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십육일
x
고명재
2023년 11월의 《월간 십육일》에서는 고명재 작가님의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 서슴지 말고 기억해요 >
그러니까 시는
여기 있다유리빌딩 그림자와
노란 타워크레인에서 추락하는 그림자 사이에
도서관에 놓인 시들어가는 스킨답서스 잎들
읽다가 덮은 책들 사이에
빛나는 기요틴처럼 닫힌 면접장 문틈에– 진은영, 「그러니까 시는」 중에서
인류가 남긴 기록물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거기에는 ‘있음’에 관한 사랑이 있다. 벽화에는 거대한 향유고래가 그려져 있고 상업 도시의 석판에는 물품명이 쓰여 있고 죽간에는 아름다운 요청이 적혀 있고 책에는 고요한 시가 있다. 편지, 불경, 성경, 사전, 무늬, 항소문, 법전, 도록, 지도, 탱화, 스태인드글래스. 이 모든 것은 ‘존재의 기록’이다. 무언가가 살고 이루고 존재했다고 공표하는 마음의 순간들. 전공 서적에 들꽃을 몇 송이 끼워두었다. 그 책을 십 년 뒤에 펼쳐보았다. 압화가 발끝에 툭툭 떨어졌다. 민들레, 제비꽃, 메리골드와 할미꽃. 십 년 전의 봄이 그렇게 찾아온 것이다.
*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있음’에 관해 자꾸만 말하고 싶었다. 여기 돌이 있어요. 나무가 있어요. 민들레가 있어요. 떡이 있고 꿈이 있고 당신이 있어요. 손바닥을 보자기처럼 넓게 펼쳐서 가슴을 쓸면서 말하기.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있다고. 밝음으로 당신을 꼭 써내겠다고. 나는 ‘있음’을 말하고 싶어서 썼다. ‘있었던 시간’을 드러내고 싶었다. 그리하여 허무나 허망을 넘어서는 이야기가 우리 안에 여전히 존재한다는 걸 어떻게든 말하고 싶었다. 그 얼굴, 그 모습, 절대 잊을 수 없지. 그 둘레, 그 어깨, 안아주고 싶지. 모든 글은 ‘있음의 역사’이며 모든 글은 ‘사랑의 펼쳐짐’이며 모든 글은 ‘존재의 증명(證明)’이다. 등불을 들고 ‘여기 있어요’라고 말한다. 여전히 내 안에는 그들이 있어요.
“인류 최초로 기억의 기술을 고안한 사람은 그리스의 시인 시모니데스다. 그는 한 연회에 참석했다가 두 소년이 찾는다는 소식에 밖으로 나갔고, 그 직후 땅이 흔들려 저택이 무너졌을 때 홀로 목숨을 건졌다. 이미 자취를 감춘 두 소년이 그가 시에서 종종 예찬한 쌍둥이 정령임을 그는 알아보았다. 유일한 생존자가 된 시모니데스에게 파도처럼 사람들이 밀려왔다. 죽은 자의 흩어진 몸을 찾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 혹은 적어도, 그가 있었음을 확인해달라고. 그가 있었어야만, 그를 애도할 수 있기 때문에.
무너진 저택의 폐허에 서서, 시모니데스는 죽은 자들이 있었던 자리를 손으로 가리켰다. 저기, 저 자리에 연회의 주최자가 앉아 있었고, 그 옆에는 그의 사랑하는 이가, 저기 맞은편 술잔이 깨어진 자리에는 호탕한 웃음을 웃던 이가, 뭉개진 빵 앞에서 조용했던 이가, 포크가 나뒹구는 곳에 대화를 이끌던 이가, 꽃잎 떨어진 자리에 고개 끄덕이던 이가, 저기, 저기, 있었던 이가, 있었노라고. 사람들은 그의 말에 따라 흩어진 조각들을 주워 들었고, 있었던 이가 없어진 것을 마침내 받아들이고 울었다.”
– 목정원, 「어느 미래에 당신이 없을 것이라고」 아침달 중에서
“저기, 저기, 있었던 이가, 있었노라고.” 그렇게 말하는 것도 힘겹던 나날들. 우리는 그 시간을 통과해내며 우리 안에 남겨진 조각들을 소중히 쥔다. 그러니까 시와 노래는 기억술이다. 시와 노래는 생생한 있음의 말이고 아주 작은 것들을 향한 사랑의 찬가다. 만두를 좋아했지. 미역국은 싫어했다고. 겨울이 오면 입김을 뱉으며 활짝 웃었지. 그 작은 단위의 이야기가 너를 꾸린다. 우리 안은 시간을 넘어설 힘이 있어서 가장 보고 싶은 이들이 바로 거기에 거주한다. 그러니 우리 모두가 멸하지 않는 한, 우리 안에 당신은 살아있다. 우리가 가슴이 찢기도록 슬플 때조차 당신은 있다. 정말 깊게 사랑했기 때문에 가슴이 아프고 힘겨운 것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말하겠다. 노래하겠다. 시모니데스는 노래했다. 있음에 있음을, 연거푸 파도처럼 말하고 말했다. 이런 의미에서 사실 그는 ‘특정한 개인’이 아니라, ‘시와 기록’을 뜻하는 이름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시모니데스는 개인이 아니라 기억하는 노래, 즉 우리의 목소리다.
