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덕 님] –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는 중입니다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는 중입니다 

<‘재난 현장 속 자원봉사자’를 찾습니다> 한정덕 님

온몸이 오물과 오수에 다 젖어요. 침수된 곳 중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비교적 깨끗한 현장도 있지만 대부분은 다 역류하면서 진짜 똥물이 그득그득한 현장이거든요.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옷을 빠는데 오물 범벅인 옷을 세탁기에 바로 돌리면 세탁기가 똥탁기가 되니까 화장실에서 애벌빨래를 했어요. 신발도 샤워기로 물을 뿌리면서 계속 헹궈내며 빠는데 진짜 10번을 헹궈도 똥물이 계속 나와요. 그걸 반복하고 있으면 ‘내일도 굳이 봉사하러 가야 되나?’ 이런 생각이 솔직히 들죠. 방학이라 친구들과 술 한잔 하고 나면 아침에 일어나서 나가기도 힘들고… ‘이제 그만 나갈까?’ 생각하면서도 어느새 수해 현장을 다시금 찾게 되더라고요.

이런 세계에 사는 멋진 사람들이 있구나

제 첫 봉사활동은 중고등학교 때 생활기록부 필수 봉사 시간을 채우러 시설에 갔을 때였어요. 그때는 좀 번거롭다는 느낌이 컸죠. 기관 담당자분들도 그걸 아시는지 시큰둥하게 일을 시키시고, 저도 ‘적당히 시간 때우다 가야지’ 정도의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그랬던 제가 자발적으로 봉사에 참여하게 된 건, 지난해 8월이었어요. 수도권을 강타한 폭우로 인해 대규모 수해 사태가 벌어졌고, 당시 대학생활 정보 공유 커뮤니티 플랫폼인 <에브리타임>에 글이 하나 올라왔어요. “도와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이었는데, 대학생 봉사자 한 분이 진흙탕 속에서 우비 입고 장갑이랑 장화 착용하고 짐을 나르는 사진과 사연이더라고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어요. 그때가 마침 방학이라 나른해진 마음에 불규칙하고 의미 없는 일상을 보내던 중이었어서 문득 하루라도 봉사 나가볼까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게 제 인생의 첫 자발적인 참여였죠.

1365자원봉사포털로 신청한 뒤 현장에 가보니 한 명의 일손도 아쉬운,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초반에는 초등학생부터 중고등학생들, 가족 단위 봉사자분들이 많았는데 주말이 되니 직장인분들과 공무원분들도 많이 참여해주시고 스펙트럼이 굉장히 다양해지더라고요. 중앙대학교 봉사 동아리에서도 10명 넘는 인원이 와서 열심히 활동하셨고, 현장에서 우연히 같은 과 선배를 만나기도 했어요. 그분들을 보면서 ‘와, 이런 세계에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를 새삼 체감했던 것 같아요. 또 자원봉사자들이 힘들고 어려운 현장에서도 같이 고생하며 물 한 병, 도시락 하나 같이 나누는데 그게 정말 좋더라고요. 코로나 시대에 강의도 온라인으로 진행되다 보니 사람들을 만날 일이 별로 없어 조금은 삭막한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런 일상에 사람들 간의 따뜻한 정, 이타적인 분위기를 접하다 보니 몸은 고되더라도 내일까지는 해야지, 한 번 더 해야지, 조금만 더 해야지 하다가 현장이 거의 정리될 때까지 꼬박 열흘을 머물게 된 거죠.

들어내고 퍼내고 치우고

첫날 배치된 곳이 지하 노래방과 만화방이었어요. 노래방은 물이 발목 높이까지 들어차서 기기가 다 망가졌고 소파도 모두 젖어 있더라고요. 가구를 들어내고, 벽지를 제거하고, 물이 찬 바닥을 청소하는 일을 맡았어요. 만화방은 이미 군 장병분들이 투입돼 일을 하고 계셨는데, 목제 책장을 철거하다 보니 바닥에 못 박힌 판재들이 많았어요. 운동화 신고 오신 분들은 위험하니까 저를 포함해서 전투화나 작업화를 신고 온 몇몇 분들이 두꺼운 장갑 끼고 삽과 망치로 책장을 철거하는 작업을 했어요. 안의 폐자재들을 마대자루에 넣어 전달해주면 다른 분들이 바깥에서 정리하는 식으로 작업이 진행됐는데, 책들이 전부 훼손되어 쓰레기로 버려지는 모습을 보니 안타깝더라고요.

