을 토대로 세월호 가족들은 지속적으로 재난 지역의 피해를 다잡는 데 함께할 것임을 다짐하였습니다. 미처 복구되지 못한 강릉지역 산불피해 주민분들의 빠른 쾌유와 회복을 또 한 번 기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