*
얼마 전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엄마 가게 옆에 있는 빵가게 이야기. 우리 엄마는 수십 년 째 시장에서 반찬가게를 하고 있다. 엄마 가게 옆에는 오래된 동네 빵집이 있다. 그 빵집 가게 아들이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생활은 되돌아왔다. 영수 엄마는 여전히 빵을 만들고 우리 엄마는 반찬을 만들고 있다. 그러던 어느 설 연휴에 이런 일이 있었다. 나와 동생은 엄마 가게의 ‘명절 전 주문’을 치러내느라 정신없이 가게 일을 도와야 했다. 밀가루며 달걀, 온갖 재료를 나르고 프라이팬에 몇 백 장의 전을 구웠다. 그렇게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하다가 문득 옆집 빵가게의 유리문을 건너다보았다.
그때 나는 깜짝 놀라 몸이 굳었다. 영수 엄마가 새빨개진 얼굴로 울고 있었다. 밀가루를 치대며 고개를 숙인 채 몇 분이나 말도 없이 펑펑 울고 있었다. 왜 우시지. 처음에는 생각하다가 퍼뜩 그 이유를 알아차렸다. 그날 종일 나와 동생이 엄마 가게에서 일을 돕고 있는 모습을 말없이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가슴에 촛불이 일제히 켜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수백 번 생각하다 눈을 감은 채 나는 영수를 위해 오래도록 기도를 했다. 너희 엄마가 너를 정말 보고 싶어 하셔. 온 힘을 다해 꿈에서라도 찾아뵙도록 해.
우리는 언제나 불가능 앞에 내던져져 있다. 만나고 싶다고 만날 수 없고, 사랑하고 싶다고 겁 없이 사랑을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우리에겐 조그마한 마음이 주어져 있다. 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그 마음 하나를 쥔 채로 우리는 살아야 한다.
그해 나는, 마음을 빵집 앞에 두었다. 눈을 꼭 감고 마음을 포개고 포갰다. 그해 추석, 나는 다시 일을 나갔다. 엄마 가게에서 밤새도록 일을 하고서 다음 날 가게에서 졸면서 포장을 하고 있을 때였다. 바로 그때, 빵집 문이 열리는 걸 봤다. 빵집 문을 열고 “어머니!” 하고 외치는 걸 봤다. 영수 엄마가 활짝 웃더니 그 앞에 섰다. 영수 친구들이 명절이라고 선물 세트를 들고 영수 엄마를 꽉 끌어안는 걸 보았다. “저희가 이제 스물 세 살이에요.” 활짝 웃으며, 영원히 찬란하게 젊을 것처럼, 청년들이 빵집을 꽉꽉 채웠다. 영수 아빠가 웃으며 가게 앞으로 왔다. 불가능 앞에서 우리는 기어코 시를 해낸다.
*
나는 이 이야기를 라디오를 통해 낭독의 형태로 발표한 적이 있다. 다음날 우리 엄마는 이 녹음 파일을 들고 영수 엄마의 빵 가게로 찾아갔다. 빵집 문을 열자마자 눈물이 났다고. “영수 엄마-” 말하는 순간 영수 엄마도 직감적으로 울었다고 한다. 영수 이야기. 영수 이야기. 우리 영수 이야기. 영수. 영수. 내 아이. 영수 이야기. 단 한 단어로 마음은 끝까지 갈 수가 있다. 영수, 라는 이름 하나가 궁극이어서 그 이름을 말할 때 우리는 시간을 넘는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우리 영수 이름, 기억해줘서. 영수에 대해 이야기해줘서 고마워요. 그리고요. 영수가 너무 너무 보고 싶어요.
영수가 너무 보고 싶을 때마다 빵집 부부는 가게를 마치고 노래방으로 간다고 한다. 거기 가면 아무 눈치도 안 보인다고 거기 가서 둘이 펑펑 울고 온다고. 아무 말도 안하고 그렇게 앉아서 울다가 추슬러서 집에 온다고. 결코 잊지 않아요. 잊히지 않아요. 그런 영수를 기억해줘서 너무 고맙다고. 우리 아이 이름을 이야기를 해줘서 고맙다고. 그렇게 말한 날 영수 엄마는 가게 문을 닫고 불을 끄고 가만히 빵집 안에 앉아 있었다. 그는 영수를 향해 온 마음으로 앉아있었다.
*
목소리는 말해지자마자 흩어진다.
목소리는 있자마자 사라져버린다.