성대시장 입구에 있는 마트도 지하 창고가 완전히 침수됐어요. 제가 갔을 때 오수와 식자재가 뒤섞여 뻘 상태가 되어 있었는데, 습하고 뜨거운 날씨에 그게 썩으니 악취가 진동하더라고요. 벌레도 많고, 깨진 유리라든가 다칠 만한 물건도 꽤 있었고요. 현장이 위험하고 오염돼 있다 보니 자원봉사센터에서 건장한 분들 위주로 편성을 해주셨는데 가보니 이미 소방관분들과 의용소방대분들이 와서 많은 일을 하고 계셨어요. 저희도 합류해서 마대자루에 뻘과 폐기물을 담아 빼내어 내부를 비우는 일을 했어요. 이틀간 일하고 저희는 현장에서 철수했는데 그때는 대강 정돈이 돼서 바닥 청소 정도가 남아있을 때였죠.

그 외에는 주로 인근 반지하 주택들에 갔어요. 대부분 나이 든 어르신들이 홀로 거주하시다 보니 물이 차오를 때 겨우 몸만 빠져나오셨더라고요. 반지하 주택은 보통 자원봉사자 5명 정도가 가는데, 대체로 남성 봉사자들이 무거운 집기를 옮기고 장판이랑 벽지를 뜯어내면 여성 봉사자들이 오물 제거, 바닥 청소, 자잘한 집기 정리를 하는 순이었어요. 규모가 작은 편이니 2~3시간이면 우선 기본 정리가 돼요. 그럼 저희는 다른 집으로 이동하는데, 살림살이를 다 말리고 도배, 장판 작업을 해서 다시 살 수 있게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셨을 거라 짐작해요.

보탬이 되고픈 유가족과 수해마저 악용한 악덕 상인

유독 기억에 남는 현장이요? 5일 차 즈음 되던 때에 갔던 집인데 하수구가 역류해서 그때까지도 물이 제 허리까지 차 있었어요. 장화를 신어도 무릎 아래까지만 보호되다 보니 결국 몸이 다 젖을 수밖에 없는데, 물이 지저분해서 바닥도 안 보여요. 체력적으로 힘들기도 했지만 오수가 얼굴에 많이 튀고, 마스크도 다 젖다 보니 너무 지저분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다 휴식 시간에 밖에 나와 바람 좀 쐬고 물 한 잔 마시려고 하는데, 아주머니 한 분께서 자원봉사자분들 고생 많으시다며 한 명 한 명에게 인사하시더니 손이 더러운 저희를 대신해 물티슈로 얼굴을 닦아주시고 물병을 열어 물을 먹여주시더라고요. 저는 같은 봉사자분이신 줄 알고 “감사합니다, 자원봉사 나오셨나 봐요?”하고 물었는데, 담담하게 웃으시면서 “아니에요. 저는 여기 유가족이에요. 도와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하시는 거예요. 깜짝 놀랐어요. 그 순간 되게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진부한 얘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제가 좀 전까지만 해도 오물이 얼굴에 튀고, 바지는 물론 속옷까지 다 오수에 젖어 내심 불평하고 있었잖아요? 그런데 정말 비교도 안 되는 상실의 고통을 겪고도 현장에 도움을 주러 온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하는 유가족분의 모습을 보면서 순간 마음이 울컥하더라고요.

위험했던 현장도 기억에 많이 남는데, 아파트 지하 3층이 침수되어 전기가 다 나간 곳이었어요. 가보니 이동식 발전기로 가동되는 조명이 설치돼 있었는데, 발전기에서 나오는 가솔린 매연이 지하의 밀폐된 공간에 가득 차고 오수에서 나오는 악취랑 뒤섞이면서 숨을 쉴 수가 없는 거예요. 사람들이 계속 기침하고 어지러워하고 구토 증상 보이고… 저도 너무 힘들어서 결국 제가 대표로 아파트 관리자분께 말씀을 드렸어요. 그리고는 자원봉사자들 모두가 일찍 철수했는데 다음날 가보니 발전기를 밖으로 뺐는지, 공기가 괜찮아져서 무사히 일을 마칠 수 있었어요.

모든 현장이 다 힘들었는데 정말 그만둘까 싶은 생각이 들었던 건 수해 봉사마저 악용하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였죠. 무거운 짐을 옮겨야 하니 힘 잘 쓰는 남자들이 필요하다고 해서 저랑 다른 분이 갔어요. 가보니 지하층이 없는 지상층 점포였는데 침수된 물건은 하나 없고 다 물기 없는 새 물건이더라고요. 유심히 살펴보니 피해복구가 아닌 내부 리모델링을 하려고 물건을 옮길 사람이 필요했던 거예요. 이건 아니다 싶기도 하고, 그때까지도 반지하 주택 침수로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들이 아직 많았을 때라 화가 나기도 했어요. 잠깐 일을 하다 적당히 둘러대고 철수한 뒤 담당자분께 말씀드렸죠. 저기는 수해현장이 아니다, 사람 보내면 안 될 것 같다, 대형 점포는 직원도 많으니 정말 도움이 필요한 어려운 분부터 먼저 도움받을 수 있게끔 관련하여 사전 점검을 좀 더 잘 해주시면 좋겠다, 그런 이야기들이요.

자원봉사자는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도우러 온 건데, 그런 부조리한 상황들이 봉사자들의 사기를 꺾고 허탈함을 느끼게 하더라고요. 실제로 그런 상황에 실망해서 다음 날부터 안 나오시는 분들도 계셨던 것 같아요.

민·관이 제 역할을 다할 때 회복되는 일상

자원봉사를 하며 저는 현장에서 일하시는 자원봉사센터 분들이나 주민센터 직원들이 정말 성심을 다하고 있구나 싶었어요. 수해로 집을 잃은 뒤 주민센터의 지원을 받아 센터 2층 텐트에서 생활하시는 이재민 분들을 봤는데, 심적으로 많이 무너지신 상태였던 것 같아요. 종종 험한 말이나 행동을 하시는 분들이 계셨는데, 센터 직원분들께선 뒤에서 나쁜 말 안 하시고 “수해로 마음이 많이 상하셨나 보다” 하고 의연하게 넘기시더라고요. 저도 현장에서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좀 막 대하시는 분들을 만날 때면 도와드리러 간 입장에서 솔직히 섭섭하기도 하고 너무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는데, 그런 분들을 보며 여러모로 제가 좀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또 주민센터 직원분들이 마을을 돌면서 피해 접수를 받고, 피해 정도에 따라서 자원봉사자들을 배치하고 피해에 따라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조치나 지원에 대해서도 잘 설명하시는 것 같았어요. 안타까운 마음에 피해를 입으신 어르신들께 넌지시 여쭤보니 관련 지원이 많이 되고 있다고도 말씀하셨는데, 저는 시민으로서 자원봉사를 통해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관은 관의 역할을 다 하고 있구나 싶은 느낌에 만족스럽더라고요.

사실 수해를 입은 곳이 이전에 제가 살던 곳이랑은 거리가 좀 있어 잘 안 다녔는데, 지금은 이 근처로 이사를 오기도 했거니와 한동안 봉사를 했다고 진짜 제 동네 같아요. 자원봉사할 때 상인회 지원으로 식사를 제공했던 식당들이 있는데, 어려운 시기에 동참해주신 거니까 정이 많이 가더라고요. 또 제가 지난해 수해 때 자원봉사한 걸 아시고는 노래방 사장님이 캔맥주랑 서비스 시간 넣어줄 테니 오라고 하시고. 아주 작은 도움이지만 동네를 걸을 때마다 제가 한 봉사가 보탬이 되어 상인과 주민분들이 일상으로 돌아가 잘 지내고 계신 것 같아 뿌듯하고 스스로가 으쓱한 기분도 들어요.

봉사, 책에서도 배우지 못한 ‘경험’이라는 값진 지식을 알려 주다

수해 복구 현장은 제게 경험을 통한 지식의 깊이와 성장을 안겨준 공간이었어요. 재해 현장을 보면 누구나 다 안타까운 마음과 돕고 싶은 마음, 이 두 가지 감정을 모두 느끼게 될 거라 짐작해요. 감정을 느끼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한 발짝 더 나아가 행동으로 옮겨 누군가를 돕는 데는 아주 작은 용기면 충분하죠. 봉사에 망설이시는 분이 계시다면 “저처럼 그냥 한번 해봐요!”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봉사 경험을 통해 생각의 정리와 마음의 평온을 얻었고, 삶을 대하는 태도와 타인에 대한 배려를 배웠어요. 이 경험들이 저를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게끔 다듬어 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보다 더 오랜 기간을 정말 더 열심히 봉사하신 분들이 많은데 제가 이렇게까지 인터뷰해도 되나 싶긴 한데…, 제 경험이 고민 많은 2~30대 청년분들께 봉사활동을 결심하는 데 있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주관 – 4·16재단 협력 –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 후원 –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글 – 유해정 (성공회대 사회과학연구소)

 

 

[후원계좌]

226401-04-346585

(국민,416재단) 

 

[후원문자]

#25404160

(한건당 3,300원)

 

[후원ARS]

060-700-0416

(한통화 4,16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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