나는 시와 글이 한낱 꾸밈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와 글은 목소리를 영원화하는 것이다.
시와 글은 존재하던 것을 껴안는 말이다.
*
나는 대학에서 강사로 일을 하며 지내고 있다. 어느 학기에 우리는 세월호에 관해 여전히 우리가 해야만 할 것들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수업 시간에 초를 켜고 둘러앉아서 낭독회를 열고 함께 시와 노래를 들었다. 오늘 수업은 통째로 세월호 생각만 해요. 같이 읽고 이야기하고 기억해요. 바로 그때 한 학생이 앞으로 나와서 핸드폰을 들고 녹음한 소리를 들려주었다.
“오늘 수업 시간 직전에 저는 일찍 와서, 강의실에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앉아서 잡담하는 소리를 녹음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갑니다. 이 소리와 시간은 우리들의 것입니다. 이것은 마땅하고 당연하며 우리가 가져도 되는 우리의 생생한 시간입니다. 이것은 마땅한 시간입니다. 이것은 정당하게 주어진 시간입니다. 이것은 가장 흔한 시간입니다. 이 소리와 시간을 단원고 친구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유가족분들께도 드리고 싶습니다. 같이 일상의 시간을 듣고 싶었습니다. 마땅히 누려야 할 시간을 드리고 싶었어요. 그리고 계속 우리가 같이 기억해요. 우리가 기억해야, 시간과 사건은 의미를 가져요. 마땅히 우리가 기억해요.”
*
나는 시모니데스의 목소리를 상상해 본다.
온 마음으로 한 사람 한 사람 짚어 말하는.
한 행 한 행 있음에 이바지해야만 한다.
어느 자리에 마땅히 누가 있었는지를.
시나 글이 그것을 말하지 않으면 우리는 없다.
여전히 보고 싶고 만나고 싶고 사랑한다.
그 강물이 결단코 마를 일은 없다.
그러면 우리와 그들은 있는 것이다.
*
“글쓰기는, 구원하고 죽음을 극복하는 데 이용됩니다. 그 자신의 죽음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말입니다. 그들을 위해 증언하면서, 그들을 영원하게 만들면서, 그들을 비(非)기억 밖으로 끌어내면서 말입니다.”
-롤랑 바르트, 변광배 역, 「롤랑 바르트, 마지막 강의」 중에서
당신을, 비기억(기억이 아닌 것)이 되도록 그대로 두지 않는 것. 결코 가만히 있지 않는 것. 글쓰기는 바로 그런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나 자신의 죽음이 두려워 ‘영원’을 꿈꾸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 바로 그들을 위해서 “영원하게 만들”려고 마음을 다하는 것.
*
시 한 줄 쓸 때도 마음을 다하겠습니다. 결코 허투루 쓰거나 다루지 않겠습니다.
*
영수를 생각하면 나는 고요해진다. 나를 키워준 사람들을 생각하면 골똘해진다. 그해 그 순간을 또렷이 기억한다. 매해 매번 4월을 기억한다. 나는 304 낭독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한다. 그들이 앉은 자리를 포함하여 전부 기억한다. 나는 죽은 할머니의 오래된 습관을 기억한다. 거실에서 요를 깔고 자고는 했다. 나는 그해, 부모님들의 얼굴을 기억한다. 어머니들이, 아버지들이 어떤 표정으로 어떤 말을 했는지, 하나하나 가슴 치며 기억한다. 나는 기억할 때마다 눈을 꼭 감는다. 그게 마치 시간을 지키는 일인 것처럼.
나는 사랑한다는 말의 아름다움을 기억한다. 단풍나무의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아름다움이 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지키고 싶었는지 기억한다. 나는 사람들이 평생 온 힘을 다하고 다해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걸 기억한다. 나는 작은 몸짓과 노래와 당신의 목소리를, 옥잠화나 은목서라는 꽃 이름을 기억한다. 기억의 핵심은 반복이다. 거듭되는 기억이, 기억이다. 기억할 때 우리는 개인이 아니다. 기억할 때 인간은 시간이다. 기억할 때 우리는 마음이다. 기억할 때 인간은 인간을 넘어서, 가장 보고픈 사람, 바로 그 사람이 된다. 기억할 거다. 반복할 거다. 해내고 말 거다. 온 마음을 다해서 열차나 빛처럼, 기억하여 싸늘해지지 않도록 할 거다.
……
고명재 (시인)
202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데뷔했다.
생동감 있는 언어로, 사랑하는 존재와 나눈 눈부신 순간을 시로 전한다.
작품
시집「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산문집「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등
《월간 십육일》은 매월 16일 4.16세월호참사와 관련한 글을 연재합니다. 다양한 작가의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주제의 글을 통해 함께 공감하고 계속 이야기해 나가자고 합니다.
*연재되는 모든 작품들은 4·16재단 홈페이지, SNS(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블로그), 뉴스레터 등에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